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학 풍자 통찰의 매력 돋보여
- 30일까지 부산 중구 힐 갤러리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4줄이다. 한 줄이 15자를 넘지도 않는다. 고작 50자로 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천만의 말씀. 꼬마가 쓴 듯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눌러 쓴, 짧디 짧은 이 글 속에 해학 풍자 통찰 정감이 묵직하게 담겨있다. 어우러진 그림은 또 어떠한가. 간결하고, 날카로운 듯하지만 따뜻하다. 한국 시사만화계의 ‘전설’로 꼽히는 안기태 화백이 ‘데뷔’ 50년을 맞아 마련한 ‘詩(시)도 아닌 것이’展(전) 이야기다.

시사만화가의 길을 걸은 지 올해로 50주년이 된 안기태 화백이 부산 중구 힐 갤러리에서 전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20년쯤 전 시인의 시에 삽화를 그리면서 시와 인연이 됐어요. 그런데 시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너무 길기도 하고. 무슨 뜻인가 싶어 평론을 보면 더 어렵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너무 비장하고, 장엄한 시 말고 재미있는 시를 써볼까. 21세기는 유머가 대세 잖아요.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게 기승전결. 그런 뜻에서 (4줄 시를) 시도해 봤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전설’ 시사만화가의 연륜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낡은 거미줄에/ 늙은 거미 하나/죽어있다/목을 매달고’

“거미는 1년 동안 꼼짝도 않고 먹지 않아도 안 죽는다는데, 왜 죽었을까. 사실 목매달아 죽은 거미는 환경 오염에 대한 경고지. 거미는 환경 변화에 아주 민감하거든.”

81세 화백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발랄함(?)도 있다. ‘땡중도 법어 하나 읊는다/ 산은 산이오/ 물은…물은…물은…물은…/ 물은 셀프로다’ ‘바람도 차가운 들판에/ 외로이 서 있는 허수아비는/ 아들 허수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허수에미도 보고싶다아’

작품 모양새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캔버스도 평범한 게 없다. 나무판을 덧대거나 네모 캔버스 위에 반원 캔버스를 얹었다. 그릇, 대나무 공예품, 고무 바닥재까지 동원됐다. 그림과 재료가 완전 ‘찰떡’이다. 원형 접시 안에는 해바라기가 소복이 피어있고, 물결 무늬 접시 위에는 뱃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안 화백은 “고물상까지 안 가본 데가 없다”며 “액자 하나하나 내 손을 거친 것”이라고 덧붙였다.

1942년생인 안 화백은 딱 50년 전인 1973년 11월 7일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에 시사만화 ‘피라미’를 연재하면서 시사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군부 독재정권이 국제신문을 강제 폐간하자 부산일보로 옮겨 ‘어리벙씨’를 그리다 국제신문 복간 뒤 돌아와 1990년 9월 ‘피라미 선생’ 연재를 재개했다. 당시 그의 만화는 그야말로 ‘히트작’이었다.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 시절, 차마 글로는 못 할 말을 시원하게 표현해낸 그의 만화는 인기가 없으려야 없을 수 없었다.

2003년 4월 30일 자를 마지막으로 국제신문은 떠났지만 지금도 그는 ‘현역’이다. 매일 아침 12개 일간지를 훑고 꼼꼼하게 스크랩한 후 오후에 시사만화 집필을 시작한다. 지금도 지역 일간지 3곳에 작품을 연재한다는 안 화백은 “예전엔 하나 그리는데 하루 종일 낑낑댔지만 지금은 기사 제목만 보면 아이디어가 딱 떠오른다”면서도 “요즘에도 한 번씩 마감시간 못 맞추는 꿈을 꾼다”며 웃었다.

50년째 촌철살인의 해학이 번뜩이는 원동력이 뭘까. “시나 예술작품은 계산해서는 안 나와요. 평소 생각을 많이 해야지. 아이디어가 안 나오면 스탠드 맥줏집에 혼자 앉아 한 병 반쯤 먹으면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가 죽고 본능을 담당하는 우뇌가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엉터리 시를 300편 정도 썼는데… 시집을 한 번 만들까 싶은데”라거나 “달이 좋아 달을 많이 그렸는데, 달 작품만으로 한 번 더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부산 중구 힐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