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까지 30년 연구 이후
- 20년 이야기 더한 한국어판

“높은 서열로 올라가고자 하는 강한 욕구에 뛰어난 지능까지 겸비한 피건에게 장차 우두머리 수컷의 지위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단 한 가지 심각한 약점은 극도로 예민한 성격이었다. 일례로 무리 전체가 격하게 흥분한 상황이면, 피건은 걷잡을 수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때로는 다른 침팬지에게 달려가 몸을 만지거나 얼싸안아 불안을 달래는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침팬지 피건의 가족. ㈜사이언스북스 제공. ⓒ P. McGinnis

수컷 침팬지 ‘피건’에 대한 설명이다. 제인 구달은 저서 ‘인간의 그늘에서’를 쓸 때 “결국에는 피건이 최상위 수컷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피건과 다른 수컷 셋. 형 페이븐, 유아기 친구 에버레드, 힘세고 유달리 공격적인 험프리.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관계를 겪어내고 피건이 최상위에 오르기까지 수컷 무리에서는 기나긴 분투의 여정이 이어졌다. “이게 침팬지 이야기라고?” 할 만큼 흥미진진했다.

1960년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 제인 구달이 시작한 야생 침팬지 연구는 과학계가 침팬지와 인간이 생물학적 구조 측면뿐만 아니라 지능·행동 면에서도 매우 닮았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제인 구달의 야생 침팬지 연구 및 보호와 교육 활동은 65주년을 앞두고 있다.

초기 10년 연구를 정리해 1971년 나온 ‘인간의 그늘에서’(한국어판은 2001년 ㈜사이언스북스에서 처음 소개했다)에 이어 30년 연구를 담은 ‘창문 너머로: 곰베 침팬지와 함께한 30년’은 1990년 처음 출간됐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한국어판은 그 20년 후의 이야기까지 더해 집대성한 과학의 고전으로,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 최신간이다.

1장 ‘곰베’는 제인 구달이 이른 새벽 숲에서 침팬지들이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가 관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나브로 새벽이 다가왔나 보다. (…) 머리 위에서 이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올려다보니 번개 치는 하늘 아래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우두머리 수컷 고블린(1964~2004)의 무리가 잠자리를 만든 곳이었다. 다시 고요해진다. 고블린이 몸을 뒤척이다가 마지막으로 한잠 더 자는 것임이 분명하다. 잠시 뒤, 내 오른쪽의 잠자리에서 기척이 있고 그런 다음에는 비탈 위쪽으로 또 다른 잠자리에서 기척이 들린다. 이파리가 바스락거리고 잔가지가 끊어지는 소리. 무리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쌍안경으로 피피(1958~2004)와 새끼 플로시(1985~)의 잠자리가 있는 나무를 들여다보니 피피의 발 윤곽이 보인다.”

침팬지들의 아침이 평화롭다. 제인 구달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그 긴 세월 침팬지와 함께 해 왔는지 이 대목에서 짐작해 본다. 책에는 피건 페이븐 에버레드 험프리 고블린 피피 플로시…. 그리고 또 많은 침팬지의 이름이 있다. 그들 이야기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유전처럼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