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해양문화의 명장면 <39> 설탕 제국주의 : 해양공간의 교류가 만든 일상의 변화

제국이 탐한 순백의 설탕 … 흑인 노예들 피땀의 결정체였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13 19:13:14
  •  |  본지 2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인도·중국행 신항로 개척 속에
- 식민지 차지하던 유럽 해상세력
- 천연자원 수탈 한계 도달하자
- 사치품 설탕 원료 사탕수수 재배

- 경작지·가공공장 등 생산 중심지
- 남미 브라질서 카리브해로 이동
- 18세기엔 영국·프랑스가 장악

- 대량생산으로 가격 낮아진 설탕
- 산업혁명기 공장 노동자들까지
- 부담 없이 단맛 즐길 수 있게 돼

- 그 이면에 참혹한 작업 환경 속
- 장시간 고된 노동 견뎌야 했던
- 원주민·아프리카인 삶 스며 있어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전개된 해양공간의 물자교류는 지역에서 얻기 어려운 생산물을 전달해주는 통로였기에 당대인들의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생산물 전파는 지역의 거주민은 물론 그 물자의 생산과 관련을 맺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존방식을 엄청나게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설탕의 생산과 전파는 변화의 계기를 보여주는 극명한 역사적 사례이다.
19세기 남미 설탕 플랜테이션에서 고통스럽게 일하는 아프리카 노예들을 그린 대표적인 그림.
이미 6세기께 페르시아인들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기술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지중해에 전파했다고 한다. 중세 남유럽 시실리에서도 9세기께 처음으로 사탕수수가 집약적으로 재배될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이 지중해에서 가지고 있던 당시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스페인 남부 알-안다루스는 10세기에 이르러 지중해 지역에서 설탕 생산 중심지로서 부각되기도 했다. 지중해 지역을 중심으로 설탕이 유럽인에게 조금씩 알려지긴 했지만 설탕은 육두구, 정향, 후추 등 아시아 향신료에 버금가는 고가의 산물이었다. 설탕은 상층 귀족계급만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특권계층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사치품에서 대중적 소비재로 설탕이 전환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기가 필요했는데 유럽인의 해양 진출이 바로 그것이다.

■ 세상을 바꾼 설탕

설탕의 단맛은 엄청난 사연을 품고 있다.
인도나 중국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찾는 과정에서 유럽의 항해세력들은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와 마데이라섬을 차지했다. 이들 섬의 목재와 천연자원이 처음에는 주된 수탈대상이었지만 그것이 한계에 도달하자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지배자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했다. 설탕 생산을 위한 사탕수수 경작은 자원 수탈 만에 의존하는 이익 창출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통해 이익을 꾸준히 창출하는 것은 설탕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어떻게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사탕수수 재배부터 이를 수확, 운반하여 설탕 정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데 섬의 원주민 노동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마데이라섬을 차지하고 있던 포르투갈은 설탕 생산의 주된 장소를 남아메리카 대륙의 브라질로 옮겼다.

대규모 설탕 생산 체제는 대서양 연안의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와 페르남부코에서 16세기 초반부터 확립됐다.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경작지와 가공공장을 한군데로 집결한 설탕 플랜테이션 체제는 이미 마데이라와 카나리아 제도에서도 도입된 바 있지만, 노동력과 경작지 부족으로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남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노동력뿐 아니라 아프리카 노예 노동력까지 활용한 브라질의 설탕 플랜테이션은 이제 설탕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1630년, 포르투갈로부터 페르남부코를 획득한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투자로 브라질 동북부의 설탕 생산은 더욱 늘었다. 1612년, 브라질의 설탕 총생산량이 1만4000t이었다면 1640년대 들어 페르남부코에서만 해마다 암스테르담에 2만4000t 이상을 수출했다. 그렇지만 설탕 생산 중심지는 브라질에서 카리브해 섬들로 또다시 이전했다.

■ 노예와 설탕, 바베이도스로

가혹한 환경의 설탕 플랜테이션에서 일한 노예와 감독관을 그린 그림.
설탕 생산 중심지로 바베이도스를 비롯한 카리브해 섬들의 부각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1654년 페르남부코 지역을 포르투갈이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로부터 재탈환한 사건이다. 페르남부코 지역의 포르투갈 농장주들은 네덜란드의 지배를 인정한 적이 없었고 이전 시대 농장주들은 고금리의 사채 상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페르남부코를 포르투갈에 넘기게 되고 서인도회사는 설탕 생산을 위한 자본투자처를 카리브해 섬들로 이전했다.

영국인 제임스 드락스(James Drax)의 주도 아래 설탕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던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페르남부코에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설탕 생산의 방법과 조직을 습득한 바 있는 드락스는 1620년대에 바베이도스로 이주해 1630년대 후반에는 상당한 토지를 소유했다. 카리브해에서 담배농사가 장기간 침체를 못 벗어나자 드락스는 설탕 생산이 타개책이라 생각하고 네덜란드 자본과 기술을 바베이도스 설탕 생산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드락스는 노예 노동력을 대규모로 활용해 바베이도스를 영국뿐 아니라 유럽 설탕 공급의 핵심 장소로 부각시켰다.

1640년 이전, 바베이도스 노동력의 핵심 원천은 유럽의 계약노동자였다. 계약노동자는 특정 고용주 아래서 정해진 시간 동안 부자유한 신분으로 노동 의무를 다하면 자유로운 신분으로 전환될 수 있었는데 이런 고용 형태는 대규모 노동력을 꾸준히 요구하는 설탕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드락스는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들을 수입해 설탕 생산에 필요한 지속적 노동력을 확보해나갔다. 1642년 22명의 노예를 부리기 시작한 드락스는 1650년대에 이르면 자신의 광대한 영지를 200명의 노예로 채워나갔다. 드락스의 노예노동에 기반한 설탕 생산은 카리브해 다른 섬들에서도 전형적 형태로 확립돼 갔고 노예들의 후손은 자기 뿌리를 단절당한 채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

■ 제국주의와 설탕

카리브해의 설탕 플랜테이션 모두를 물론 영국이 장악한 것은 아니다. 이미 1568년 에스파냐 해상세력은 히스파니올라와 푸에르토리코에 가축 동력을 이용하는 46개 설탕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스파냐 식민세력에게 카리브해의 설탕 플랜테이션은 멕시코의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나 페루 부왕령에서 얻을 수 있는 금은의 수탈에 비해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었다. 에스파냐로 떠나는 선단의 중간 기착지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쿠바 아바나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면, 카리브해 섬들은 에스파냐 왕실의 경제적 고려 대상에서 멀어졌다. 18세기 들어 카리브해의 설탕 플랜테이션 대부분은 영국과 프랑스 수중에 들어갔다.

유럽의 두 강대국이 카리브해의 설탕 플랜테이션을 지배하면서 설탕은 이제 상층계급만을 위한 소비재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노예노동력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체제에 들어가면서 설탕은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소비재가 되었다. 특히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공장제 생산양식을 점차 확대하자 설탕 소비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영국인이 즐기는 차의 소비가 늘면서 차에 설탕을 첨가하는 소비 형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공장 노동자들의 이러한 소비 형태는 한때 귀족층의 전유물이던 설탕의 소비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해 새로운 사회관계 안에 편입된 그들에게도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단맛’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었던 영국 공장 노동자들의 형성 이면에는 그러한 ‘단맛’을 끊임없이 제공하기 위해 가혹한 노동조건에 시달려야 했던 흑인 노예들이 있었다. 순백의 설탕을 만들기 위해 흑인 노예들은 사탕수수액을 뽑는 착즙기에 사탕수수를 밀어 넣다가 손이 절단당하는 사고를 당하기 일쑤였다. 또한 사탕수수액을 정제하여 설탕을 만들기 위해 고온의 작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견뎌내야 했다. 저명한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Sydney Mintz)의 지적대로 근대사회의 설탕 소비에는 제국주의적 권력관계가 강하게 반영돼 있었다. ‘설탕 권력’은 그것을 보유하지 못한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원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힘이 원천이었다.

박원용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강서·기장 인구 늘어 ‘행복한 고민’
  2. 2내달 예정됐던 사송신도시 준공, 2023년 12월로 연기
  3. 3오거돈 임명 6대 공기업 수장 중 첫 사의…남은 5인 거취 촉각
  4. 4롯데 새 감독 래리 서튼은 누구?
  5. 5[단독]부산 사하구 병원에서 20대에 금지된 AZ 접종해 논란
  6. 6[단독]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부산 경찰, 시력저하 호소하며 입원
  7. 7부산 확진자 한달 새 절반 ‘뚝’…평일 점심 5인 이상 허용되나
  8. 820대 남성, 킥보드 타고 광안대교 올라가 뛰어내려
  9. 9AZ 기피 늘어도…‘노쇼백신’ 일부 병원 대기자만 100명
  10. 10신항 물동량 장기계약…새 부두 일감 비상
  1. 1홍준표 복당 선언에…국힘 PK 초선들 찬반 팽팽
  2. 2취임 4주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33.9%
  3. 3국힘 당권 레이스, 불 붙은 혁신경쟁
  4. 4문재인 대통령 "흠결 무안주기식 청문회" 장관후보 3인 임명강행 의지
  5. 5부산 여야정 상생협의체 구축 합의…초당적 협치 가속화
  6. 6문재인 대통령 “이재용 사면, 국민공감대 고려해 판단”…지역은 또 패싱
  7. 7부산부동산특위서 빠진 공무원 “박형준 의도적 교체” 공개 반발
  8. 8이한동 전 총리 별세…여야 조문 행렬
  9. 9영남 잠룡들 기지개…대선 판 움직일까
  10. 10문재인 대통령 10일 특별연설…코로나 경제 청사진 언급 전망
  1. 1오거돈 임명 6대 공기업 수장 중 첫 사의…남은 5인 거취 촉각
  2. 2신항 물동량 장기계약…새 부두 일감 비상
  3. 3“헉! 문자 잘못 보냈다”…이제 발송 취소돼요
  4. 4오리엔트조선 인수 우선협상자에 우성마린엔지니어링
  5. 5LH 임직원들, 경남혁신도시서 690억 시세차익 챙겼다
  6. 6가덕도 사전타당성 용역 입찰, 다시 유찰
  7. 7[경제 포커스] 남부발전 20년만의 캐릭터, 부산대 학생이 선물
  8. 8공정위 ‘해운사 가격담합’ 제재 착수
  9. 9말 바꾼 해수부, 북항 감사 이번주에도 계속 진행
  10. 10부산 출신 원영섭 전 미래통합당 조직부총장, 국민의힘 최고위원 도전
  1. 1강서·기장 인구 늘어 ‘행복한 고민’
  2. 2내달 예정됐던 사송신도시 준공, 2023년 12월로 연기
  3. 3[단독]부산 사하구 병원에서 20대에 금지된 AZ 접종해 논란
  4. 4부산 확진자 한달 새 절반 ‘뚝’…평일 점심 5인 이상 허용되나
  5. 520대 남성, 킥보드 타고 광안대교 올라가 뛰어내려
  6. 6AZ 기피 늘어도…‘노쇼백신’ 일부 병원 대기자만 100명
  7. 7박형준 시장, 산학협력·대기업 유치 등 경제 활성화 올인
  8. 8부산도 택배갑질 터질라…신축아파트 주차장 높이 갈등
  9. 9공유 킥보드는 안전모 단속, 공유 전기자전거는 괜찮다?
  10. 10부산 코로나19 신규 확진 이틀째 10명대, 부산대 산발적 감염
  1. 1롯데 새 감독 래리 서튼은 누구?
  2. 2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후임 래리 서튼 감독
  3. 3“최강은 나야 나”…‘고교 월드컵’ 16일 개막
  4. 4절치부심한 거인, SSG ‘쓱’ 누른다
  5. 5류현진 13일 ‘투타 활약’ 기대하시라
  6. 6부산 아이파크 황준호, K리그2 11라운드 MVP… 부산은 ‘베스트 팀’
  7. 7‘약속의 땅’서 부활한 매킬로이…18개월 만에 정상
  8. 8[뭐라노]10년간 6명…리더십의 무덤
  9. 9롯데 자이언츠, SSG 맞아 뒷심 부족으로 역전패
  10. 10선두와 막상막하…봄잠 깬 거인 달라졌네
우리은행
조봉권의 문화 동행
‘우리 동네 큐레이터’로 뛰며 기획자 김미희 씨가 느낀 것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부산항 테마가 많았던 이유
리뷰 [전체보기]
살인마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괴물…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메모리’ 한국어 제창 때 가장 큰 박수…그리자벨라 독창엔 전율
새 책 [전체보기]
브라이턴 록(그레이엄 그린 지음·서창렬 옮김) 外
돈이 되는 라이브커머스의 정석(현세환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꼰대를 향한 어른의 꾸짖음
작은 행동이 사회를 바꾼다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겨울’-전영근 作
‘Migrants’ - 손봉채 作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하늘 봉숭아 /양향숙
자가진단 /김만옥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스위트홈’의 이응복 감독
종영 ‘산후조리원’의 엄지원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아들의 이름으로’ 개봉
‘비와 당신의 이야기’ 주연 강하늘·천우희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지금의 윤여정을 있게 한, 고마운 이름들
윤여정 오스카 수상만큼 기대되는 수상소감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인터랙티브 영화 또는 오래된 미래
유목 ‘당한’ 사람들 시대의 우울을 담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12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11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12일(음력 4월 1일)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11일(음력 3월 30일)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트로트 팬덤의 진화 ⑧ 장윤정
우리 인생의 드라마 ⑩ KBS ‘사랑의 굴레’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당(唐)대 최고 7언율시 최호의 ‘황학루(黃鶴樓)’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 이야기
  • 해양컨퍼런스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