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구조연맹서 2년간 생태 탐구
- 척추·다리 부러져도 다시 걷는 등
- 더디지만 기어이 이겨내는 모습
- 느림의 삶에서 철학·과학적 통찰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인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한다.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해 주눅 든 사람이라면 이 책에 끌릴지도 모르겠다.

수컷 북미숲남생이. 맷 패터슨 그림. 돌고래 제공

세계적인 동물 생태학자이자 자연 탐험가인 사이 몽고메리의 ‘거북의 시간’. 60대에 접어든 저자는 약 2억5000만 년 생명의 역사를 지닌 동물이자 놀라운 회복력을 자랑하는 거북에게 빠져들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아프고 다친 거북을 돌보고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거북구조연맹’ 본부를 찾아갔다. 저자는 거북의 탄생과 죽음, 고통과 회복의 여정을 함께했다.

아프고 다친 거북을 구하고 돌보는 생생하고 감동적인 드라마, 거북의 생명력과 회복력에 대한 경이로운 증언, 두 종간의 아름다운 연대가 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저자는 2년 이상 거북과 함께 생활하고 다양한 연구논문과 자료를 분석해 거북 종의 생물학적 특성과 거북이 처한 생태적 현실을 각각의 개체가 지닌 고유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거북의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저자는 거북 개체가 살아가는 생물학적 시간이자, 거북 종이 생태계의 일부로서 지속시키는 자연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거북은 움직임도, 호흡도, 맥박도 느리다. 심지어 굶주린 가사 상태에서도 며칠을 버틴다. 거북은 뛰어난 회복력을 자랑하는데 그 사례가 놀랍고 신기하다. 심장이 멎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척추가 부러지고 뒷다리가 마비되었지만 다시 걷고, 악취 나는 반송장 상태에서도 회복해 야생으로 돌아가고…. 책 속의 거북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거북의 시간은 아주 느리지만 끝내 회복하는 시간이다.

또한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이다. 책은 거북구조연맹 일원들이 어미 거북의 산란을 돕는 과정을 핵심 에피소드로 다룬다. 거북들은 차량 밀렵 오염 서식지 파괴 기후 변화 등 인간이 가한 거대한 위협 속에서도 새끼를 낳으러 이동하는 진화적 본능을 멈추지 않는다. 거북의 시간은 탄생과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환의 시간이다.

책에 따르면 힌두교와 불교 신화에서는 거북 아쿠파라가 세상을 등에 업고 지구와 바다를 떠받친다. 또 여러 섬나라와 북아메리카의 부족 신화에서는 ‘위대한 영혼’이 거대한 거북의 등딱지 위에 지구를 올려놓음으로써 나라들을 창조했다. 이때 거북이 상징하는 시간은 모든 것이 새롭게 탄생하는 창조의 순간이다.

사이 몽고메리는 자신이 거북에게 끌리는 이유로 ‘시간’을 꼽았다. 젊은 시절 과학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하루에 14시간씩 일했던 저자에게 시간은 “너무 빨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치명적으로 흘러가는” 화살과 같았다. 세상은 “언제나 더 높은 곳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와 계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거북과 함께하는 시간은 전혀 다른 삶의 감각을, 느리고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선사했다. 이 책은 이렇듯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거북의 삶에서 길어낸 시간성을 철학적 과학적 신화적으로 탐구한다. 미국의 야생동물 전문 화가 맷 패터슨의 삽화는 거북의 아름다움과 야생의 생동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망가진 세상을 복원하는 느림과 영원에 관하여’라는 부제목을 보니 매사에 조급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오래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