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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01> 장현정 작가의 인물 에세이 ‘이수현, 1월의 햇살’

日에도 있던 ‘이수현 평전’ 한국엔 없었다…친구가 되살린 의인 생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3-07 19:41:0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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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선로 위 일본인 구하고
- 목숨 잃은 이수현 숨겨진 이야기
- 대학 때 록밴드 함께한 작가가
- 친구·유족 목소리 담아내 출간

이수현.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던 중 사망한 대한민국 청년이다. 모두가 뒤로 물러설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든 이수현은 달려오는 전차 앞에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서 있었다고 한다. 여기 사람이 있으니까 멈추라는 본능이었을 것이다.
   
장현정 호밀밭 대표가 부산 동래중학교에 건립된 이수현 추모비 옆에 섰다.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장현정 작가가 ‘이수현, 1월의 햇살’을 썼다.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20주기를 추모하며’라는 부제가 있다. 뒷표지에 이수현의 일기 한 대목이 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젊다. 나는 내가 젊다는 것을, 건강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나는 이수현이다.”

이수현이 잠들어 있는 금정구 두구동 부산시립공원(영락공원) 묘지 내 7묘원 39블록 1106호에서 장현정 작가를 만났다. 이수현 옆에는 2019년 돌아가신 부친 이성대 선생이 함께 잠들어있다. 돌아오는 길에 지난 1월 22일 동래중학교에 건립된 추모비도 보았다. 부산에는 초읍 어린이대공원을 비롯해 이수현의 모교인 낙민초등학교, 내성고등학교에도 추모비가 있다. 내성고 앞길은 명예도로 ‘이수현 길’로 지정돼있다.

■기타리스트로 만난 친구 이수현

   
이수현, 1월의 햇살- 장현정 / 호밀밭
장현정은 작가, 사회학자, 문화기획자, 호밀밭 출판사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이수현을 만났다. “록밴드 활동을 하면서 1998년 봄에 앨범을 내고 1999년에 부산에 내려와 2집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멤버들과 밴드를 꾸렸는데, 그때 친구가 소개해준 기타리스트가 수현이었죠. 한여름, 부경대 대연동 캠퍼스 연습실에서 합주했는데 수현이는 늘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민소매티를 입고 까맣게 탄 피부였지요. 합주를 마치면 함께 맥주를 마시며 예술과 음악에 대해 열정적으로 떠들곤 했습니다. 수현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친구였습니다.”

그 인연이 그에게 이 책을 쓰게 했다. 일본에는 이수현에 관한 책이 몇 권 있는데, 정작 한국어로 이수현의 생애를 기록한 책은 없었다. 부산한일교류협회 오세웅 차장은 20주기를 맞이하며 책을 펴내고자 했다. “처음에는 출판과 관련한 의논을 함께 했는데, 제가 수현의 친구라는 걸 알고 집필을 의뢰해왔습니다. 유족과 친구 등을 만나려면 공감대가 있는 작가가 쓰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받아들였습니다. 자료조사를 하고, 2020년 19주기 도쿄 추모 행사에 참가한 후 본격적으로 썼습니다.”

책을 쓰는 동안 장현정은 적잖이 힘들었다. “어떤 때는 수현의 부모님이 제 부모님처럼 생각됐고, 또 어떤 때는 저도 이제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 수현의 부모님 입장이 되어 너무 슬펐습니다. 한 글자 한 문장 써내려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다른 작가에게 구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대여섯 번 했으니까요. 주로 새벽에 썼는데, 몇 번씩 세수를 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차별과 혐오를 녹인 햇살 이수현

책 내용의 큰 축은 어머니 신윤찬 여사의 구술이다. 일본의 책과 그동안의 모든 자료를 참조하고, 몇 개의 오류도 확인하고, 인터뷰도 했다. “수현과 가장 친했던 친구 정성훈 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현과 주고받은 편지와 여러 자료들을 제공해주었고 친구들만이 공유하는 내밀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몇 차례의 긴 인터뷰 내내 아픈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힘든 얘기들을 해주었지요. 수현의 대학 시절에 대한 취재를 거의 못해서 아쉽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아직 진행 중이다. 책이 출간된 직후 수현의 친구 연락을 받은 장현정은 추가 취재를 했고, 사소한 내용이라도 사실 관계가 다른 것은 증쇄할 때 수정할 계획이다.

장현정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일본에서 만난 사토미 씨라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오랜 시간 수현을 추모하는 행사를 해온 사람입니다. 그 분이 ‘한국에서는 10주기, 20주기에만 특별히 추모하느냐’고 되물어 와서 당황했습니다. 저 스스로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지요.”

장현정은 일본의 추모행사에서 받은 감동을 책에 이렇게 썼다. “신주쿠 모임에서 마지막에 다함께 외친 ‘와레와레닝겐’이라는 말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국경이나 그 밖의 어떤 경계도 우리 모두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는 없음을 강조한 말이었다.”

그는 이수현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살펴보면서 이수현이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친구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란 어떤 걸까, 무엇이 진정으로 멋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별과 혐오가 지나친 세상이 되어 갈수록 수현이가 생각납니다.”

책의 제목대로 이수현은 이제 장현정에게도 햇살이 되었다. “수현이는 그냥 친구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말 자랑스럽기도 하고, 살아서 함께 술 한 잔 나눈다면 어떤 모습일지,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제가 순간순간을 더 잘 살고 싶도록 만들어줍니다. 이수현은 나를 울리기도 하지만, 마음은 더욱 단단하게 해준 사람입니다. 책이 나온 뒤 방송이나 인터뷰를 꽤 하고 있는데 사실 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 나로서는 그냥 의무를 다한 기분이고, 수현의 건강하고 의로운 행동이 내 말이나 어떤 부분 때문에 조금이나마 영향 받는 건 큰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낸 후 무겁고도 개운한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만, 저도 조금은 큰 것 같고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수현이의 반의반도 못 따라가겠지만 저도 의롭게 살 겁니다.”

   
이 책은 장현정이 친구 이수현을 부르는 씻김굿 같다. 스물여섯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의 햇살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서 닿을 것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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