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은덕 ‘한국어 수업’ 등 토대
- 섬세하고 단단한 사유 돋보여
- 해양문학에 대한 비평도 담아

강희철 문학평론가가 지난 20일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평론집 ‘무한한 사랑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hoonkeem@kookje.co.kr

“평론집 제목에 눈길이 갔다. ‘무한한 사랑의 세계(신생 펴냄·사진)’로 평론집 제목을 잡은 사연이 궁금하다.” 지난 19일 강희철 문학평론가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첫 물음은 제목에 관한 것이었다. 강 평론가는 웃으며 “솔직히 동료 문학평론가 전성욱 교수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이내 진지하게 ‘무한한 사랑’을 설명했다.

“무한이라는 게, 사실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잖아요. 그러면서도 꼭 필요하죠.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렇죠. 좌절을 강요당하는 오늘 여기 이 세계에서 좌절을 안 하려면 무한한 사랑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문학을 생각해보죠. 옛날의 영화를 잃고 나가떨어진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는 진단이 많죠. 지역성이나 지역문학도 떠올려봅니다.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뭐가 필요하다? 무한한 사랑!”

저자의 안내를 듣고, 평론집 ‘무한한 사랑의 세계’를 다시 펼쳐 곰곰이 보니 이 책은 ‘문장 맛집’이다. 섬세하고도 단단한 사유와 판단이 ‘지역과 문학’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펼쳐진다. 게다가 이 책에선 ▷무한한 사랑과 적대의 세계-황은덕 ‘한국어 수업’ ▷무한한 사랑을 꿈꿨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 무한이나 사랑이 들어간 제목·문장을 곧잘 만난다.

‘코로나 시대의 문학, 비말과 점액질로서의 글쓰기’ 단원에 만난 문장은 이렇다. “문학을 새롭게 하려는 자극을 받고 싶은 작가들은 다른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필사하기도 했는데, 이 필사의 방식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좋은 문장만을 받아들이는 필사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이는 소설가로서 필사하는 이유를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사는 좋은 문장을 자신이 가지기 위해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지 못한 타인의 문장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무의식의 지평을 열어가는 것이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다시 이야기를 펼쳐야 하는, 문학의 자리에 서서’라는 글에서 맞닥뜨린 문장도 곱씹게 된다. “자본이 끊임없이 투여되고, 그 예술적 행위에 의미 부여가 재빨리 이뤄지는 중심부의 문학은 이미 지역을 들여다볼 틈이 없다. 지역을 생각하기 이전에 그들 스스로의 가치를 계속해 증명해야만 살아남기에, 지역의 문학이 중심부의 문학과 같은 소비적 위치에 놓인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이다.”

이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역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작가 자신에게 영광과 기쁨의 형태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기댄 그리고 자기희생에 기댄 어떠한 상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구조화된 측면에 가까운 것이다.” 냉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짚었다. 현재의 ‘구조’를 직시하고 현실을 인식할 때(막연한 꿈에서 깨어나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지역문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여기에는 들어있다. ‘무한한 사랑’ 개념은 이렇게 책 속에서 꾸준히 모습을 드러낸다.

해양문학에 관한 논평도 눈길이 갔다. ‘새로운 시대의 해양문학을 위하여 - 문학의 실천적 부표로서의 바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해양문학은 리얼리즘적인 입장에서 지나치게 작가가 지닌 해양문화에 대한 경험의 토대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감수성에만 기대고 있는 ‘상처’나 ‘향수’의 소재로만 바다를 다루는 점도 해양문학이 지향해서는 안 될 방식으로 비판되고 있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바다라는 소재를 가지고 감수성이나 상상력만으로 글을 쓰는 문제를 ‘해양’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해서 겪는 무지의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 대목이 지역 문단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만한 이야기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