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바 알머슨 최신작·아트상품
- 안규철·이광호 작품까지 풍성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부산 지역 갤러리들이 하반기를 꾸려갈 전시를 잇따라 시작했다.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작가부터 입지가 뚜렷한 작가까지 주목할 만한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김기린 작가의 ‘안과 밖’. 데이트갤러리 제공

■시인이 되고 싶었던 화가, 김기린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기린의 개인전 ‘안과 밖, 경계 위의 감각’이 데이트갤러리(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에서 마련됐다. 생텍쥐페리를 연구하고 싶어 프랑스로 향했을 정도로 시문학에 관심이 높았던, 미술가 중 드물게 인문학(한국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을 바탕으로 한 예술가 김기린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그림으로 그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한 작가이다.

작가는 단일색의 화면에 입체적인 점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며 그만의 운율을 만들어냈다. 그는 캔버스나 종이에 큰 붓으로 한국의 오방색(흑·백·적·황·청)을 기반으로 한 유화 물감을 여러 겹 칠하고, 중간 크기의 붓으로 가로세로 선을 그어 세밀하게 구역을 계획했다. 이어 규칙적이면서 조직적으로 점을 찍으며 시간과 온도에 따라 발생하는 물감의 밀도와 농도 차이를 통해 미묘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감을 보여주며 요동치는 듯한 느낌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10월 2일까지.

■내면의 풍경, 에바 알머슨

에바 알머슨의 ‘Donde el corazon me lleva _ Where the heart takes me’.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독창적이면서 따뜻한 그림으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에바 알머슨의 전시 ‘Inner Landscape’가 오는 11일 소울아트스페이스(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에서 열린다. 갤러리 측이 2013년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작가를 초대한 전시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작가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변화하는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하며,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여정과 그 속에 담긴 희로애락을 되새기는 작품을 선보인다. 미소를 띤 인물들이 화면의 주인공으로 자리하지만 그들이 착용한 의상의 패턴, 꽃과 카펫의 무늬, 동물 등 섬세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요소들을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과 따뜻한 감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전시에는 작가의 최신작뿐만 아니라 처음 공개되는 판화, 다양한 아트상품도 선보인다. 오픈일에는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오후 3~7시)도 마련한다. 11월 18일까지.

■글 쓰는 조각가, 안규철

안규철 작가의 ‘세 개의 수평선’. 국제갤러리 제공

일렁이는 바다의 수평선이 일직선으로 뻗어야 하는데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제대로 된 수평선을 보려면 몸을 옆으로 살짝 틀어야 한다. 기울어진 수평선을 그린 ‘세 개의 수평선’, 알 수 없는 외국어로 쓰인 문장을 그린 ‘외국어로 된 열두 개의 잠언’ 등. 국제갤러리 부산점(수영구 망미동)에서 진행 중인 안규철 작가의 개인전 ‘열두 개의 질문’은 어딘가 살짝 비튼,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미술지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유학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2020년 은퇴했다. 그는 익숙한 일상의 사물을 뒤틀어 부조리한 현실의 개념을 담은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매번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 작가는 이번에도 작가만의 질문에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교수 은퇴와 전업 작가의 시작을 알린 4년 전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 이후, 작가로 치열하게 지내며 더욱 깊어진 작업을 내어 보이는 자리로 의미를 갖는다. 10월 19일까지.

■시선 안으로 초대하는, 이광호

조현화랑 부산점(해운대구 달맞이길)이 마련한 이광호 개인전 ‘시선의 흔적’은 작가가 20년 만에 선보이는 초상화 작품과 그간 진행한 연작 프로젝트 ‘Blow-up’ 시리즈 등으로 그의 30년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화두인 ‘시선’을 집약해 보여주는 전시다. 영상과 사진으로 만든 감각적인 화면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흐릿하고 불완전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한 초상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또 자신만의 ‘촉각적 회화 기법’을 반영한 ‘ Blow-up’ 시리즈를 18ｍ 대형 벽면에 가득 채워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시각 장치로 만들었다.

이광호 작가의 ‘Blow-Up’ 시리즈. 조현화랑 제공

바다가 보이는 대형 유리창과 초상화, 벽면을 따라 펼쳐진 풍경화 등은 회화가 시선을 통해 완성되는 예술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람자를 작가만의 시선 안으로 초대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10월 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