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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칼럼]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가난 비관 잇단 죽음, '복지 실종' 입증해

성장으론 해결 안돼…관심과 배려, 나눔이 비극 넘어서는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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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의 매화는 일찌감치 꽃을 피웠고 목련의 꽃망울은 잔뜩 부풀어 올랐습니다. 양지쪽 넓은잎나무들은 연둣빛 어린잎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온 천지에 생명의 기운이 감도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세상에는 가난과 절망 속에서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비극이 꼬리를 뭅니다.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단독주택 지하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죄송하다는 메모와 같이 남겼습니다. 식당일을 하다가 다쳐 수입이 끊긴 어머니, 당뇨병으로 거동을 못하는 딸이 더는 버틸 기력이 없었던가 봅니다. 세 모녀가 온몸으로 껴안았을 고립감과 절망감을 헤아리자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이 극단의 선택을 하기 하루 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의 시대를 열겠다는 장밋빛 청사진 '3개년계획'을 내놨습니다. 규제를 대폭 완화해 기업활동을 촉진시키고 수출을 늘려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고 했습니다. 성장을 통해 국민행복시대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 세 모녀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 허물어진 채 마지막 선택을 결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 모녀의 비극적 죽음 뒤에도 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가족들이 하루가 멀다고 삶을 버렸습니다. 지난 3일 경기도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40대 가장이 13살 난 지체장애 딸, 네 살 난 아들과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 전날 동두천에선 생활고에 시달리던 30대 여성이 네 살 난 아들을 품에 안고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또 그 하루 전에는 서울의 한 지하셋방에서 병고에 시달리던 60대가 화장비용 100만 원을 남기고 숨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6일 울산에서는 50대 장애인 어머니와 20대 아들의 시신이 숨진 지 한 달이나 지나서야 발견됐습니다. 

'국민행복시대'가 아니라 국민절망시대입니다. 성장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 더 버텨낼 힘조차 잃어버린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소득 2만4000달러, 복지예산 100조를 무슨 치적처럼 내세우곤 하지만 숱한 절박한 삶들은 언제 생존의 절벽 아래로 내동댕이쳐질지 모를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문제는 경제성장과 관계없이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주장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모든 가치가 돈에 좌우되는 신자유주의 시장체제 아래선 아무리 국가적 부가 증가해도 이른 바 '1%'에 쏠릴 뿐 헐벗은 취약계층의 빈곤화는 가속됨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정부가 띄우는 '474 비전'이라는 것도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오히려 지난 대선 민심을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가 무색해지는 작금의 현실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국민들의 기대를 받았던 복지정책들이 속속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세 모녀 사건을 두고 대통령이 언급했던 긴급복지지원도 예산이 절반으로 뭉텅 잘렸습니다. 비정규직 1000만 명을 넘어선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무려 8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는 저소득층은 140만 명에 그칩니다. 600만 명 이상이 복지사각지대에서 언제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릴지 모를 처지에 놓인 셈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난 1년간 복지의 정상화를 외치면서 부정수급 색출에 급급했습니다. 복지사각은 방치하고 외면한 채 말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복지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망상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성장은 오히려 헐벗은 이들에게 상대적 절망감만 더할 따름입니다. '사회적 이동'이 단절된 암울한 현실은 쉽사리 삶의 희망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명박 정부는 개천에서 용 나게 하겠다고 그리 떠들었고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큰소리 치지만 현실 속 빈곤의 벽은 더욱 두껍고 높아질 뿐입니다. 교육마저 세습되는 세상에서 가난한 가장들은 기약할 수 없는 내일에 절망합니다.

이 총체적 난관을 넘기 위해서는 우선 위기에 처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책도 성장에 목을 매달 게 아니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분배에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구사회에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탈성장(脫成長)'의 가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적 성장의 개념을 뛰어넘어 사회적·생태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정치적 차원으로 변화시키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 말입니다. 이렇듯 근원적 가치의 재편을 통해서 '좋은 삶'을 이끌어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비극을 치유할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합니다. 일자리를 나누고, 탐욕스러운 소비를 줄이고, 창조적 생활양식을 만들어내고, 자족적 문화와 공동체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새로운 삶의 모델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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