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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28> 강원도 명태 음식

알·내장·아가미 버릴게 없는 별미…요놈 덕에 든든했던 동해의 삶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12-12 19:36:59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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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 연안 발에 치이던 생선
- 지금은 씨 말라 수입에 의존
- 강원도선 요리 명맥 이어져

- 식당 기본찬에 '서더리김치'
- 쫀득한 식감의 '코다리 냉면'
- '황탯국'은 웅숭깊은 구수함
- 퓨전 '명태순대'·'강정'도 인기

군부 독재하의 대학 시절, 우리는 늘 목이 말랐다. 수업을 마치면 으레 막걸리 한 사발과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 한 마리로, 이 세상 부조리를 ‘쫙좍’ 찢어대고 질겅질겅 씹어댔었다. 그렇게 노가리를 먹어대며 우리는 그나마 삶의 숨통을 틔우기도 했다.
명태
노가리는 명태 치어를 말린 음식이다. 그 시절 서민이 흔하게 먹던 식재료 중 하나가 명태였다. 아침 해장국은 단연 ‘북엇국’이었고, 그 국을 끓이는 안주인은 새벽녘부터 바깥양반을 생각하며 다듬잇방망이로 애꿎은 북어를 두드려 댔다. 속을 다스린 남편들은 팍팍한 세상을 다시 헤쳐 나가며, 퇴근 후 한잔 술에 동태탕으로 세상 시름을 풀어냈던 것이다.

■생선 하나로 조리법 무궁무진

서민들은 명태를 다양한 음식으로 즐겨 먹었다. 시원한 북엇국이나 황탯국, 얼큰한 동태탕이나 생태탕으로 끓여 먹기도 하고, 꾸덕꾸덕 말려 코다리찜이나 조림해서 먹고, 말려놓았다가 두고두고 구워도 먹고, 매운 양념에 무쳐서 무침회로, 냉면의 고명으로 올려 먹기도 했다.

또 살로 전 부쳐서 먹고, 식해로 담가 먹고, 속을 채워 순대를 만들어 먹고…. 알은 명란젓으로, 내장은 창난젓으로, 아가미는 서더리 김치로, 껍질은 무침으로, 간은 간유구로, 심지어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로도 먹었다.

이렇듯 생으로, 말려서, 얼려서, 두드려서, 찢어서, 토막 내서 먹는 명태. 명태라는 생선 하나로 우리 민족이 조리할 수 있는 모든 조리법을 총동원해 먹어왔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 연안에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이자 어획량이 많으면서 맛과 영양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싼 생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민에게는 아주 친근하면서 자주 접하는 음식의 식재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때 동해 연안에서 발로 차고 다닐 정도로 지천이었던 명태. 명태 철이면 동해에서는 누구 하나 굶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수확량이 넉넉해 고마운 생선이었다. 특히 황해도가 주산지인 명태는 한국전쟁 당시 속초로 피란 온 황해도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내는 식재료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분별한 남획과 수온 상승으로 인해 동해 연안의 명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명태의 전량을 원양어업이나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더불어 명태로 만들어 먹던 음식 종류 또한 현격히 줄었다. 동태탕이나 황탯국 명란젓, 안주용으로 조미 노가리 정도다.
윗줄 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명태회 냉면, 먹태, 황탯국, 코다리찜, 동태탕.
■동해 사람에겐 삶이자 추억

강원도 동해 연안에는 국내 명태가 씨가 말랐음에도, 그 지역 밥상에 명태 음식이 꾸준히 오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명태는 그들의 삶 속 깊이 함께한 생선이면서 추억을 반추하는 생선이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

얼마 전 속초에 들른 적이 있다. 한창 양미리와 도루묵이 어획될 때라 물양장을 뒤덮은 싱싱한 양미리, 도루묵을 보고 군침이 도는 것은 인지상정. 양미리 도루묵을 연탄불에 구워주는 식당에 앉았는데, 기본 찬으로 나온 음식 중 하나가 ‘서더리 깍두기’였다.

‘서더리’는 ‘명태 아가미’의 강원도 말이다. 이 서더리로 강원도에서는 젓갈을 담아 김치를 담그거나 식해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한다. ‘서더리 깍두기’는 명태 서더리와 강원도 고랭지 무를 깍둑깍둑 썰어 새콤하고 시원하게 담근 김치이다.

명태의 주산지 함경도에서는, 제철에 지천으로 쏟아져 나오는 명태를 오래 저장해 먹기 위한 방법으로 ‘동건법’과 ‘염장법’을 활용했다. 동건법은 얼려 말리는 방법이고, 염장법은 소금에 절여 저장하는 방법이다. 명태살은 동건법으로, 내장이나 부속물은 염장법으로 저장해 두고두고 먹었다.

이 저장법으로 함경도의 명태가 우리나라 전역으로 보급이 되고, 다양한 방식의 조리법으로 국민 밥상에 오르는 국민 생선이 됐던 것이다.

서더리 깍두기는 명태를 장만할 때 남은 아가미를 깨끗하게 준비해 소금에 하루 절여두었다가, 간을 한 무와 서더리, 갖은양념 등속을 넣고 버무린다. 이를 사나흘 정도 발효시키면 새콤하면서도 시원한 서더리 깍두기가 된다.

잘 구운 양미리와 도루묵을 이리저리 발라 먹다 보면 가끔 물릴 때가 있다. 이때 서더리 깍두기 한 점 입에 넣고 씹으면 입안이 개운하면서 깔끔해지고, 새콤하면서 시원해진다. 아삭아삭한 깍두기의 식감 또한 경쾌하다. 젓갈과 김치의 두 가지 맛에 푹 빠지게 되는 강원도 음식 중 하나이다.

귀가하는 날 양양에서 먹은 코다리 냉면 또한 일품이었다. 코다리 냉면은 명태살을 소금에 절였다가 맵고 단 양념으로 버무려내는 ‘명태회’를 고명으로 올려서 먹는 강원도 향토음식 중 하나이다. 물론 양념에 비벼서 먹는 함흥식 냉면이다. 쫄깃한 면발에 매콤한 양념, 명태회의 쫀득한 식감까지 한껏 돋보였다.

함경도는 함흥식 냉면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먹던 ‘회국수’는 감자 전분으로 뽑아낸 국수에 양념으로 무쳐낸 가자미회를 주로 올려서 먹었다. 이들이 강원도로 피란 와서 만들어 먹던 국수에는 이 지역에서 싸고 지천이던 명태를 대신해 먹었다. 이것이 강원도의 음식, ‘명태회 냉면’이 된 것이다.

■말리는 온도 따라 황태 먹태 백태

강원도 인제에서 만난 황태 덕장 풍경. 이곳에서 잘 말린 명태는 황태가 된다. 하지만 기온 조건에 따라 거무스름한 먹태가 되기도 한다. 최원준 시인 제공
지난겨울 인제 용대리 소재의 한 황태덕장을 찾은 적이 있다. 나무 침목으로 덕장을 만들고 명태 수만 마리를 걸어 말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었다. 명태를 강원도 깊은 산간 지역에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스무여 날 잘 말리면 황태가 된다.

이렇게 말린 ‘황태’는 살이 노랗게 변하고 부드럽게 부풀어, 맛이 담백 구수하면서 비린 맛이 없어 남녀노소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주로 조개 등속으로 육수를 내어 무 등을 넣고 시원하게 황탯국으로 끓여내거나 매운 양념으로 버무린 황태찜 등으로 먹는다.

황태덕장에서 명태를 제대로 말리면 살이 노란 ‘황태’가 되지만, 기온이 높아 얼었다 녹기를 제대로 못하면 살이 거무스름한 ‘먹태’가 된다. 영하권에서만 계속 말린 명태는 살이 하얀 ‘백태’가 된다. 이들은 황태에 비해 맛이 덜 해 상품성 또한 떨어진다. 그러나 먹태 등은 요즘 젊은이 사이에서 생맥주 안주로 인기가 많은 음식이기도 하다.

덕장에 들른 김에 근처 식당에서 황탯국을 먹었다. 국물이 끝 간 데 없이 시원하고 특유의 구수함 또한 웅숭깊었다. 전날 좋은 여행지에 매료돼 과음한 직후 받은 황탯국이라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제 우리 해역에서 자취를 감춘 명태. 그러나 강원도에서는 그 명태와 명태로 만든 음식의 추억이 오롯하기에, 아직도 명태 음식을 즐겨하고 있다. 망향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오는 속초 아바이마을의 ‘명태 순대’라든지, 새로운 관광지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앙시장의 ‘명태 강정’ 등도 ‘명태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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