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전 마지막 판본인 7판 완역
- 웃기고 슬프고 잔혹하기까지
- 내용 가감없이 당시 세태 반영
- 삽화 400점, 영상 큐알코드도

‘그림 동화’에 실린 ‘라푼첼’ 한 장면. 오토 우벨로데 삽화. 민음사 제공

요즘은 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넘쳐나지만, 장년층 이상의 세대라면 ‘그림 동화’로 책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림책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림이 있어서 그림 동화인가보다 생각하기도 했을 거다. ‘그림 동화’(원제는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는 200여 년 전 독일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세계 문학을 대표한다. 야코프 그림1785-1863), 빌헬름 그림(1786-1859) 형제가 14년간 독일 전역을 다니며 모은 웃기고 슬프고 어리석고 지혜롭고 이상하고 잔혹한 이야기들이다. 그림 형제는 둘 다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괴팅겐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민족의 역사, 언어와 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평생 동화를 수집했으며, 언어 연구에 매진한 큰 인문학자들이다.

그림 형제 생전 마지막 판본인 1857년 7판 정본 완역 ‘그림 동화’가 특별판으로 출간됐다. 1권 726쪽, 2권 936쪽에 이르는 ‘그림 동화’ 세트는 200가지 이야기로 묵직하다. 동양 여성 최초로 괴테 금메달을 수여한 전영애 역자가 1권과 2권을, 한국과 독일 문학의 가교 역할을 하는 김남희 역자가 2권을 공동으로 번역했다. 스위스 민담, 동화 연구가인 알프레드 메설리 전 취리히 대학교 사회문화학과 교수가 자문을 맡아 원전 번역의 깊이를 더했다.

책 만듦새도 시선을 빼앗는다. 소장용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그림 형제의 동화책 삽화가로 널리 알려진 화가 오토 우벨로데의 삽화 400여 점, 전영애 역자의 구연동화 영상 34편을 감상할 수 있는 큐알 링크도 수록됐다. 금박을 입힌 고급 양장본 두 권을 책꽂이에 꽂아놓고 혼자 숨어서 과자 먹듯 야금야금 읽어보고 싶다. 목차를 보면 그리운 친구를 만난 듯 웃음이 난다. ‘개구리 왕 혹은 쇠줄 동여맨 하인리히’. 우리가 ‘개구리 왕자’로 알고 있던 동화의 원제목이 이렇게 길다는 걸 처음 알았다. ‘라푼첼’ ‘헨젤과 그레텔’ ‘재투성이’ ‘브레멘 시립 음악대’ 등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낯선 이야기도 보인다. 그림 형제는 왜 이 많은 이야기를 수집하러 다녔을까. 그림 형제의 서문에는 독일 전역을 다니며 민담을 수집하게 된 이유, 수집 방법, ‘동화 할머니’로 불리는 도로테아 피만을 만난 에피소드 등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언어학자인 그림 형제는 전쟁 후 황폐해진 독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독일 전역을 다니며 구전되는 민담을 수집했다. 그 여정에서 ‘민중 문학의 바탕은 초록 풀밭과 같다’는 혜안을 얻었다.

‘그림 동화’의 어떤 이야기는 황당무계하고, 어떤 이야기는 완결미가 떨어지거나, 어떤 이야기는 지나치게 잔인하다.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그림 형제가 종교적, 사회적 잣대 등을 기준으로 검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살던 소박한 지역민이 들려준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대로’ 옮겨 적었기에 서민의 삶, 지역색, 가난한 이들의 소망, 신분의 차이, 신분 세탁, 신화적 상상력 등 기쁨과 슬픔, 지혜와 풍자, 비탄과 환상 등이 의인화하거나 풍자화한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그림 형제의 서문 중 한 대목은 동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동화를 이야기할 때 띠게 되는 미소는 고귀해 보이지만 값이 별로 나가지 않는 미소와 비슷하다. 그것들이 아직 지켜지는 곳에서 동화들은 살고 있다. 좋은지 나쁜지, 시적인지, 똑똑한 사람들한테는 입맛 떨어지는 것인지,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냥 알고, 사랑한다. 받아들이는 것도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어도 사람들은 거기서 기쁨을 느낀다. 살아 있는 풍습이란 그렇게나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