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장병윤 칼럼] 텃밭이 주는 유익

건강한 먹거리에 땀 흘리는 기쁨

생명에 대한 열린 감수성과 '관계' 회복 선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토요일 아침에는 텃밭으로 간다. 쉬는 날이지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채비를 한다. 설레는 마음에 일어나자 작업복을 갖춰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현관문을 들락거린다. 이른 아침을 먹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전 일곱 시 전후다. 텃밭은 집에서 30분정도 걸리는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진입로 주변에 있다. 지난 4월 중순 귀농학교 교육을 받은 뒤 선배 기수들이 텃밭을 구해 함께 경작할 이를 찾는다기에 한달음에 분양 받았다.

200평 남짓 되는 땅을 10여 명이 나눠서 주로 채소류를 키우는데, 나는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상추 들깨 모종을 심었다. 나중에 호박 고구마 옥수수도 심고 열무와 얼갈이배추 씨앗도 뿌렸다. 처음해 보는 농사일이라 제대로 될까 싶었는데, 날로 무성해져 가는 텃밭을 보니 시작이 반이란 말이 실감난다. 내가 한 일이라곤 두둑을 만들어 모종을 심거나 씨앗을 뿌린 게 다인데도 저 혼자 잘 자라니 신기하기만 하다. 작은 모종들이 어느새 훌쩍 크더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것을 지켜보면 즐거움을 넘어 경이로움에 이른다. 아기 손가락만한 오이가 한 주일 사이에 팔뚝만큼이나 커져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배추 씨앗이 싹 트는 모습에 반해 매일 텃밭으로 나가 한나절씩 들여다봤다는 누군가의 경험담이 떠오른다. 언제쯤이나 자랄까 싶었던 작물들이 신통하게도 한 달도 채 안 돼 수확물을 내놓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월 들어 상추를 시작으로 좁은 텃밭은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듯 풍성한 먹을거리를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지난주에는 토마토와 오이, 호박, 고추를 한 아름 수확했다. 농약도 화학비료도 쓰지 않고 온전히 땅의 힘과 햇볕, 바람, 비, 우주의 조화가 빚어낸 건강한 먹을거리를 밥상에 올리고 이웃과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 텃밭에 가서 하는 일은 주로 잡초를 뽑는 일이다. 한 주일 만에 들르면 그 사이에 온갖 잡초가 자라 이랑이 빼곡하다. 온몸을 땅바닥으로 낮춰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비록 힘은 들지만 즐거움을 동반한다. 일부러 장갑을 끼지 않고 작업을 하는데, 손끝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흙의 촉감, 손가락에 배어드는 풀물과 코끝을 간지르는 풀냄새가 마냥 좋다. 두 고랑의 밭을 매는 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금세 온몸이 땀에 푹 젖는데 노동이 가져온 몸의 활력과 긴장, 그로 인해 만들어진 땀을 느끼는 게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텃밭은 이처럼 좋은 먹을거리와 땀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 외에도 정서적 안정과 정신적 평화를 가져다 준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 주일에 한 번씩 찾아 농사를 짓는 일, 생명을 기르는 일에서 무엇보다 큰 위안을 받는다. 흙을 딛고 생명을 대하고 어루만지며 교감하는 일에서 도시생활에 지치고 피폐해진 삶과 상처받은 심신을 치유 받는 기회를 얻는다. 욕망을 좇아 살면서 잃어버렸던 생명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되살리는 것이다.

텃밭농사로 얻는 또 하나의 과외소득은 관계의 회복이다. 아내는 물론이고 주말에 귀가하는 큰아이와도 종종 동행하는데, 텃밭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갖는다. 생명을 바라보고 키우는 공통의 관심사는 자연과의 단절됐던 관계도 회복시켜 준다. 생명을 향해 열린 마음은 평소 소홀했던 식구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이어진다. 텃밭 일이 끝나면 자연스레 가까운 범어사 등나무군락지나 원효암을 오르기도 하는데, 지난 몇 달 새 우리 가족은 더욱 가까워졌다는 것을 서로 느낀다.

얼마 전에 옥상텃밭 평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서너 명이 나와서 사례 발표를 했는데 하나같이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회복을 텃밭의 미덕으로 꼽았다. 남구의 한 복지관은 황량한 시멘트옥상이 텃밭으로 바뀐 뒤 그곳을 찾는 직원들끼리 대화가 잦아졌고, 마을 노인들이나 아이들에게도 더없이 훌륭한 휴식과 소통의 공간이 됐다고 한다. 텃밭은 이처럼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에게 이웃과 자연에 대한 열린 마음을 선사한다. 집 주변의 버려진 공터나 가까운 근교에 텃밭을 마련해 보라. 삶을 변화시키고 풍성하게 하는 축복의 기회가 될 게 틀림없다.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민홍철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이채익 행안위 한국당 간사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11월의 노래
‘집권 2년 차’ 문재인 대통령이 할 일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사라진 가야문명의 귀환을 고대하며
통영에서 반드시 불어야 할 훈풍
기고 [전체보기]
세계인문학포럼, 부산이 이룬 작은 성공 /이지훈
고령자 이동권 확보, 면허 반납 지름길 /노유진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울경 위원 없는 중도위 /김영록
이기주의가 낳은 슬럼 /황윤정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청산리 벽계수야, 저 바다에 가보자꾸나
생활 SOC: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나는 할 말이 없데이…’
‘미스터 션샤인’ 오해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유치원 공공성 확보하라 /조민희
재정분권 2단계 엄정 대응을 /김태경
도청도설 [전체보기]
힐만과 로이스터
“나 누군 줄 아냐”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과 두 분의 시인
고요한 물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국민의 눈높이
‘밥 한 공기 300원’의 미래
사설 [전체보기]
자치경찰제, 치안 사각지대 없도록 면밀한 준비를
여·야·정 협치 합의 첫 실무회동부터 삐걱대서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수술대 오른 사회서비스(보육·교육·의료·요양) 공공성
아동수당 보편주의 원칙과 은수미 성남시장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시나브로 다가온 한반도의 봄
시민 행복과 다복동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