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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의 판타스틱 TV <72> 우리 인생의 드라마 ⑫ MBC ‘고개 숙인 남자’

1991년, 내가 열광했던 남자의 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5-19 18:45:12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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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작품인 ‘고개 숙인 남자’는 90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92년 ‘여자의 방’과 함께 주찬옥 작가의 인생 3부작으로 불린다. 베스트셀러극장 ‘샴푸의 요정’으로 갓 데뷔한 신인이 3년간 연타석 홈런을 날렸으니 90년대 찬란했던 대중문화 황금기에 드라마작가를 꿈꾼 수많은 드라마 키즈를 ‘덕후의 길’로 들어서게 한 장본인이다.

이 드라마는 남자 이야기다. 최불암이 기자로 필화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변모하는 가운데 유혹과 양심 사이에서 변절하고, 야합하고 무너져가는,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등장했고 불륜으로 태어난 아들, 자유분방한 X세대 아들 등 현대사를 관통하는 남자들이 나왔다. 펜을 든 지식인을 통해 한국 사회 폐부를 보여줬다. 이 드라마도 황인뢰-주찬옥 콤비의 작품인데 황인뢰 PD는 음악과 대중문화 다방면에 넓은 인맥과 식견이 있어 최불암 아들 역에 H2O의 기타리스트 박현준을 출연시켰다. 당시 긴 머리에 별 대사 없이 눈빛으로 반항적 청춘을 연기한 그에게 홀딱 빠져들었는데, 근황을 찾아보니 몇 해 전 삐삐밴드를 재결합해 뮤지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내게는 주찬옥 3부작 중 ‘고개 숙인 남자’가 가장 재미있었지만 작가에게는 가장 아쉽고도 아픈 손가락이었다. 정치인 묘사와 민감한 상황 설정으로 외부 압력이 너무 강해 열 개 시놉시스 중 한 개만 택해야 했다. 결국 처음 기획한 다양한 캐릭터와 현대사를 관통하는 남자·아버지·아들 이야기 대신 불륜만 남았다는 작가의 씁쓸한 인터뷰가 가슴을 때린다. 그래도 내게는 고급스럽고 상징적인 미장센과 배경음악이 선명히 기억나니 황인뢰 PD와 조연출이었던 ‘밀회’와 ‘봄밤’의 안판석 PD의 감각적 연출 영향이 컸을 것이다.

‘별 보기 운동’으로 영혼과 육체가 파김치가 돼가던 예능 작가 시절이었다. 결국 서른 즈음 잠시 쉬면서 나는 방송작가협회의 드라마작가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수업 첫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선생님은 바로 나의 뮤즈 주찬옥 작가였다. 그때 좀 열심히 했더라면 나도 성공한 덕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인생은 모르니 혹시 그런 날이 올지도…. 그래서 오늘도 드라마를 본다. 일단 잘 봐야 잘 쓸 수 있다고 위안하면서.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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