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프로그래머가 GV 진행
- 걸작 ‘잔느 딜망’도 눈길 끌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커뮤니티비프의 리퀘스트 시네마에는 오로지 ‘우리 배우’에 대한 ‘팬심’ 하나로 기획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배우 오정세의 10년지기 팬클럽 ‘투명한 배우 오정세’가 관객 프로그래머로 나선 ‘오정세 데이즈’이다.

지난 9일 부산 중구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커뮤니티비프의 리퀘스트 시네마 ‘오정세 데이즈’에 참석한 배우 오정세(오른쪽)가 연기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난 9일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는 커뮤니티비프 초청작인 ‘라듸오 데이즈’(2008) 상영과 이예닮 관객프로그래머가 진행한 GV가 열렸다.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 조선 최초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을 완성시키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린 코미디 영화로, 배우 오정세는 성우 만철 역과 ‘사랑의 불꽃’ 속 주인공까지 1인 2역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팬들과 마주앉은 오정세는 “(15년 만에 다시 보니) 낯설고 좋았다”며 소감을 전했다. 영화 ‘라듸오 데이즈’의 메가폰을 잡은 하기호 감독은 “오정세 씨와 팬들 덕분에 극장에서 15년 만에 영화를 봐 기분이 아주 좋다”고 화답했다.

1997년 영화 ‘아버지’로 데뷔한 오정세는 ‘부당거래’ ‘남자사용설명서’ ‘극한직업’ ‘동백꽃 필 무렵’ ‘스토브리그’ ‘악귀’ 등 스크린과 안방을 넘나들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BIFF에서는 최근 개봉한 ‘거미집’ 오픈토크로도 관객들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정세는 연기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8월의 일요일들’(2006)을 꼽았다. “표현하는 연기 말고 보여지는 연기를 했던 영화다. 관객에게 슬픔을 전달하는 표현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슬픔이 보여지도록 했다. 한 신 한 신은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지만, 그 인물이 완성됐을 때, 그냥 보여지는 어떤 인물을 만들어 낸 것 같다”고 그는 소개했다. 연기인생에서 완성하고 싶은 목표를 묻자 “큰 목표는 없다. 그냥 다음엔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만날까 궁금해하고 기대하며 설렌 마음으로 지낸다”고 답했다.

지난 8일에는 벨기에 여성 감독 샹탈 아커만의 영화 ‘잔느 딜망’(1975)이 리퀘스트 시네마에서 상영됐다. 부산여성영화제 김정화 집행위원장과 박지연 전은정 프로그래머가 관객프로그래머를 맡았다. 집에서 매춘하는 가정주부의 일상을 건조하게 담은 ‘잔느 딜망’은 지난해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여성 감독 작품으로는 최초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위’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상영 뒤 무대에 선 전 프로그래머는 “아커만이 25살에 연출한 작품으로 당시 여성 지위는 형편없었는데, 촬영팀의 90%를 여성으로 꾸렸다”는 얘기를 전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이 작품이 ‘오르가즘에 이른 여성이 남성을 거세한다’는 팜므파탈 서사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여성을 죽음과 연결시키는 건 가부장적 사고”라고 짚었다. 3시간20분의 긴 러닝타임과 관련해 박 프로그래머는 “집에서 혼자서는 절대 볼 수 없다”고 웃어 보이며 “기존 영화 형식에 대한 저항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힘을 느낀 작품”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