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시집으로 큰 상받아 영광
- ‘좋은 삶’ 몸소 보여주신 아버지
- 8년간 간호하며 삶의 실체 배워

“첫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로 최계락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통보를 받고… 꿈만 같다고 할까요.”

제18회 최계락문학상 공동 수상자 박진규 시인.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제18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진규(55) 시인은 1989년 부산문화방송(부산MBC) 신인문예상 시 부문에 당선됐다. 세월이 더 흐른 뒤 201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더욱 본격적으로 시 창작 활동에 나서게 됐다. 그런 그가 펴낸 시집은 2015년 출간한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한 권이다.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벅차고 영광스러워 은사이신 강남주 시인(전 부경대 총장)께 연락드렸습니다.” 시단의 원로 강남주 시인의 답변은 이러했다고 한다. “정말로 좋고 깨끗한 문학상이다. 좋은 시인인 내 친구 이유경 시인도 등단 50년 만에야 받은 상이다. 내가 최계락문학상을 받은 것처럼 기쁘고 자랑스럽다.”

박 시인은 “최계락 시인의 시 ‘꽃씨’를 읽으면 읽을수록 순수하고 깨끗한 삶의 비밀을 그 안에 다 담고 있는 듯해 좋았다. 동심으로 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내가 닮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는 최계락 시인의 문학상을 받는 것은 삶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병하시는 아버지를 8년쯤 모셨는데요.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공부해라,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아버님의 삶 자체로 평생 보여주셨더라고요.” 그 8년간 투병하는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삶이란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삶의 실체를 바로 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공부가 많이 됐다. 박 시인은 ‘시 따로, 삶 따로’가 아닌 시와 삶을 보았다. 그의 시에서 묻어나오는 맑은 느낌, 현장감, 묘하게 뻑뻑한 삶의 밀도가 숙성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최계락 선생의 ‘꽃씨’는 단 여섯 줄짜리 작품인데 삶의 순리와 커다란 비밀이 ‘원인과 결과’라는 형식 속에 맑고 진실되게 담겨 있더라”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최계락의 시 세계 또한 ‘시 따로 삶 따로’가 아니었다. 현재 부경대 홍보담당관으로 일하는 박 시인은 ‘삶 따로, 시 따로가 아닌 시와 삶’을 업무에도 적용한다. 대학을 홍보하는 문장 하나를 쓰고 낱말 하나를 고를 때도 시적인 창의성과 아름다움을 고민한다.

박 시인은 ‘부산매일신문’ 기자로도 일했으며, 문학동인 ‘잡어’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박진규 시인 자선(自選)시 2편

<우엉 이야기>

용호시장 길 한 편에 우엉들이 누워있다

길이가 할배 지팡이만 하다

난전에 나온 찬거리 중에서 땅 속 깊이 가보기로는 일등이겠다

우엉은 왜 저리 깊이 내려갔을까?

날마다 어둡고 딱딱한 곳을 내려갔을 우엉을 생각하다

나도 우엉을 따라 내려간다

별 비빌 언덕이 없다

그냥 파고 내려가는 수밖에

그리우면 이파리들을 흔들고

무서우면 엉터리 휘파람이라도 불며

그저 몸을 움직여 파고 내려가는 수밖에

쓰고 달고 떫은 시간들

쉬지 않고 조금씩 파고 내려갔으니

어느 순간 반대쪽에서

우엉, 우엉꽃은 피어났으리라



<화엄사 중소(中沼)>

갈겨니는 계곡 물빛이어서

계곡이 아무리 유리알처럼 투명하여도

자신은 감쪽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하루 종일 내려다보고 있는

늙은 상수리나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갈겨니

그 여리디여린 몸이 가을빛을 받아

바닥에 지 몸보다 더 큰 그림자를 끌고 다닌다는 것을

상수리나무는 행여 배고픈 날짐승이 눈치챌까봐

아침부터 우수수 이파리들을 떨어뜨려

어린 갈겨니를 덮어주었던 것이다


<약력>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남. 부경대 졸업. 1989년 부산문화방송(부산MBC) 제13회 신인문예상 시 부문 당선, 201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현재 부경대 홍보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