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곳의, 詩와 그곳 (13) 권정일 시인의 ‘낙조2길이라는 옷’

- 권정일



낙조2길은 낙조2길의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성당

종소리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낙조분수의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유치원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도서

관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빨강 우체통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발자국들의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낙조2

길을 지나가는 개의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낙조전망

대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카메라에 찍히는 풍경의 옷

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낙조2길다운 낙조 옷을 입고 있

다 낙조2길은 낙조가 스러져 가는 시간에 가장 영롱한 옷

을 입고 있다 낙조를 보고 있는 낙조2길은 영원히 낙조라

는 옷을 입고 있다 낙조2길은 노을의 옷



나는 낙조2길의 승인을 받은 낙조2길이라는 옷이다 낙

조2길의 허락을 받은 낙조2길이라는 옷이다 어딜 가든 낙

조2길을 필기해야 정확한 이름이 배달되는 낙조2길이라

는 옷이다 낙조2길에서 멜로드라마를 찍은 옷이다 공주

가 나오는 꿈을 꿀 때도 낙조2길이라는 옷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낙조2길이라는 옷이다 내 머리에 앉은 나비 같은 시

를 써야 하는 낙조2길이라는 옷이다 우체국에 편지를 가

져가는 순한 낙조2길 나를 방치하고도 편안한 낙조2길 배

달부 소년이 지나가는 낙조2길 배고픈 고양이가 어슬렁

거리는 낙조2길 또 나는 낙조2길이라는 옷과 똑같은 거리

를 떠도는 낙조2길이라는 옷이다 삶이 여기 있어서 낙조

2길이라는 옷이다 생이 여기 없어서 자서전이 없는 낙조

2길이라는 옷이다 낙조2길의 거리에서 거리를 두고 별을

보는 낙조2길이라는 옷이다



나는 당분간 다른 옷을 입을 수 없는 낙조2길의 승인

받은 인생이다





시집, ‘어디에 화요일을 끼워 넣지’에서

	다대포 낙조. 조연로 국제신문 사진동우회 회원 촬영.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낙조2길은 ‘낙조2길이라는 옷’의 시를 통해 무려 38회라는 겹겹의 반복어로 되풀이 읽게 된다.

　낙조2길은 부산 사하구 다대포 일대 구간 명칭이다. ‘낙조2길’을 발음하면 어감이 주는 맛도 멋스럽지만 지는 햇빛이 바닷물에 붉게 물드는 몽환적 풍경에 젖어들게도 한다.

　다대포는 낙동강 하구 최남단에 있는 다대반도와 두송반도로 둘러 쌓여있으며, 다시 5개의 작은 만으로 구분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항이었으며 현재는 택지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몰운대와 흰 모래사장이 펼쳐진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다. 이곳 꿈의 낙조분수는 2010년에 개장하였는데 기네스월드레코드에 ‘세계최대바닥분수’로 등재될 만큼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낙조落潮’는 ‘저녁에 지는 햇빛’이다. 보통 ‘해넘이’라 한다. 부산의 동쪽인 광안리나 해운대가 싱그러운 젊음을 상징하는 해돋이로 유명하다면 다대포와 몰운대는 부산 서쪽으로 바다에 황금색으로 드리우는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시의 배경인 ‘성당 종소리’, ‘유치원’과 ‘도서관’, ‘빨강우체통’등은 우리 주변 삶과 비슷한 풍경이라 할 수 있지만, 그냥 분수가 아닌 ‘낙조 분수’ 등 바다와 어우러져 노을을 입는 이곳은 ‘승인을 받은’ 이 장소에 해당된 관련성이 낙조로 인해 특별해진다.‘카메라에 찍히는’ ‘낙조 전망대’의 ‘노을의 옷’이야말로 ‘가장 영롱한’ 낙조의 옷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곳 어디라 할지라도 ‘허락을 받은’ ‘정확한 이름’이 있어야 ‘편지’건 무엇이건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낙조2길의 옷을 입게 되면 감상적 ‘멜로드라마’에 취하듯 화려한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공주가 나오는 꿈을’ 꾸게도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아무 조건 없’는 낙조2길의 옷이지만 시인이 된 화자는 ‘내 머리에 앉은 나비 같은 시를 써야 하는’ 사명감으로 ‘배고픈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며 떠도는 것이다.

　‘낙조2길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삶이기에 ‘자서전이 없’다는 화자의 역설적 표현은 생애 활동 기록이 없는 ‘거리를 두고 별을 보는’ 시인의 존재 같다. ‘가장 영롱한 옷’을 입고 ‘스러져 가는 시간’이 번지는 곳. 시인은 그윽한 이들의 ‘발자국들’ 위에 발자국을 포개며 소요음영逍遙吟詠하며 세속에 시달린 스스로를 ‘방치’한다. ‘순한’ 자유의 ‘옷’ 한 벌을 얻은 것이다.

　 -낙조2길의 걸음마다 낙조2길의 옷을 입히는 존재가 바로 시인 아닌가, ‘낙조2길의 승인 받은’ 그 자체의 옷이니까. 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