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재 시조시인의 시조관은 ‘실(實)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시조를 무척 좋아하셔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시조 쓰기는 새끼줄 꼬는 일과 비슷하다’고 하셨죠. “짚 두 가닥을 차근차근 꼬아 가다가 막바지에 ‘사사삭’ 야무지게 비벼 하나로 합쳐야 하는데, 바로 그 마무리가 시조의 종장이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박홍재 시조시인과 새 시조집 표지.

시조에 관해 이렇게도 표현했다. “시조 쓰는 일은 설거지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실생활에서 나온 실한 비유다. “제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 설거지를 해도, 아내가 보면 허술하고 말끔하지 못한 데가 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열심히 시조를 써도 고수나 선배 문인이 보면 티가 보입니다. 그래서 설거지가 떠오릅니다.” 2008년 ‘나래시조’를 통해 등단한 박 시조시인이 올해 낸 세 번째 시조집 ‘핑계에도 거리가 있다’(작가 펴냄)에는 그가 걸어온 시조의 길, 일구어 온 변화가 잘 담겼다.

시조집 가장 앞에 실은 작품인 ‘기계(杞溪)와 기계(機械)’는 기발하고, 시조인이자 생활인으로서 그의 삶이 재치 있고 간명하게 담겨 있어 전문을 소개한다. “고향이 기계(杞溪)라면 놀라며 다시 묻고/ 기계(杞溪)중학교 나왔다면 또다시 갸우뚱해/ 선입견 무서운 짐작 고정관념 틀을 깬다// 기계과(機械科) 진학해서 기계(機械)를 다루었다/ 똑같은 발음 땜에 친해지고 깊이 알려/ 기계(杞溪)와 기계(機械) 사이에 버팀목은 기계다”

박 시조시인은 1953년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당시는 영일군에 속함)에서 태어났다. 기계초등학교, 기계중학교를 나왔다. 공부를 잘했는데, 여러 동생을 건사하느라 대구공고에 진학해 기계과(機械科)에서 공부했다. 그 뒤 부산으로 와 방산업체에서 기계를 다루는 일을 35년 하고 2008년 퇴직했다. “퇴직한 뒤, 이제 ‘기계밥’은 안 먹겠다는 생각도 있고 여행에 대한 꿈도 있어서” 인생 후반기 준비를 더 튼실히 하느라 기계 쪽 일이 아닌 금정산 정비반으로 활동했는데 얼마 뒤 다시 기계업체에서 일했다. 마지막 직장은 대학교 미화원이었다.

그 와중에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평생 땀 흘려 일했고, 고향 기계에 대한 사랑은 갈수록 깊어지며, 어릴 적부터 불교를 가까이 한 내력은 이번 시조집에 고스란히 스몄다. ‘시조의 초장을 기발하고 신선한 표현으로 시작한 작품이 많다’고 말하자 그는 “시조를 많이 묵혀 두는 편”이라고 답했다. “습작 형태 초고가 2000편 이상 있고 집요하게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래 갈고 다듬는다는 뜻으로 이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