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때 김해서 끌려가
- 수많은 도공의 존경과 신뢰
- 첫 女사기장 日근대화 발판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당시에 많은 조선의 도자기 장인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왜구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김해와 경상남도 일대 가마에서 만든 도자기를 노략질했고, 전쟁을 일으켜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까지 끌고 갔다. 일본은 뛰어난 기능을 가진 조선의 사기장들을 장인으로 예우해 주며 일본의 도자기를 발전시켰다.

덕선(훗날 백파선)과 남편 김태도의 도자기 가마에 일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들. 김태현 그림. 봄봄출판사 제공

일본의 아리타 지역에서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이 흘린 땀과 피나는 노력이 빚어낸 백자와 각종 도자기는 유럽으로 수출됐다. 일본은 도자기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고, 근대화를 성공시켰다. 먼 과거 일이지만 억울하고 분하다.

약 400년 전 일본 아리타에는 조선 여인 ‘백파선’이 있었다. 한정기 동화작가가 백파선을 불러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파선은 일본 도자기를 발전시킨 중요한 사기장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현재 대감마을이라고 하는 이곳은 조선 시대 감물마을이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장들이 살았던 감물마을에는 김태도와 그의 아내 덕선(훗날 백파선)도 있었다. 백파선이 감물마을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덕선이라는 이름은 한정기 작가가 지었다. 백파선에 관한 사실은 오히려 임진왜란 이후의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나이가 많거나 병든 사람을 제외한 마을사람 모두 일본으로 끌려갔다. 영주 고토 이에노부의 명으로 도자기를 만들지만, 일본 흙은 조선과 달라서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김태도와 덕선, 많은 조선 사기장들은 모두가 노력하여 짙은 갈색과 살짝 청록색이 감도는 막사발을 만들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나이 들어 늙은 덕선을 언제부턴가 ‘백파선’이라고 불렀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곱던 얼굴에 주름이 진 덕선은, 수많은 도자기 장인에게 ‘백파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어른이었다. 낯선 땅 일본에서 자리 잡고 살다가 1656년, 96세 나이로 세상을 뜬 백파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으로서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 김해에 사는 한정기 작가는 “백파선에 대한 연구 논문과 모아 둔 자료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 대감마을 이봉수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동네 옛 어른이었던 백파선을 생생하게 그려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작가의 말’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