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선을 칠하고 또 칠해 쌓아 올린 사물은 경계는 흐릿하지만 형상은 빛이 난다. 꽉 채운 풍경과 사물 속에 숨겨진 감각과 감정의 흔적, 그 여운이 화면 밖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박세빈 작가의 ‘ Songs from the outside of time’. 카린갤러리 제공

카린갤러리(부산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길)가 닮은 듯 다른 작가 3명을 초대한 ‘고요한 시간 The Still Hours’을 마련했다. 나빈 박연경 박세빈 작가는 나이와 활동 경력 모두 다르지만 기억과 존재의 흔적을 회화 작품으로 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나빈 작가의 ‘자두’. 카린갤러리 제공

한국예술종합학교(조형예술)와 이화여대(서양화과 미술사학)를 졸업한 나빈(43)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한 짧은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그는 유화 물감을 여러 겹 얇게 덧칠하는 글레이징 기법(빛 색 광택 입체감 등을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기법)을 통해 채색과 건조를 반복하며 촉촉하고 빛나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특히 그는 다양한 과일 중 자두의 모습에서 여리지만 단단한 면모를 발견하고, 일상에서 포착한 자두의 모습에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했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국내외 다양한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있는 박세빈(24) 작가는 서양화와 동양화의 재료를 넘나드는 혼합 회화 작업을 선보였다. 한지와 광목에 여러가지 재료를 혼합해 얇은 레이어를 반복적으로 쌓으며 동양화 특유의 풍경을 펼치면서도, 그 안에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상상의 빛을 드러내며 시각적 은유와 내면의 빛을 조화롭게 전한다.

박연경 작가의 작품 'STILL LIFE. 카린갤러리 제공

중앙대에서 영화미술을 전공한 박연경(30) 작가는 꽃 시리즈 ‘Still Life’를 내보였다. 꽃이 시들고 나면 버려지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소재로 삼아 꽃의 형체를 스머징 기법(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형체나 색, 경계를 의도적으로 손이나 도구로 문질러 흐리거나 번지게 하는 기법)으로 흐리게 감싸는 작가는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화면 속에 붙잡는 동시에 꽃에 대한 애도와 존중을 전한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