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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겨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최원열

우리사회 불통과 대립, 다가오는 미래위한 시련…겨울 지나면 봄 오는 법

소통하면서 사랑 회복, 더 관용하고 포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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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모처럼 '먼지 감옥'에서 빠져나와 하늘이 활짝 열렸습니다. 쾌청한 가을 기운을 맞으며 단풍놀이에 빠진 이들이 넘쳐납니다. 수확과 풍요의 계절 맛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룬 세상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를 듣는 듯 환상적이네요.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 아름다운 계절이 짧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기만 합니다.

머지않아 찬 바람 휘날리는 동토의 계절이 찾아오겠지요. 죽음과 고난을 상징하는 겨울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겨울의 정점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생과 이념 문제에다, 저출산 고령화, 고용, 그리고 솔로 절벽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은 채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으니까요. 마치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한 살벌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아 돕니다.

그 원인이야 많겠지만 저는 불통과 대립을 꼽고 싶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이 세상엔 단 두 가지 감정밖에 없다고. 바로 사랑과 두려움이랍니다. 나머지는 모두 여기서 파생된 거라고요. 그렇다면 불통과 대립은 두려움의 산물인 셈입니다. 사회적 불안정과 시대의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정치와 현실은 동떨어져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마이동풍이며 우이독경입니다. 해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봅니다. 사랑을 회복하는 거지요. 그러자면 먼저 소통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지금 사회의 분노가 임계점에 달하지 않았나 걱정이 듭니다. 분노는 두려움의 에너지가 극도로 커졌을 때 나타납니다. 정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일탈할 때 국민은 실망에서 분노로 격하게 반응하지 않습니까. 천지자연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게 이치이거늘 도무지 그러지 못하니 누군들 화나지 않을까요.

사회는 시민들이 노닐어야 할 물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가지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 현실이 정녕 안타깝습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세상의 밥이 되어야 한다"고. 사랑하기 위한 싸움에서 미움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유훈이 가슴에 절절히 와 닿습니다. "나도 이민자의 아들"이라며 약자와 환경 보호를 외친 프란치스코 교황도 감동을 던져주셨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들은 척도 않고 싸움에만 열중합니다. 견해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얻는 지혜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큼을 모릅니다. 열린 자세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건 대화도 토론도 아닙니다. 그러니 소통이 이뤄질 리 있겠습니까.

K형, 하지만 대자연의 원리에서 저는 희망을 품습니다. 겨울은 과거를 밀어내고 앞날을 오게 하는 존재라 믿습니다. 그것의 '창조적 파괴력', 다시 말해 죽음이 삶을 낳는다는 역설적 진리를. 어둠이 더할수록 새벽은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니까요. 세상에 그대로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러니 겨울은 절망의 순간이자, 희망의 시그널이기도 하지요.

우리 삶에도 생명순환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확신합니다. 겨울은 인생으로 치면 늙음과 죽음의 단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늙는다는 것, 참 두렵죠. 늙는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늙음'하면 추함과 도움이 안 되는 존재, 빈둥거림, 쭈글쭈글함, 그리고 누추함 등 좋지 않은 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사랑의 관점에서 볼 수는 없을까요.

자연은 '너희가 성숙의 미학을 아느냐'며 꾸짖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천년풍상을 꿋꿋이 버텨낸 아름드리 거목에서 진한 가슴의 울림을 듣지 않습니까. 황홀한 저녁 석양과 낙엽이 지기 전 화려하게 단장하는 단풍은 어떻고요. 오래된 와인과 치즈, 퀴퀴한 된장과 간장의 짙은 풍미와 감칠맛이란. 자연은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걸 풍부한 경륜과 지혜라 봅니다.
K형, 늙음과 젊음 모두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않습니까. 젊음의 유혹 못지않게 노년의 아름다움과 성숙함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요. 묻고 싶습니다. 늙는 게 기형인가, 늙음이 사회로부터 배척돼야 할 범죄인지를. '좋아하는 길이라면/ 울퉁불퉁하더라도/ 걸어갈 수 있어/ 힘들어지면/ 잠시 쉬며 하늘을 보고/ 쭉/ 걸어가는 거야'. 노화의 기술, 늙음의 정수가 바로 이거라 생각합니다.

겨울과 늙음, 결코 춥거나 두렵지 않다고 믿습니다.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칼바람 몰아치는 우리 사회 역시 다가오는 봄을 위한 시련으로 품는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겁니다. '삶은 갖기 위한 것(for getting)이 아니라 주기 위한 것(for giving)이니, 그러려면 관용하고 포용해야(forgiving) 한다'. K형, 아쉬움이 많지만 제가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랑에 관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이만 줄이렵니다. 부디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대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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