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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12> 그리스신화

망나니 제우스, 바람둥이 아프로디테 … 막장드라마 따로 없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2-04 19:57:43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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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땐 교훈 담긴 학습용이지만
- 어른이 돼 다시보면 색다른 감동

- 노동하는 헤파이스토스 보며
- 가장으로서 짠한 연민 느끼고
- 무장 전사로 성장한 아테네 통해
- 자율적이고 진취적 여성 느껴

- 싸우고 뺏고 버리는 남신·여신
- 사막스러운 드라마 같기도 해
- 신들이 이루지 못한 평화·나눔
- 후대가 이루라는 뜻은 아닐는지

“아우게이아스 우리 같구나, 얘야.”
   
헤라클레스 열두 가지 과업을 보여주는 3세기 중엽 로마 부조. 왼쪽부터 헤라클레스가 네메아 사자 때려잡기, 레르네강 히드라 죽이기, 에리만토스 멧돼지 생포, 아르테미스 암사슴 생포, 스팀팔로스 괴물 새[鳥] 죽이기, 아마존 여왕 허리띠 가져오기, 아우게이아스 우리 치우기, 크레타 황소 끌고 오기, 디오메데스 식인 암말을 고삐로 묶기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진탕 어지른 자녀 방을 본 부모가 마음을 다스린 후 말했다. 자녀가 눈을 껌벅인다면 ‘헤라클레스 열두 가지 과업’을 들려줄 때가 된 거다. 아이와 색다르게 소통할 기회이기도 하고. 방이 말끔히 치워지면 칭찬한다. “아이고, 이젠 스위스 정육점이네.”

그리스신화는 3000여 년간 인류에게 이성과 상상력이란 양 날개를 달아줬다. 현대인은 이래저래 신화에 익숙하다. 작가들에겐 창작 불씨를 꺼내오는 용광로. 김남주(‘나 자신을 노래한다’)부터 호메로스(‘일리아드’ ‘오디세이아’)까지.

멋진 인용구는 얼마나 많이 품었는지. 벨레로폰의 편지(제 무덤을 파는 상황), 시빌레의 서책(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을 때), 스킬라와 칼립디스 사이(진퇴양난), 카산드라의 예언(그럴듯한 허언)….

동양인이 고사·전설을 애용한다면 서양인은 그리스신화에 신세를 진다. 그리스 남자는 미녀를 보면 “헬레네~”하며 수작을 건다. 이 장면을 본 외국인이 “엉덩이도 작은 주제에 나대네”라고 비꼬았다면 그는 ‘헤라클레스 열두 가지 과업’ 중 하나를 아는 자다. 지옥에 간 힘 좋은 헤라클레스가 망각의자에 앉아 붙박이가 된 테세우스를 끌어 올렸는데 그만 엉덩이 살 일부가 찢겨 의자에 남았다. 엉덩이가 빈약한 그리스 남자를 두고 “네 선조가 엉덩이 살을 지하 세계에 두고 온 탓”이라고 놀렸다면 이런 연유에서다.

이 고전은 판본이 다양하다. 아동·청소년용은 교훈·학습 위주다. 그러다 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읽는 즐거움이 줄고 상상력은 도망간다. 아동 청소년 청년기를 넘긴 성인은 이를 다시 봄 직하다. 농익은 고전은 읽는 시기마다 서로 다른 감동을 준다. 인간관계·감정에 관한 성찰, 역경·고통을 극복하는 용기와 지혜, 보편타당한 덕목이 갖는 가치를 아는 경륜이 쌓이기 때문. 인간이 범접지 못하는 영역을 향한 경외, 인간·신이 엮어내는 신화·인간사, 인간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가 풍성하게 담겼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신화는 사막스러운 드라마 같다.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가 넘친다. 불을 잘 다루고 뭐든 척척 만들어내는 헤파이스토스를 보자. 여신 헤라는 못마땅한 남편 제우스와 동침하지 않고 아기를 낳아 보니 너무 못생겼다. 헤라는 올림포스산 아래로 젖먹이를 던져 버렸다. 그도 불사신이라 죽진 않고 다리를 절게 됐다. 제우스는 요정 테티스 손에서 자라던 그를 부려 먹으려고 올림포스산으로 불러올렸다. 제우스가 중매해 맞은 아내가 하필이면 바람기 가득한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을 피우다 헤파이스토스에게 들켜 공개 망신을 당한다. 하지만 오쟁이 진 그도 비웃음을 산다. 이 가엾은 신,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 헤라를 체벌에서 구하다 제우스에게 혼찌검이 난다.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12신 중 유일하게 육체노동을 했다.

내세운 데 없는 남성들이여. 헤파이스토스에게서 짠한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가. 뭐라도 해서 부모와 가족을 부양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가 가진 좁은 어깨를 헤파이스토스에게서도 보았다면 그래도 당신은 어른이다.

제우스는 철없는 망나니 같다. 홀로 딸 아테나를 낳은 괴벽한 남신이다. 임신 중인 요정 메티스는 제우스를 피해 파리로 변신했지만, 제우스가 삼켜 버린다. 몸속에서 아테나가 태어나 무장한 전사로 성장해 제우스 머리끝으로 올라오자 헤파이스토스가 꺼냈다. 처녀로 남겠다고 스틱스강에 맹세한 그녀. 아테네 수호신(팔라스 아테나)이 돼 올리브를 신목으로 삼았고,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차지했다.

이런 아테나를 칼 융을 연구한 정신분석학자 진 시노다 볼린은 아르테미스 헤스티아와 묶어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추구하는 여신 원형’에 넣었다. 정신과 의사인 그녀는 남녀 환자 내면에서 자신들을 일정한 틀을 가진 삶으로 내모는 원형을 발견했다.

여기서 볼린은 여신을 세 성향으로 나눠 들여다봤다. 첫째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군은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로 각각 아내 어머니 딸을 상징한다. 상대방과 맺는 관계에서 자신 의미를 찾는 유형. 둘째 ‘아테나 아르테미스 헤스티아’군은 자율과 활동을 중히 여기지만 관계 맺기는 꺼린다. 셋째 유형은 구성원이 아프로디테 혼자다. 자율과 관계 맺기를 겸비해 유연하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세 유형 중 하나에 속할까? 볼린이 내린 결론은 예상 밖이다. “여성 내면에는 세 유형이 다 존재한다.” 단, 요인에 따라 출현하는 여신 원형이 달라진다. 요인이란 성격 가족관계 신체조건 환경을 말한다. 여기서 그녀는 당부한다. “여성(남성)이여. 자신을 스스로 틀에 집어넣지 말고 장단점을 파악해 원하는 여신(남신)상을 끌어내세요.”

남신 유형은 이렇다. 제우스는 가부장·권력·부를 좇는 남성상을 대변한다. 포세이돈은 가슴에 격렬한 본능과 감정이 일렁이지만 잠재우는 형이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억압을 참아내는 성향. 하데스는 희미하고 불안하며 두려움이 깔린 무의식을 가진 남성을 상징한다. 아폴론은 정의·질서 조화를 존중하지만, 주변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직관보다는 객관을 선호하는 남성상. 헤르메스는 유능한 마당발이지만 정착하지 않는 노마드이다. 아레스는 자기감정과 본능을 즉각 충족시키는 데 매달린다. 디오니소스는 긍정과 부정을 유발하는 잠재력을 겸비했다. 황홀 공포 야성을 분출하며 일탈을 즐기는 마성파.

볼린은 여성이 남성 자신보다 남성을 더 잘 안다고 파악했다. 직장 상사 대 부하 직원, 백인 대 흑인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힘을 덜 가진 쪽이 더 가진 쪽을 관찰한 결과다. 그들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설명된다.

   
그리스신화 속 신들은 완벽하지 않은 인격신. 고대 그리스인은 신화 속에 남녀가 마주 보고 응시하는 여백을 남겼다. 신들이 이루지 못한 평화와 나눔을 이 공간에서 이루라고. 어떤 신을 불러내 어떻게 살지, 그 비밀이 적힌 카드를 우리는 손에 쥐고 산다. 서평가·세상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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