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자갈치 주변 매립으로 생겨난 동네
- 6·25전쟁 직후 피란민으로 북새통 이뤄
- 격동의 시대 다양한 테마의 노래 쏟아져
- 대중음악사 중심지로 자연스레 발돋움
한국의 대중음악사에서 하나의 동네가 무수한 가요곡의 터전으로 줄기차게 등장하는 곳은 드물다. 하지만 그 유일한 사례가 있으니 바로 부산 중구 남포동이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무엇이 그토록 많은 남포동 노래를 빚어내었는지 우리는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먼저 남포동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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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이후 부산 남포동은 한국 대중가요의 중요한 소재·배경이 돼 왔다. 사진은 1950년대 남포동. 이동순 제공 |
현재의 남포동은 구도심을 중심으로 주요 시장 백화점 영화관 따위가 밀집해 있으며 서면 다음으로 인파가 몰리는 지역이다. 남포동이 본격적 자리 잡게 된 출발은 초량의 왜관이 일본전관거류지로 바뀌게 되면서부터다. 일본인들은 용두산을 중심한 그 주변 일대를 그들의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자갈치 주변 바다를 매립하며 항만시설을 정비하는 공사를 펼쳤다. 옛 부산시청 자리인 용미산을 중심으로 좌우 얕은 바다를 매축하는 공사를 펼쳤는데 여기에 필요한 흙과 자갈은 복병산과 영도 영선산을 깎아내는 방법으로 충당했다. 남항 일대의 해변은 예로부터 자갈이 많아서 ‘자갈치’란 이름이 생겼다. 일제는 그 일대를 남빈정(南濱町)이라 불렀는데 해방이 되면서 이 일본식 지명을 남포동으로 바꾸었다. 무려 4만 평이 넘는 매축지에 기차역 세관 우체국이 세워지고 국제적 근대무역항과 어업전진기지로서의 기능을 속속 갖추게 되었다.
■최고 번화가 남포동 반영한 한국가요
이곳 남포동은 6.25전쟁 직후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부근의 광복동 중앙동과 더불어 전시물자들이 유통되던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주변과 함께 부산의 최고중심가였다. 용두산과 그 주변은 온통 피란민들의 판잣집이 밀집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중요 명소들을 떠올려본다면 부산극장 대영시네마 국도극장 부일극장 아카데미극장 등의 극장들이 우선 손꼽힌다. 다음으로는 광복로 문화패션거리 부평깡통야시장 국제지하도상가 구제골목 보수동책방골목 한국최대의 수산물집산시장인 자갈치시장 건어물도매시장 대각사 부산근대역사관 BIFF 광장 민주공원 부산영화체험박물관 영주동오름길 모노레일 등을 들 수 있다. 영도대교 부산대교 용두산공원 중앙공원 부산기상청 등도 빠질 수 없는 부산의 중요한 근대명소들이다. 이곳을 둘러보는 인파는 종일 끊이지 않는다. 어쩌면 부산의 근대풍경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와 공간이 아닐까 한다. 이곳 남포동 일대를 중심으로 식당 선술집 유흥가 노래방 따위가 빼곡하게 들어찼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었다. 이러한 풍경의 전형성은 자연스럽게 부산테마 노래와 영화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우선 제목에서 남포동이 등장하는 가요작품부터 몇 가지 살펴보자.
‘남포동 마도로스’(원희영, 1958), ‘춤추는 남포동’(김용만, 1962), ‘남포동 밤11시’(신해성, 1963), ‘남포동 네거리’(남상규. 1964), ‘남포동 밤0시’(고봉산, 1964), ‘남포동 부기’(고봉산, 1964), ‘비에 젖은 남포동’(이경희 박가연, 1965), 비 내리는 남포동(백야성, 1966), ‘남포동 소야곡’(태일, 1967), ‘비 내리는 남포동’(이규항, 1970), ‘남포동 엘레지’(유진설, 1971), ‘돌아온 남포동’(박일남, 1973), ‘남포동의 밤’(남일해, 1975), ‘남포동 블루스’(김동아, 1978), ‘남포동 이야기’(권미경, 1984), ‘남포동 부르스’(심수봉, 1988), ‘남포동 연가’(김승규) 등등 그 수가 적지 않다. 가사본문에 남포동이 등장하는 경우까지 더한다면 남포동테마 노래는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둘이서 걸어가는 남포동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항구의 사랑’(윤일로)에서는 1950년대 청년세대들의 남포동 풍경이 잘 나타나 있다. ‘함경도 사나이’(손인호) 가사에서는 ‘남포동을 헤매 도는 이 밤도 비가 온다’란 대목에서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 없던 피란민의 애절한 내면풍경이 흥건한 눈물로 담겨 있다. ‘남포동 네거리에는 버스도 많은데’로 시작되는 ‘다방아가씨’(허민)의 2절 가사는 인파와 차량으로 붐비던 1950년대 남포동 풍경을 실감나는 그림으로 떠오르게 한다.
■용두산·사십계단·자갈치… 가사 속 명소들
남포동테마 노래들은 전쟁 시기 대파란과 격동의 속사정을 생생히 반영하고 있다. ‘네온가 10번지’(김영애)는 ‘무거운 발걸음 영롱한 불빛 남포동 네온가 10번지를 잊으셨군요’란 부분을 통해 당시 부산 최고의 번화가였던 남포동 풍물을 노래한다. ‘마도로스 청춘’(신해성)은 ‘남포동 거리마다 선술집마다 미련을 두고 간다’란 대목에서 주점이 유별나게 많은 남포동 거리의 정감어린 풍물을 다루고 있다. ‘항구의 5분전 열두시’(남상규)의 2절 가사는 ‘남포동 네거리 젊은 꿈이 지새는 네온거리’란 대목에서 야간조명이 휘황찬란한 남포동 풍경을 실감나게 경험하게 해준다. ‘화류계 여자지만’(시민철)은 ‘남포동 골목길을 누굴 찾아 헤매이나’란 대목에서 골목이 유난히 많은 남포동 뒷길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휘파람 마도로스’(백야성)의 노랫말에서는 ‘항구를 돌아서면 남포동이 그리워/ 등대 불 바라보며 아 휘파람 분다’란 문맥에서 청년기 특유의 우쭐거림과 여유를 한껏 발산하는 광경을 짐작하게 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남포동 일대 명소들이 제각기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가요작품을 적지 않은 분량으로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다. 용두산 사십계단 자갈치 남포동 항구 갈매기 영도다리 등의 장소성은 그와 관련되는 가요작품들로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남포동이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트로트의 메카였음을 확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남포동테마 노래의 공간적 표상은 마도로스의 고장, 밤이 깊어야 진가가 드러나는 지역, 비가 내리면 특유의 정감과 항구정서가 더욱 살아나는 곳, 술집과 무도장의 분위기가 한껏 나그네의 정취를 들뜨게 하는 장소, 민족사적 고난의 시기 지친 민중을 고향처럼 껴안고 보듬어 준 터전으로서의 장소적 특성이 뚜렷이 각인되어있다. 이런 고장이 바로 남포동인 것이다. 1968년에 발표된 ‘슬픈 소문’(이동일 작사, 고봉산 작곡, 남진 노래)에도 남포동이 등장하는데 다른 남포동 노래들과는 분위기가 다소 차별성을 지닌다.
안개 낀 부산항은 닻을 내리고/ 밤 깊은 남포동을 찾아왔다만/ 믿었던 그 사람은 어데로 가고/ 남의 아내 되었다는 슬픈 소문만/ 항구의 뒷골목에 떠돌고 있네(1절)
마도로스의 삶으로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남성의 애달픈 개인사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토록 믿었던 아내도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타인의 아내가 되어버린 처연한 정황을 담아낸다. 그런 점에서 이 노래의 가사는 마도로스, 즉 항해사의 파란 많은 삶을 실감나게 그리는 작품이라 하겠다. 1964년에 흥행했던 신경균 감독의 영화 ‘마도로스 박’의 광고 포스터 문구에는 이런 구절이 보인다. ‘고향도 집도 없는 사나이/ 미련도 내일도 없는 사나이, 이름은 마도로스, 성은 박, 복수의 일념을 안고 항구의 땅을 밟은/ 이 사나이가 불러일으킨 것은/ 과연 비냐? 바람이냐? 또는 피냐?’라는 강렬한 문구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