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을 보장하라. 이동권을 보장하라.”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오니 어른들이 싸우고 있었다.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지하철 문에 누워있었다. 지하철은 멈춰 있고 승무원이 와서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싸주신 반찬을 빨리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미래의 유명한 유튜버가 꿈인 내가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어른들의 싸움을 촬영했다. 욕설이 오갔다. 점점 큰 소리가 심해지니 나도 슬슬 짜증이 났다. 나는 촬영을 멈췄다. 드디어 승무원과 여러 사람이 휠체어를 들어 이동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열차가 출발했다.
겨우 집에 도착했다.
“영훈아, 왜 이렇게 늦었어?”
“엄마, 지하철이 한 시간이나 연착됐어. 왜 이런 날 장애인 시위를 하고 그래?”
“뭐, 시위하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니?”
“무거운 반찬 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바쁜 사람들 지하철도 못 타고, 남들도 생각해야지? 이기적이야.”
“다 이유가 있겠지.”
“난 민폐 끼치는 사람들 딱 질색이야.”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브이로그를 편집했다. 제목은 ‘민폐 장애인’으로 올렸다. 5학년 우리 반 친구들 20명 정도가 구독자이다. 아직은 조회 수가 많지 않지만 난 유명한 유튜버가 될 것이다.
“영훈아, 금방 고모 오시니까 방 청소 빨리해.”
“고모는 왜 우리 집으로 오는 거야? 호텔로 안 가고?”
“너, 그런 말 하면 못써. 고모가 15년 만에 한국 오는데 당연히 우리 집으로 와야지.”
얼굴도 모르는 고모가 오는 게 귀찮아서 짜증이 났다. 고모가 오지 않으면 유튜브 보며 편하게 지낼 텐데, 정말 귀찮다.
띠띠띠띠띠.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아빠와 고모였다. 나는 고모를 보고 놀랐다. 고모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 부모님의 대화에서 고모가 몸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어머, 영훈이구나.”
“아, 안녕하세요.”
파마머리에 빨간색 뿔테 안경, 얼굴도 예쁘고 우아한 모습이 정말 예술가 같았다.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자꾸 눈길이 갔다.
“고모, 반가워요. 배고프죠? 밥만 되면 다 했어요. 영훈이랑 잠깐 얘기하고 있어요.”
엄마랑 아빠는 주방으로 갔다. 고모는 휠체어에서 움직이는 모습도 소파로 옮겨서 앉는 모습도 굉장히 익숙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었다. 고모와 소파에 앉아 있는데 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고모 휠체어 앞 손잡이에 최신 짐벌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고모, 이건 뭐예요?”
“고모가, 유명한 유튜버란다.”
고모는 짐벌 카메라를 끄고 휠체어 앞에 고정한 나사를 풀었다.
“정말이요? 저도 유튜버인데. 제가 편집의 달인이거든요. 고모는 무슨 콘텐츠예요?”
“독일살이도 올리고, 맛집도 알려주고 독일에서 잘사는 비결을 알려준달까? 관심 있으면 보여줄까?”
고모는 휴대전화를 꺼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고모가 보여준 영상에는 독일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베토의 하루’ 구독자가 40만 명이고 동영상이 100개가 넘고, 조회 수는 200만이 넘었다.
“우와. 고모 완전 유명하네요. 고모가 베토벤 닮아서 베토의 하루예요?”
“하하. 내가 베토벤 닮았니? 베토벤 음악을 좋아해서 베토의 하루야. 내가 바이올리니스트인데 연주 영상보다 휠체어 탄 일상이 더 인기가 많다니,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주야.”
고모가 내게 짐벌 카메라를 건넸다. 나는 짐벌 카메라를 켜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정말 빠르게 움직이는데도 화면이 흔들리지 않았다. 신기했다.
“영훈아, 고모랑 예랑 문화회관에 같이 가지 않을래? 고모가 장애인 음악회에 초청받았거든. 내일이 리허설이야. 브이로그 찍을 조수가 한 명 필요한데, 어떠니?”
“제가요? 예랑 문화회관이요? 거긴 서울이라 저는 길 잘 몰라요.”
“길은 고모가 안단다. 동행을 해주면 짐벌 카메라를 선물로 줄게. 어떠니?”
가장 갖고 싶었던 짐벌 카메라다. 최소형 짐벌인데 흔들림까지 완벽하게 잡아주는 최신형으로 유명한 유튜버들이 다 갖고 다닌다. 이것만 있으면 유명한 유튜버가 될 것 같았다. 아니 벌써 유명한 유튜버가 된 기분이었다. 고모가 온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짐벌 카메라가 온 것이 행운이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고모와 나는 일어났다. 아빠가 몇 번을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고모는 대중교통을 선택했다. 독일에서는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나는 고모의 바이올린을 메고 집을 나섰다. 고모의 작은 휠체어는 좋아 보였다. 바퀴의 회전도 좋았고 빠르게 잘 굴러갔다. 고모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서 잘 갔다. 고모의 익숙한 움직임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짐벌 카메라에 찍히는 고모 모습을 봤다. 촬영 감독이 된 기분이었다.
“오늘 베토의 하루는 한국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예랑 문화회관까지 가는 길을 소개할게요. 오늘의 조수는 제 유일한 조카, 박영훈 군입니다. 미래의 유명 유튜버입니다.”
줌으로 당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위로 빨리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 정말 빠른 속도의 움직임도 흔들림 없이 잘 잡았다. 고모가 이 비싼 것을 준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택시 승강장에 도착했다. 고모는 택시 쪽으로 다가가서 앞 창문을 두들겼다.
“기사님, 제 휠체어를 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2미터 뒤에서 고모를 계속 촬영했다. 택시 아저씨가 싫어할 것 같아 걱정되었다. 이런 상황이 불편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운전석에서 내려 고모 쪽으로 다가왔다.
고모는 휠체어를 택시 가까이 붙이고 엉덩이를 들어서 한 번에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팔로 두 다리를 옮겼다.
“커서 안 들어갈 것 같은데.”
기사 아저씨는 휠체어를 앞뒤로 굴리면서 말을 했다. 나는 귀찮은 표정의 기사님을 보니 난처했다.
“여기를 잡아당기면 바퀴가 빠지는데, 바퀴를 먼저 빼고 가운데를 접으면 됩니다.”
아저씨는 고모가 잡아당기라는 레버를 누르고 바퀴를 당겼다. 잘 빠지지 않았다. 아저씨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멈춰서 바라봤다. 나는 우물쭈물 망설였다. 카메라를 끄고 가 봐야 하는지 그냥 계속 촬영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렸다.
고모는 택시 승강장에 서 있던 젊은 아저씨에게 말했다.
“저기,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젊은 아저씨는 다가와서 한 번에 바퀴를 빼고, 다른 쪽 바퀴도 빼서 트렁크에 실어줬다.
“고마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젊은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가벼운 목례를 하고 다시 승강장으로 갔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택시 뒷좌석에 탔다. 아저씨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손님이 탔다는 표정이었다.
“에이, 손에 기름때가 다 묻었네. 다른 기사 만났으면 승차 거부했을 거예요. 그래도 나니까 도와주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 인식이 좋지 않아요.”
아저씨는 생색내며 말했다.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그래도 태워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죠? 한국은 아직 장애인 인식이 좋지 않죠? 저는 독일에 살아요. 독일에는 배리어 프리라고 장애인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도로와 교통수단을 편리하게 만들었죠. 독일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답니다. 버스에도 휠체어가 늘 있지요. 그래서 굳이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배리어 프리죠.”
고모는 마지막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아, 독일에서 오셨군요.”
아저씨는 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고모와 나는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서울까지 가려면 연수역에서 한 시간은 걸린다. 고모와 함께 간다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내 눈앞에 수십 개의 계단이 보였다. 고모는 익숙하게 장애인 리프트 호출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역무원이 도착했다. 역무원은 익숙하게 리프트를 내려주고 휠체어가 안전하게 고정되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리프트는 음악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였다. 거북이보다 느린 속도로 천천히 내려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몸에 화살처럼 박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짐벌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어디로 숨고 싶었다.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 역사로 내려갔다. 지하철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휠체어 탄 사람들이 목에 팻말을 걸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연착된다고 화를 내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또 시위 시간에 걸렸다.
“고모, 어제도 시위하느라 한 시간이 연착됐는데, 다음 역으로 갈까요.?”
“영훈아, 잠깐 기다려 보자.”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주위를 보니 경찰도 있었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고모에게 소리를 쳤다.
“집에 처박혀 있지 왜 돌아다니냐고.”
고모에게 삿대질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두려웠다.
“저희 고모는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민폐라고. 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집에나 있을 것이지.”
아저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떻게 하지? 아저씨는 계속 따라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아저씨의 말에 동조하는 말이 들렸다. 모두가 고모와 나를 쳐다봤다. 경멸하는 눈빛처럼 느껴졌다. 고모는 장애인 시위하는 곳으로 움직였다. 반대쪽으로 가야 안전할 것 같아서 고모에게 말했다.
“고모, 저쪽으로 가요.”
고모는 들리지 않는지 시위하는 곳으로 바퀴를 굴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고모는 한가운데 서 있는 장애인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여러분, 저는 독일에 사는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한 곡 연주해도 될까요?”
고모의 목소리는 우아하며 단호했다. 몇몇 사람들이 고모를 향해 시끄럽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고모는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지하철 역사에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는 노래다. 작년에 피아노 학원에서 합창했던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였다.
사람들의 싸우는 소리 위에 고모의 연주가 눈처럼 덮였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바이올린 소리에 귀 기울이듯 이쪽을 바라보며 경청했다. 순식간에 싸움의 소리는 사라지고 역사 안에 음악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고모는 음악에 취한 듯한 표정으로 온몸을 움직이며 연주했다. 정말 멋진 연주였다.
나는 심장이 뛰었다. 가슴에 뭔지 모를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고모의 연주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좋아서일까? ‘환희의 송가’가 전쟁터에서 울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고통받는 전쟁터에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평화의 마음으로 바꾸었던 노래가 내 귀에서 울렸다. 순간 웅장한 소리가 내 심장을 쳤다.
나는 짐벌 카메라를 내려놨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광판 어플에 ‘배리어 프리’를 적어 머리 위로 높이 올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왔지만, 몸에 박히지 않았다. 시위하던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고 휴대전화에 ‘배리어 프리’ 글자를 적어 함께 올렸다. 전광판 불빛과 고모의 아름다운 연주 소리가 역사 안에 가득했다. 연주가 끝나자 몇몇 사람들은 손뼉을 쳤다. 시위하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려고 움직였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승강장으로 걸어갔다. 싸움이 끝났다. 아무도 싸움의 원인을 묻지 않았다. 신기하게 평화가 찾아왔다.
아,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로. 그리고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주변의 소리도 익숙했던 공간도 다르게 느껴졌다. 다시 고모를 봤다. 나는 고모의 바이올린을 챙겨서 어깨에 멨다.
“고모, 리허설 늦겠어요. 빨리 가요.”
“영훈아, 리허설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나는 왜 가지 않아도 되는지 묻고 싶었지만,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오늘은 특별한 하루이다. 고모와 나는 발길을 돌렸다.
“영훈아, 오늘 영상은 편집해서 올려주렴. 참, 영훈이 유튜브는 이름이 뭐니?”
앗, 큰일이다. 갑자기 어제 올린 ‘민폐 장애인’ 영상이 생각났다. 갑자기 손발에 힘이 풀렸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저, 저는 아직 영상이 많지 않아서요. 몇 개 더 올리고 알려드릴게요.”
집에 가서 영상을 지워야겠다. 커닝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빨리 지우면 된다. 그래도 잘못을 수정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생겼다. 베토의 하루는 여기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