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야기 공작소-영남 음악계 파수꾼 ‘작곡가 이상근’ <하> 이상근 음악과 문필 활동

창작 넘어 연주단체 결성에도 열정…“부산 비평을 키우자” 펜 잡기도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1-12-22 19:47:52
  •  |   본지 1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6·25부터 2000년 작고 때까지
- 부산 구심점으로 영남예술 육성

- 지역 작곡가 여러 모임 꾸리고
- 후학 악단·합창단 결성도 주도

- 남다른 애정 쏟은 ‘프로 무지카’
- 부산대 제자 연주 활동 길 틔워

- 평론계 활성화 위해 책 펴내고
- 중학음악 국정교과서 편찬까지
- 본지에 연주시설 촉구 기고도

한국전쟁 기간 임시수도이던 부산에 정부의 임시청사들만 자리 잡은 게 아니었다. 서울 소재 대학들도 부산에 둥지를 틀었고, 문화예술인 역시 부산으로 밀려들었다. 부산은 정치·행정의 임시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임시수도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1950년대 초반 부산은 문화예술 영역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외부에 힘입은 것만은 아니었다. 내부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음악계도 마찬가지. 이 무렵 부산에는 작곡가이자 음악교육가 금수현(1919 ~1992)이, 훗날 다작의 작곡가로 등극한 이상근(1922~2000)이 있었다. 1950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부산 음악의 ‘여명기’에 이상근은 작곡가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대학교수로서 음악인 후학 양성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상근은 한국전쟁 이후 2000년까지 부산을 떠나지 않고 부산 문화예술의 성장과 함께했다.
부산대 학생과 교수로 구성된 실내악단 프로 무지카의 연주회(왼쪽)와 부산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정기연주회. 두 연주회 모두 이상근이 지휘를 맡았다.
■‘영남악파’를 새겨 두다

예향인 경남 진주 출신으로 경남 마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이상근이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1953년부터다. 윤이상(1917~1995)의 후임으로 부산고교 음악교사를 맡은 시점이다. 앞서 1952년 이상근은 부산의 이화여대 피란교사의 천막 강당에서 제2회 작곡발표회를 열었다. 이 발표회는 이상근 자신의 표현처럼 “한국 음악사상 최초의 개인 실내악 작품들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가 작곡가로서 행보를 더욱 본격화한 출발선이었다. 이상근은 1955년 새로 문을 연 국립부산사범대학(2년제)에 교수로 재임하면서 대외적인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1958년 5월 12일 시립서울교향악단의 연주로 ‘이상근 관현악의 밤’이 열렸다. 관현악곡만으로 구성된 이례적인 연주회였다. ‘작곡가 이상근’을 ‘서울 무대’에 널리 알렸다. 당시 연주된 ‘교향곡 제2번’은 완결된 4악장 체계를 갖춘 최초의 교향곡 연주로 평가된다.

이상근이 편찬한 음악교과서(왼쪽) 및 동인지 ‘윤좌’의 표지.
작곡가로서 이상근의 명성은 1959·60년 미국 테네시주 조지 피바디 사범대학 연수와 탱글우드 음악제 수학 기회로 이어졌다. 1년간의 피바디 연수와 탱글우드 음악제는 이상근이 현대음악을 접하면서 새로운 창작의 열의를 품는 자극제가 됐다.

이상근은 부산을 음악 인생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그는 1958년 창립된 작곡가 단체 ‘창악회’에서 활동하며 부산 음악가의 대표로 ‘중앙’의 음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동인지 ‘윤좌’의 활동을 통해 부산의 사회 인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역 문화예술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상근은 활동 무대를 부산은 물론 경남 마산과 대구 등 영남지역으로 넓혔다. 그는 ‘영남악파’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음악을 이끌어간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이다. 특히 1986년 초연된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을 비롯한 이상근의 작품들은 부산의 음악 예술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최근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전(展)’에서 이상근 섹션을 맡은 지역인문콘텐츠연구소는 “이상근은 부산 음악문화의 터전을 마련하고 음악교육과 공연문화를 이끌어간 크나큰 스승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로 무지카’에 큰 애정

이상근이 쓴 국제신문 제정가요 ‘내사랑 하루는’의 악보.
이상근은 1958년 최인찬, 함사순, 유신, 최덕해 등과 작곡가 모임인 ‘Group A’를 결성했다. 작곡가들이 활동할 공간 마련이 취지다. 이는 1974년 향신회 창립으로도 이어진다. 그 해 부산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신설과 함께 교수로 취임한 뒤 창작계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차원에서 제자들로 구성된 향신회를 꾸렸다. 향신회는 창작 활동과 발표회, 신인작품 공모, 세미나 개최 등으로 대중적인 보폭을 넓혔다. 이상근은 대학 연주단체의 결성도 주도했다. 효성여대 합창단, 부산대 사범대학 합주단, 프로 무지카(Pro Musica) 등이 그것이다.

1982년 5월 창단 연주회를 연 부산대의 프로 무지카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상근의 실내악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구체화된 것이다. 프로 무지카에는 대학 1학년생부터 강사와 교수진까지 함께했다. 학생들이 연주 활동에 참여할 길을 열어줬다. 프로 무지카는 정기연주회를 통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이상근은 프로 무지카와 관련한 글에서 “프로 무지카는 부산대의 음악적인 얼굴임을 자처한다. 필자가 퇴임할 때까지 작곡에의 집념 이상으로 프로 무지카 지도에도 보람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해도 좋을 것 같다”고 밝혔을 만큼 열정과 애정을 쏟았다.

음악 교과서 발간도 이상근의 업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54년 윤이상과 함께 ‘국민학교 음악지도서 Ⅰ-제1·2학년용’(새로이출판사)를 펴냈다. 이상근이 1967년 영지문화사를 통해 펴낸 ‘중학음악 1’과 ‘중학음악 2’는 1978년 국정교과서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검인정교과서의 난립 속에 이뤄진 성과여서 주목된다. 이 외에도 1979년 규문각에서 펴낸 ‘음악: 교사용 지도서’와 ‘음악’ 교과서도 있다. 기악과 합주를 지향한 이상근의 음악교육관은 교육현장에서 채택된 음악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러한 이상근의 음악 교과서 발간에는 미국 음악교육 현장에서 직접 접한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문필 활동·사가 등 작곡

회갑 기념공연에서의 이상근.
“지방에 있다고 해서 작품 활동에 지장을 받은 적은 전혀 없습니다. 초창기에 부산 음악계가 낙후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중앙무대 못지않게 모두들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산 음악계에 연주만 있지 평론이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근이 창악회를 통해 서울에서 작곡 활동을 하던 무렵 쓴 글이다.

그래서 이상근은 지휘봉 대신 펜도 많이 들었다. 비평과 평론, 음악 해설 등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학술적인 저술 활동에도 나섰다. ‘현대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 ‘우연성(불확실성) 기보법에 관한 시론’, ‘미국의 현대음악-찰스 아이브스와 존 케이지를 중심으로’ 등을 들 수 있다. 부산 동인지 ‘윤좌’의 활동, 매체를 통한 비평과 평론을 통해 자신의 음악관과 창작관을 드러냈다. 1974년 부산시민회관이 들어서기 이전 변변한 연주회장 하나 없던 지역의 현실을 바꿔보려고 국제신보(지금의 국제신문)에 이상근이 쓴 글이 눈에 띈다. 1961년 1월 14일 자에 실린 ‘최초의 민선시장에게’이다. 지면을 통해 문화회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천 명 내외의 좌석을 가지고 알맞은 음향설비, 그리고 오륙십 명의 연주에 지장 없을 무대, 또 꼭 필요한 연주회용의 대형 ‘피아노’만 구비된다면 문화도시 부산의 면목에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근은 각 단체와 회사, 학교 측의 요구에 따라 많은 곡을 쓰기도 했다.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축전서곡’을, 문화방송 창사 30주년 기념해 ‘신정-희망’을 썼다. 또 이상근은 국제신문 제정가요 ‘내 사랑 하루는’과 ‘국제신문 사가(社歌)’, 부산대의 ‘사대가’와 ‘교양학부 찬가’, 부산수산대(현 부경대)의 ‘바다의 아들’, 부산문화방송의 ‘HLKU의 노래’, 부산시 제정 ‘시민의 노래’와 ‘자유의 항구’를 비롯해 ‘부산은행 사가’, ‘PSB(현 KNN) 사가’ 등을 작곡했다. 교가도 많이 남겼다. 동아대 동의대 금성고 낙동고 남성여고 덕문여고 동인고 부산외국어고 중앙여고 중앙고 충렬고 등이다.

글=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사진=지역인문콘텐츠연구소 제공

공동기획: 국제신문·(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뉴스 분석] 서부산 ‘쇼핑몰 삼각편대(롯데·신세계·현대百)’ 시너지…유통상권 팽창 예고
  2. 2일본 신칸센 멈추고 주민 대피령…삿포로·아오모리 등 혼비백산
  3. 3“원전 밀집 부울경, 전력 다소비 수도권…전기료 차등 마땅”
  4. 4영화의 바다 별들 다시 뜬다…BIFF, 10일간의 항해 시작
  5. 5“전력 열세에도 적 심장부 돌진…충무공 정신이 난제 풀 열쇠”
  6. 6잦은 흥망성쇠, 척박한 생존환경…음모·술수가 판쳤다
  7. 7‘역대 최대’ 부산미술제 14일 개막…직거래 아트페어도
  8. 8거포 가뭄 한국, 홈런 펑펑 미·일 부럽기만 하네
  9. 9[서상균 그림창] 레드…그린 카펫
  10. 10[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수리남’의 하정우
  1. 1“원전 밀집 부울경, 전력 다소비 수도권…전기료 차등 마땅”
  2. 2외신 “북한 풍계리 주변 활동 증가”
  3. 3[뉴스 분석] “지금 임금으론 생활 어렵다” vs “매일 출근도 아니면서…”
  4. 4메가시티 합의 못 했지만, 부울경 초광역 사업 첫삽은 뜬다
  5. 5尹 대통령 "北 4000㎞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결연한 대응 직면"
  6. 6부산시의회, 박형준 핵심 공약 '영어상용도시' 사업 제동
  7. 7"엑스포 득표전, 사우디에 안 밀린다"
  8. 8오늘 국감 시작...법사위 '文 감사', 외통위 '순방' 격전 예상
  9. 9여가부 폐지, 재외동포청 신설 추진...與 정부조직 개편안 검토
  10. 10북한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괌 타격 능력 과시
  1. 1[뉴스 분석] 서부산 ‘쇼핑몰 삼각편대(롯데·신세계·현대百)’ 시너지…유통상권 팽창 예고
  2. 2주가지수- 2022년 10월 4일
  3. 3현대백화점, 에코델타시티 유통부지 매입…아울렛 서나
  4. 4이마트 트레이더스 유료 멤버십 도입한다
  5. 5초대형 운송 납기 엄수, 소량 화물도 소중히…포워딩(해상 운송)의 전설
  6. 6“부산지역 공공임대주택에 고가 외제차 적지 않다”
  7. 7"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한국만 재생에너지 목표치 하향"
  8. 8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뚝' 끊긴 美 시장, 9월 아이오닉5 판매량도 '뚝'
  9. 9HJ중공업, 거제 선박블록공장 가동 ‘상선사업 날개’
  10. 10전문가 70명 참석 ‘해양산업리더스 서밋’ 성료
  1. 1오늘의 날씨- 2022년 10월 5일
  2. 2“해외동포 등 전국체전 참가선수 불편없게 도울 것”
  3. 3부산도시철 양산선 2024년 7월부터 시운전
  4. 4놀이마루에 교육청? 학생·시민공간 대안 논의는 없었다
  5. 5부산시교육청, 김석준 전 교육감 검찰에 고발
  6. 6생명지킴 전화기 고장…구포대교 극단적 선택 예방 시설 허술
  7. 7“살았다면 유명 축구선수 됐을 삼촌…결코 헛된 희생 아냐”
  8. 8BTS 공연날 도시철 50회 증편, 고속도 관문엔 환승주차장
  9. 9모범적인 가정 만들어야?… 선행 조례 베끼는 관행 도마 위
  10. 10하청업체 알선 대가로 뇌물수수, 부실시공도 눈감아준 공무원 대거 검거
  1. 1거포 가뭄 한국, 홈런 펑펑 미·일 부럽기만 하네
  2. 2처량한 벤치 신세 호날두, 내년 1월엔 맨유 떠나나
  3. 3권순우, 세계 23위 꺾고 일본오픈 16강
  4. 4필라델피아 막차 합류…MLB 가을야구 12개팀 확정
  5. 5김수지 ‘3주 연속 우승’ 도전…상금 1위까지 두 토끼 잡는다
  6. 6이대호 고군분투했지만…가을의 기적은 없었다
  7. 7손흥민, UCL 첫골 쏘고 토트넘 조 1위 이끈다
  8. 8‘또 해트트릭’ EPL 홀린 괴물 홀란
  9. 9국내 넘어 세계무대서 맹활약, 한국 에어로빅계 차세대 스타
  10. 10김하성, MLB 첫 가을야구 진출 축포 ‘쾅’
우리은행
부산형 오페라하우스 만들자
풀어야 할 과제는
최원준의 음식 사람
백두대간 송이버섯
문화현장 톡톡 [전체보기]
예술로 승화시킨 동물의 세계…라이온킹, 이유있는 1억 관객몰이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유불선 사상 아우른 ‘열자’ 外
관용 가치 입힌 독서와 토론 外
서상균의 그림으로 책 보기 [전체보기]
인간의 순리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어린이를 위한 ‘진짜’ 놀이터
청력 잃고 겪게 된 차별의 벽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가로등 /전용신
초원은 말한다-사자 /설상수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수리남’의 하정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공조2: 인터내셔날’의 현빈
‘비상선언’ 이병헌·송강호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건강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안성기를 기다리며
한국 영화 대표로 아카데미 가는 ‘헤어질 결심’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치솟는 영화 표값 타당한가
'군함도 감독판' 길이가 아닌 완성도 높은 감독판을 허하라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2년 10월 5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2년 10월 4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힙합 시대의 뮤지컬 ‘해밀턴 Hamilton‘
미역수염 첫 번째 정규앨범 ‘Bombora’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2년 10월 5일(음력 9월 10일)
오늘의 운세- 2022년 10월 4일(음력 9월 9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산속 가을비 풍경을 시로 읊은 유희경
최익현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쓴 글
  • 2022골프대회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