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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97> 이윤길의 해양장편소설 ‘남극해’

뱃사람 이야기 쓰는 선장님 “고깃값 깎지마요, 그들 목숨값이니까”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1-03 19:32:1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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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 어촌서 18세에 부산행
- 15년 승선 끝에 선장 꿈 이뤄
- 이제는 해양문학가로 새 삶
- 자연의 힘 맞서는 선원들 다뤄
- “바다, 위험해도 늘 그리운 곳”

어릴 적 생선구이를 먹을 때, 뒤집지 말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생선을 뒤집으면 그 생선을 잡는 배가 바다에서 뒤집힌다고 했다. 식사예절치고는 무서운 협박(?) 같았던 그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이윤길의 소설 ‘남극해’이다. 거친 해역 남극해를 무대로, 선원들과 ‘남극이빨고기’의 치열한 사투를 그린 소설이다. 우리가 ‘메로’라고 부르는 것이 남극이빨고기이다. 남극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뱃사람들의 운명이 소설을 잡은 손을 놓지 못하게 했다. 저자의 프롤로그 마지막 문장 “이제 놈들을, 이빨고기, 남극이빨고기를 잡으러 떠납니다. 바닷물의 평균 온도가 영하에서 맴돌고 빙산이 죽음의 뿔처럼 떠다니는 지옥의 문턱 남극해로 말입니다”가 열어준 소설을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었다. 남극해 위의 어선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겪고, 지옥의 문턱을 보고 온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 이윤길 작가를 강원도 강릉에서 만났다.

■늘 바다가 그리운 선장

   
강원 강릉시 사천면의 한 포구에 선 이윤길 작가. 주문진에서 태어난 그는 바다를 떠나선 못 사는 뱃사람이다.
왜 이윤길 작가가 부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가끔 원도심 중앙동의 술집에서 문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그를 본 기억도 있고, 부산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고향 주문진으로 돌아가 있었다. 겨울의 동해바다가 보고 싶어 기꺼이 강원도로 향했다. 강릉터미널에서 만나 사천면 포구로 자리를 옮겼다. 돌아올 버스 시간이 빠듯해 주문진까지 갈 수 없어 아쉬웠다. 포구에는 가까운 바다에서 조업을 하는 배들이 정박해있었다. 바다로 접한 길가에 그물, 통발, 정치망 등도 널려 있다. 배 한 척에서 태극기가 차가운 바람에 휘날렸다가 깃대에 감기고, 다시 펄럭였다.

“시인, 소설가, 선장…. 여러 이름으로 불리죠.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한 일이고 나를 말해주는 이름은 선장이지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그를 ‘선장님’이라고 불렀다. 사실 이윤길을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선장이라고 부른다. 그는 2007년 ‘계간문예’로 등단하고, 제11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이후 해양문학과 관련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 해양시집 ‘진화하지 못한 물고기’ ‘파도공화국’, 해양창작집 ‘배타적경제수역’ ‘하선자들’, 해양장편소설 ‘남극해’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이윤길은 거친 바다와 뱃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소설로 풀어내는 해양문학가이지만, 그는 여전히 바다를 그리워하는 선장이다. “뱃사람이 고기는 안 잡고, 글이나 쓴다”고 뱃사람들에게 욕먹는 선장이다.

이윤길은 1959년 강원도 주문진의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주문진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선원수첩’을 발급받았다. 18세에 선장을 꿈꾸며, 전국의 수산고 졸업생들이 모여드는 부산으로 왔다. 1979년 남아메리카 북부 수리남공화국의 새우 트롤선에 승선해 원양어선에 첫발을 들였다. 바다 위에서 15년을 보내고 1992년 선장이 됐다. 선장이 되는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냐면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란다.

“열여덟살 이후 줄곧 부산에 집을 두고 있었죠. 예순이 넘어 본가가 있는 주문진으로 귀향했습니다. 집필실은 여전히 해운대에 있어요. 주문진과 부산을 오가게 될 것 같아요” 그는 언제든 바다로 떠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물고기 값은 뱃사람들의 목숨값

   
남극해 - 이윤길 / 전망
소설 ‘남극해’는 남극해에서 메로를 잡는 피닉스호와 선원들의 이야기이다. 사고로 엄지손가락이 으깨진 선원을 마취도 못하고 응급수술하는 장면, 남극해로 향하는 중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듣는 선원, 살인사건, 어장을 찾고 고기를 잡아 어창을 채우는 일 등이 숨돌릴 틈 없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남극해의 기후와 빙산의 위협이 독자까지도 긴장하게 한다. 선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비한 준비가 아무리 철저해도,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다. 선박이 얼음에 갇혀버리고, 얼음이 팽창하면서 사방에서 선박을 점점 조이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섬찟하다. 선박이 뒤틀려 박살나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무시무시하게 덮쳐오는 태풍에 잡히면 끝장이다. “자연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힘밖에 없어요.” 이윤길 선장의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위험이 닥쳐오기 전에 피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한참 고기를 잡고 있을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게 뱃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맛있는 메로구이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앞으로 생선을 먹을 때마다 목숨을 거는 뱃사람들이 자꾸만 떠오를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피닉스호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해, 선원들 모두 대박났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했는데 해피엔딩이어야지, 초초해하면서 결말로 달려갔다. 그런데, 피닉스호는 만선을 앞두고 화재사고로 최후를 맞는다. 그 서운함을 전했더니 이윤길 선장이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런 말을 들었어요. 소설에서까지 뱃놈들을 다 죽일 셈이냐고요. 그래서 다음에는 만선으로 대박 나는 소설을 하나 써볼까 합니다.”

가장 최근의 항해가 두달 쯤 전인 이 선장은 다시 바다가 그리워지는 참이다.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육지에서 3~4개월 지내고 나면 바다로 가고 싶어지죠. 미치지 않기 위해 민화수업에 등록해뒀어요. 그림본 위에 색칠만 하면서 버텨보려고요.” 위험천만한 바다로 또 갈거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가야죠. 아이슬란드 어장에 가고 싶어요. 그 바다만 보면 모든 바다를 다 가본 셈이죠.”

   
부산에 돌아와 이윤길 선장의 페이스북을 뒤적였다. 올해 첫 날 주문진항 어판장에서 밤새 얼어가는 손으로 어부들이 잡아온 복쟁이 사진을 올렸다. 이런 문장이 달려있다. “다시 부탁드리지만, 물고기 값 깎지 마시길.” 그렇다. 물고기 값은 뱃사람들의 목숨값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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