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목욕탕에 갈 때면 늘 아버지와 함께 간다. 아직까지 혼자 씻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께서 함께 가는 것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목욕탕에 아버지와 함께 갔다. 샴푸와 때 수건을 사고, 입고 온 옷을 캐비닛에 넣은 뒤, 간단히 씻고 탕에 들어갔다. 난 아버지와 함께 탕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제일 좋다. 평소엔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대화조차 잘 나누지 못하지만, 모든 것이 느긋한 탕 안에서는 못 나누었던 얘기들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온탕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아버지는 때를 좀 더 불리기 위해 열탕으로 가시고, 난 먼저 나와 때를 밀었다. 예전엔 혼자 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젠 꽤 익숙해진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가 열탕에서 나오셔서 나의 옆에 앉아 때를 미셨다. 난 다 밀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빠르게 미시더니 나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하셨다. 난 아직 때밀이에 익숙하지 않은데,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려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으니 아버지가 “못해도 괜찮으니 어서 밀어.”라고 하셨다. 그제야 조금 안심하고 등을 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갈수록 지치고 힘들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등을 많이 밀어주셨는데 내가 직접 밀어보면서 아버지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어릴 때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지 못해서 아버지 등을 밀어드릴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내가 아버지 등을 밀어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한창 등을 밀어드리다가 잠깐 쉬려 조금 멀찍이서 아버지 등을 바라보았는데, 내가 봐왔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넓은 등이 작게 느껴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등이 오늘따라 작아 보여요.” 아버지는 그 말에 웃으시며 “당연하지, 네가 얼마나 컸는데.”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웃으셨지만, 난 아버지의 등을 보며 굉장히 슬펐다.

나에겐 언제나 넓은 등을 내어주신 아버지셨지만, 밖으로는 가장으로 가정을 이끌고, 안으로는 아들의 투정과 불만을 웃음으로 받아주시며 속으로 한없이 삭이셨을 아버지의 아픔이 등에서 느껴졌다.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옛날 일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투정 부리고, 끝없이 불만을 가지고, 아버지를 싫어하기도 했었다. 그때 일들이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아버지 등을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밀어드렸다. 아버지 등에 비누거품을 내고, 물로 깔끔히 씻어드리면서, 아버지의 마음속 걱정들을 비누거품처럼 씻어드리고 싶었다. 등을 다 밀어드린 후, 아버지는 “수현이가 밀어주니 시원하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아버지의 걱정을 시원히 지워드리는 수현이가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하였다.

아버지의 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질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넓은 등이 없었다면 지금의 피수현은 없었을 것이다. 등을 나에게 선뜻 내주신 아버지가 이젠 기댈 수 있도록 나의 등을 내어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