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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도 칼럼] 청하, 타이거 킴, 그리고 꿈

부산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 칸서 상영

내년 30회 BIFF 앞두고 ‘테세우스의 배’ 화두 삼길

  • 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  |   입력 : 2024-05-06 19:13:07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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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와 강촌은 그 다큐멘터리에 흐르는 두 상징이다.
경기도 광주시 자택에서 강마을 정취를 즐기고 있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국제신문DB
‘청하’(靑霞), 푸른 노을이라니 뜻이 매우 깊다. 그것도 한국전쟁 직후인 고교시절 ‘은둔 선비’란 뜻을 담아 그가 직접 만든 아호다.

‘강촌’(江村)은 중국 대표 시인 두보가 760년 지은 시 제목이다. 당나라를 휩쓴 안녹산의 난 탓에 고초를 겪던 두보가 잠시나마 안정을 찾은 쓰촨성 청두의 완화계초당 시절 작품이다. ‘마을을 안아 강이 흐르는데/긴 여름의 대낮 한가롭기만!/제비는 멋대로 처마를 나들고/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두보시선’·현암사) 두보는 강마을을 두고 격동의 세상으로 되돌아갔으나, 그는 동경하던 강마을에 정착해 ‘강촌’을 읊조리며 새로운 영화의 바다를 꿈궜다.

오는 16일(현지시간) 제77회 칸영화제서 상영될 ‘영화 청년, 동호’(Walking in the Movies·감독 김량)가 그 다큐멘터리고, 그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아버지’ 김동호 초대 BIFF 집행위원장이다.

영화인에게 세계 영화제 중 첫손 꼽히는 칸은 꿈의 무대다. 영화의 평가와 소비가 함께 이뤄지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해마다 5월이면 세계 영화계가 칸을 주목하는 이유다. 김 전 위원장은 자못 진지하게 칸을 평가했다. 그가 2010년 5월 국제신문에 연재한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중 칸영화제 소개 대목이다. “칸은 영화인들의 우상이다. 전 세계 모든 감독과 배우 그리고 제작자들은 칸영화제에 초청받기를 갈망한다. 뤼미에르 극장의 붉은 카펫을 밟고 들어가 객석에서 기립박수 받는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여긴다. 그러나 칸에 입성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다. 매년 전 세계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5000편 정도다. 이 중에서 칸에 공식 선정되는 영화는 많아야 130편 안팎이다.”

별따기가 현실이 됐다. 김 전 위원장이 주인공인 ‘영화 청년, 동호’는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칸 클래식에 공식 초청됐다. 칸 클래식은 중대한 영화 유산을 기념하고자 명작이나 관련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 영화는)연출, 미술적 선택, 강렬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독창성 면에서 시각적 힘이 돋보인다”며 “훌륭한 촬영과 효과적이고 명확한 편집서 한국적 아름다움과 평온함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으로선 ‘한국 영화 부흥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서 역할을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경사다. 김 감독은 네 번째 작품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안았다. 우리나라 언론사가 제작한 영화가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것은 처음이다. 신문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시도한 국제신문의 성과다.

‘청하’와 ‘강촌’이 김 전 위원장 생애를 관통하는 상징이라면 그의 생애는 공직생활과 영화인 ‘타이거 킴’으로 나눌 수 있다. 1937년생인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7급으로 공직에 투신, 문화부 차관과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까지 30년 남짓 공직을 거쳤다. 앞서 한국전쟁 소용돌이 땐 부산서 피란살이를 했다. 그에게 ‘제2의 고향’이 운명처럼 다가와 영화인으로 새 삶을 살게 만든 계기가 BIFF다.

1995년 8월 부산 영화인 김지석 전양준 이용관이 ‘작지만 권위있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으니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그에게 제안했다. 그렇게 1996년 9월 13일 제1회 BIFF가 시작됐다. 타이거 킴(김동호·金東虎의 애칭)은 세계 영화계를 누비며 BIFF 위상을 높였다. 초대 집행위원장이자 초대 민간 이사장인 그는 2017년 BIFF에서 손을 뗐다. 그가 정착한 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경기도 광주시 강마을이다. ‘영화 청년, 동호’의 주요 배경이다.

내년 30회를 맞는 BIFF는 ‘작지만 권위있는 영화제’라는 젊은 영화인의 꿈이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성장한 배경은 젊은 세대의 절대적 지지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지지다. 2014년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논란과 최근 수뇌부 집단 사퇴로 이어진 내홍은 초심을 곱씹어야 할 계기다. 정체성 확립이 핵심 과제다.

그 실마리는 2017년 5월 칸에서 유명을 달리한 김지석 전 부집행위원장이 던진 화두다. 고인은 2015년 BIFF 20년을 결산한 책 ‘영화의 바다 속으로’(본북스)에서 ‘테세우스의 배’라는 묵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아테네를 구한 테세우스를 기념하고자 사람들은 테세우스가 탄 배를 보전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배에 쓰이는 재료들을 바꾸다 보니 테세우스의 배는 새로운 배가 되어버렸다. 고인은 테세우스의 배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했다. ‘영화 청년, 동호’ 칸 진출을 계기로 BIFF의 새로운 항해를 향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1996년 ‘영화의 바다’ 출항 현장을 지켜본 기자의 간절한 바람이자 꿈이다.

정상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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