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21> 정희선 작가의 수필집 ‘국제시장’

국제시장 50년 지킴이…치열한 삶의 현장, 문학이 되다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12-26 19:44:20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열일곱 도매상 점원으로 ‘입성’
- 가게 내면서 틈틈이 문학 공부
- 첫 기고 등 국제신문과도 인연

- 도매상서 만나 근면·인내 배우며
- 평생 친구 된 옆 가게 상인들 등
- 시장 일상 잔잔히 풀어낸 글들
- 작가가 파는 머플러처럼 ‘포근’

국제시장은 필자가 처음 본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었다. 경남 김해에서 살다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부산에서 살게 됐는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국제시장은 멀지 않았다. 대신동의 학교에서는 하교 길에 보수동을 지나 구경하러 갔고, 휴일에는 초장동 언덕의 집에서 부평동을 지나 놀러 다녔다. 걸어서 시장까지 가는 동안 늘 두근거렸다. 활기찬 목소리로 어깨를 부딪치며 걷는 사람들, 가게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물건,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한 시장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후 자라면서 어떤 화려한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를 봐도 국제시장을 처음 봤던 만큼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필자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던 셈이다.
부산 중구 국제시장 3공구 B동 2층 덕성상회에서 만난 정희선 작가. 그는 남편과 함께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시장의 세월이 70여 년에 이른다.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던 시장이다. 그곳에서 50여 년 동안 장사를 한 정희선 씨가 수필집 ‘국제시장’을 냈다. 표지에 ‘굳세게 살아온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반백년 남짓 살아낸 나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놓여 있다. 어떤 글을 담은 책인지 부제가 다 말해주는 듯하다. 정희선 수필가를 국제시장에서 만났다.

■ 국제신문이 안내한 문학의 길

국제시장- 정희선 / 수필과비평사 / 2021
한파를 주의하라는 생활안전문자를 받은 날,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추워서인지, 코로나19 탓인지, 세월의 변화 때문인지 예전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길가의 가게마다 ‘돌아가는 길에 사가야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값싸고 좋은 물건이 즐비했다. 물건 구경에 빠져 가게를 연신 기웃거렸다.

국제시장 3공구 B동 계단 앞에서 정희선 씨가 환한 웃음으로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면 내처 걸어갔을 것이다. 그의 가게는 2층에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올랐을까. 계단을 올라서자 화려하고 따뜻한 세상이 펼쳐진다. 정희선 씨는 스카프, 머플러, 숄, 손수건, 부채 등을 판매하는 도매업을 하고 있다. 겨울철이라 가게에는 머플러와 숄이 가득 진열돼 있다. 밖은 찬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안에는 꽃이 활짝 핀 것 같다. 예쁘고 포근한 꽃. 보기만 해도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정희선 씨는 195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살 때 국제시장 메리야스 도매상 점원으로 일하면서 부산 사람으로 살아왔다. 첫 자취방이었던 대청동 된비알의 작은 다락방에 살면서 아랫동네까지 내려가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 먹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어린 나이에 힘들었겠다고 말했더니 “시골에서 부모님 도와 일하던 것에 비하면 힘들지 않았다”는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하고, 가게를 내고, 장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도 배움의 갈망을 잊어버린 적은 없었다. 가게에 손님이 뜸할 때마다 책을 읽었던 그가 문학을 정식으로 접한 것은 국제신문 덕이었다. “2004년에 국제신문에 ‘영도다리, 주민입장 생각을’ 이라는 글을 투고 했는데 오피니언 면에 실렸어요. 신문을 본 남편이 제가 문학공부 하는 걸 인정해줬어요.”

2005년 초여름, 국제신문에서 연 문학강좌를 들었다. “마침 여름 비수기로 접어들고 있어서 운 좋게 강좌를 들으러 다닐 수 있었지요.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시인과 친구도 되고, 그 친구 안내로 동인 활동도 하고요. 동인들이 저도 몰래 제 글을 ‘지구문학’에 응모하면서 수필 부문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어요.”

방송통신대 ‘낟가리 문학상’, ‘현대문학사조’에서 시로 시인상과 수필로 문학작품 우수상도 받았다. 장사를 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문학 세계를 하나하나 쌓아올렸다. 2015년에 수필집 ‘국향과 어머니’를 내고 2021년에 시집 ‘몽돌’과 수필집 ‘국제시장’을 냈다. “올해 책을 두 권이나 낸 건, 코로나19 영향입니다. 매상이 10분의 1로 떨어질 정도로 고객의 발길이 뜸해진 건 애가 타지만, 글 쓸 시간이 많아졌던 겁니다.” 코로나의 역설이다.

■ 장사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수필집 ‘국제시장’에는 부산에 와서 정들이며 살았던 지난 세월, 시장에서 일하면서 보고 겪은 일, 고향과 가족에 대한 마음, 늘 주변을 돌아보는 불심과 시선 등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우리의 일상은 사소하다. 오늘을 사는 동안 어제의 일은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면서 점차 잊힌다. 하지만 글로 기록하는 순간 그 일상은 빛나고, 그 속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마음그릇은 더 커진다. 수필 한 편 한 편을 읽는 동안 정희선 씨의 따뜻하고 넓은 마음이 그가 팔고 있는 머플러처럼 포근하게 와 닿았다.

책 속의 ‘국제대학 동기들’에서는 시장사람들이 나누는 정을 보았다. 국제시장에서 일하면서 앞 가게, 옆 가게, 그 옆 가게 도매상의 점원으로 만나 평생 친구가 된 동기들 이야기다. 정희선 씨는 한 술 더 뜬다. 그는 이렇게 썼다. “국제종합전문대학 경영과 출신이라고. 우리가 배운 과목은 사회와 바로 접목되는 정직·근면·인내·친절·계산 등이며, 어느 대학에서도 내놓고 가르치지 않는 종합과목을 이수했다고. 그것도 취직하기 어려운 도매상에서 4, 5년씩 고생해 돈 벌며 현실 공부를 치열하게 한 덕에 모두가 잘 살고 있다고.”

정희선 씨는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수필집 ‘국제시장’ 표지로 만든 액자를 들었다. 얼핏 책 표지가 아니라 국제시장 홍보액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만약 제가 문학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장사만 하다가 가지 않겠어요? 살아가는 이야기, 마음에 고인 많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이에요.” 그의 말을 생각하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 시장 곳곳에 박힌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새삼 깨닫는다. 정희선 씨에게는 국제시장이 글밭일지도 모른다.

책 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영도서 한 달 살고, 최대 150만 원 받으세요"
  2. 2“압사 위험” 신고 빗발…어르신 몰린 벡스코 한때 초비상
  3. 3밀려드는 관광·문화…주민도 만족할 ‘핫플 섬’ 만들자
  4. 4육군서 또 가혹행위 '하사가 병사에 드릴로'...부대 '무마' 정황
  5. 5갈비탕 쏟고 "조심 안 한 손님 책임"...항소 재판부 "주의는 식당 몫"
  6. 6도시철 무임손실 급증…‘초고령 부산’도 노인연령 상향 촉각
  7. 7부산 ‘탄소중립 어벤저스’ 한자리에
  8. 8공공기관 이전에도…10년간 3만 명 엑소더스
  9. 9영도 상징 글씨체 개발, 세계 디자인상 휩쓸어
  10. 10전기자동차 리콜 급증… 믿고 타기에는 ‘뭔가 찜찜’
  1. 1尹 지지율 4주만에 반등 40% 임박..."김성태, 천공 의혹 영향"
  2. 2'대통령실 갈등' 안철수 돌연 공개일정 중단 "정국 구상 숨고르기"
  3. 3與 당대표 적합도 안철수 36.9%, 김기현 32.1% 접전…최고위원은?
  4. 4윤 대통령, 4월 BIE실사단 부산서 맞을까
  5. 5고 노옥희 전 울산교육감 남편 천창수 씨 교육감 보궐선거 출마 선언
  6. 6북한 '부촌' 개성서 아사자 속출, 북한 식량난 한계 도달
  7. 7野 '이태원참사 책임' 이상민 탄핵안 오후 발의..."8일 단독처리"
  8. 8장외집회 연 민주, 또 나갈지는 고심
  9. 9윤, 국힘에 "안 엄중 경고해달라"..."당무 개입, 민주주의 위배" 반발
  10. 10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與 “책임 다할 것” 野 “대통령 왔어야”
  1. 1부산 ‘탄소중립 어벤저스’ 한자리에
  2. 2전기자동차 리콜 급증… 믿고 타기에는 ‘뭔가 찜찜’
  3. 3애플페이 내달 상륙…NFC 갖춘 매장부터
  4. 4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가능성에 수산업계 대책 마련 고심
  5. 5부산 '100대 업종' 보니…1년간 예식장 12%↓·펜션 27%↑
  6. 6부산엑스포 현지실사 때 '최첨단 교통' UAM 뜬다
  7. 7해운경기 수렁…운임지수 1000선 위태
  8. 8“수소경제 핵심은 ‘연료전지’…지역 산·학·관 협업해야”
  9. 9삼성전자 갤럭시 S23 사전판매 돌입…체험공간 부산에도
  10. 10“바이오가스로 그린 수소 생산…가장 현실적 방법”
  1. 1"영도서 한 달 살고, 최대 150만 원 받으세요"
  2. 2“압사 위험” 신고 빗발…어르신 몰린 벡스코 한때 초비상
  3. 3밀려드는 관광·문화…주민도 만족할 ‘핫플 섬’ 만들자
  4. 4육군서 또 가혹행위 '하사가 병사에 드릴로'...부대 '무마' 정황
  5. 5갈비탕 쏟고 "조심 안 한 손님 책임"...항소 재판부 "주의는 식당 몫"
  6. 6도시철 무임손실 급증…‘초고령 부산’도 노인연령 상향 촉각
  7. 7공공기관 이전에도…10년간 3만 명 엑소더스
  8. 8영도 상징 글씨체 개발, 세계 디자인상 휩쓸어
  9. 9입춘 지나자 부산 울산 경남 낮 최고 10~13도...남해는 밤비
  10. 10“영도민 1명 줄면…연간 숙박객 9명, 당일 여행객 32명 유치해야”
  1. 1롯데 괌으로 떠났는데…박세웅이 국내에 남은 이유는
  2. 2쇼트트랙 최민정, 올 시즌 월드컵 개인전 첫 ‘금메달’
  3. 3폼 오른 황소, 리버풀 잡고 부상에 발목
  4. 4황의조 FC서울 이적…도약 위한 숨 고르기
  5. 5MLB 시범경기 던지고 간다…오타니, WBC 대표팀 지각 합류
  6. 6국내엔 자리 없다…강리호 모든 구단과 계약 불발
  7. 7맨유 트로피 가뭄 탈출 기회…상대는 ‘사우디 파워’ 뉴캐슬
  8. 8WBC에 진심인 일본…빅리거 조기 합류 위해 보험금 불사
  9. 9‘셀틱에 녹아드는 중’ 오현규 홈 데뷔전
  10. 10한국 테니스팀, 2년 연속 국가대항전 16강 도전
우리은행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봄을 갈망한 저항도시…카프카·쿤데라 낳은 문학도시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메밀묵과 영주 태평초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기와 친구가 되고싶은 유령 外
국립중앙박물관 명품 유물들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맛 기억하다 /김수엽
그림 세계 /주강식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뮤지컬 영화 ‘영웅’ 윤제균 감독
‘커넥트’ 미이케 타카시 감독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교섭’의 임순례 감독
‘영웅’의 나문희·김고은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작품 홍보 인터뷰도 못 나온다고요? 주연배우의 책임감 아쉽다
아바타2 한국서 세계 최초 개봉…아이맥스? 3D? 뭘로 즐길까
일인칭 문화시점 [전체보기]
봄날의 장단을 좋아하나요
“첼로 심준호, 일렉 기타처럼 파격 연주…부산시향과 협연 코로나 탓 미뤄졌죠”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제도권 밖 돌봄 선생님, 공동체 소멸에 맞선 삶
'유랑의 달'…일본사회 ‘질서의식’ 바라보는 재일동포 감독의 시선
BIFF 리뷰 [전체보기]
‘지석’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3년 2월 6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3년 2월 2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김일두×HIPE ‘자율신경계’
한국 웹툰을 원작으로 한 중국영화 ‘문맨’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3년 2월 6일(음력 1월 16일)
오늘의 운세- 2023년 2월 2일(음력 1월 12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2022년 10월 13일
오늘의 BIFF - 2022년 10월 12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잠의 효율성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한 권상신
춥고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읊은 두보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