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 소설 ‘토지’ 속 꽃·나무
- 인물에 비유한 25편 이야기
- 하동 최참판댁 상징은 능소화
- 용이·월선이 사랑은 버드나무
김민철의 ‘꽃으로 토지를 읽다’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꽃과 땅을 이야기하는 책인 줄 알았다. 다시 보니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란다. ‘토지’ 등장인물에 얽힌 꽃 이야기이다. ‘토지’를 완독한 독자로서 호기심으로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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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하동군 최참판댁 별당 해당화. ‘토지’에 나오는 그대로 “해당화 잎이 아랫도리를 가렸으나 별당 전부가 환하게 들어오는” 구도다.
한길사 사진제공 |
저자는 책의 첫 장을 ‘서희의 꽃’으로 다룬다. ‘서희와 길상이의 개나리 연정-개나리’ ‘서희, 가시 가득한 탱자나무 같은 여인-탱자나무’ ‘서희, 해당화 가지 휘어잡고 주저앉다’로 소제목이 이어진다. 두 번째 장부터 ‘최참판댁 사람들의 꽃’ ‘평사리 사람들의 꽃’ ‘사랑의 꽃’ ‘개성만점 인물 꽃’ ‘지리산 평사리 통영의 꽃’ 순이다. 목차만 읽어도 ‘토지’의 주요 장면과 인물들이 떠오른다 .
박경리의 ‘토지’는 한국문학사를 대표하는 대하소설이다. 600여 명의 등장인물과 20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이다. 1897년 한가위에서 시작해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을 거쳐 광복까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격동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누대에 걸친 이야기가 지리산 통영 진주 서울 간도 일본 등으로 확장되며 펼쳐진다. 우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인 만큼 평소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꽃이 등장한다. 그래서 ‘꽃으로 토지를 읽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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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엔 최참판댁 담장에 능소화가 피는 것으로 나온다. |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토지’의 현장들을 직접 방문했다.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해 놓은 하동 최참판댁은 계절별로 가서 분위기를 보고 어떤 꽃과 나무들이 있는지 살폈다. 박경리 작가의 고향이자 ‘토지’ 4~5부의 주 무대인 통영도 여러 번 방문해 미륵산과 박경리기념관 등을 취재했다.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을 읽고 배경을 찾아가는 문학기행과는 또다른 시각, 섬세한 감성이 느껴진다.
저자는 여성작가가 썼지만, 남성적인 작품인 ‘토지’에 꽃이라는 소재가 얼마나 나올지 걱정했던 마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건 기우였다. 아니 꽃이 많이 나오는 것에 놀랄 정도였다. 최참판댁의 상징으로 능소화가 나오고 강청댁이 신혼 시절 신랑 용이에게 할미꽃을 꺾어주는 장면이 나오는 등 작품 곳곳에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저자는 서희와 최참판댁 사람들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성격을 꽃의 특성과 연결 지어 인물들의 서사를 돋보이게 했다. 작품 속에서 인물을 묘사하거나 그들이 등장할 때 함께 나오는 꽃을 찾아 25편의 글을 썼다. 글마다 저자가 붙인 제목만 봐도 인물과 꽃·나무가 맞아떨어진다.
‘길상이, 파초같이 품이 넓은 남자’ ‘석류빛깔 다홍치마 입고 싶다는 봉순이-석류꽃’ ‘강짜 대명사 강청댁의 할미꽃 순정’ ‘임이네, 물가의 잡초 같은 탐욕의 여인-고마리’ ‘함안댁의 한을 안고 기둥만 남은 살구나무’ ‘머루덩굴 같은 귀녀의 집념’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의 상징-버드나무’ ‘참나무같이 단단한 집사, 장연학’ 등. 저자는 ‘토지’를 대표하는 꽃으로 해당화를 택했다. 이 소설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에 감격한 서희가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고 주저앉는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슬쩍 꽃 한 송이를 내밀면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외모, 스토리를 들려준다. ‘토지’를 읽어 본 독자들은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받겠다. 또한 모든 독자에게 방대한 분량인 ‘토지’의 윤곽을 그리는 것을 넘어 작품의 주제와 핵심을 안내한다. 등장인물이나 꽃과 관련된 박경리 작가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용이의 아들인 홍이가 낳은 딸 상의는 박경리 작가의 여고 시절 모습을 많이 투영하고 있다. 상의의 꽃을 다룬 글의 제목은 ‘상의의 민족의식이 최고조일 때 핀 꽃-무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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