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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그 암자, 그윽한 흑백으로 다시 담다

상무주 가는 길 - 김홍희 글·사진/불광출판사/1만9800원

  • 국제신문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8-09-28 19:27:10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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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중진 사진작가 김홍희 씨
- 일본 유학 후 사찰서 마음 잡아
- 26곳 다시 찾아 사진찍고 글 써
- 작품마다 독특한 깊이감 ‘출렁’

중진 사진가 김홍희 씨가 최근 국제신문에 쓴 칼럼의 한 대목은 이렇다. “전업 작가인 나는 생리적 죽음보다는 작업을 할 수 없게 되는 시점을 죽음으로 본다. 올4월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개복해 대장을 20㎝ 잘라냈다. 수술 후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불현듯 든 생각이 지금부터 언제 저세상으로 간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세상으로 가면 작업은 끝이다.”
김홍희 사진가가 찍은 오대산 북대 미륵암의 겨울 풍경. 불광출판사 제공
그는 전업 사진가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사진가 김홍희’라는 이름을 오늘처럼 유명하게 만든 바탕이 그런 치열함에 있다는 생각을, 부산에 사는 김홍희 작가를 만나거나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해왔다. 전업 작가로서 몸과 마음과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어서 해낸 ‘작업’은 그를 증명한다.

그가 ‘나는 사진이다’라는 제목을 단 책을 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암에 걸린 대장을 20㎝ 잘라낸 직후의 침상에서도 작업을 생각했다니, 그 작가 참….

‘상무주 가는 길’은 ‘사진가 김홍희의 다시 찾은 암자’라는 부제를 달았다. 김홍희 사진가가 ‘다시’ 찾은 암자 26곳의 사진과 이야기를 담았다.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 함양 지리산 상무주암, 송광사 불일암, 경주 남산 칠불암, 통도사 극락암, 양산 천성산 미타암, 영천 은해사 거조암,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자주 찾았던 곳도 있지만, 20여 년 만에 찾아간 암자가 많다. 왜 20여 년일까? 왜 ‘다시’일까?

그 실마리가 머리말과 첫 번째 이야기 ‘순천 송광사 불일암’ 편에 있다. 거기에는 1995년 정찬주 작가가 중앙일보에 ‘암자로 가는 길’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 김홍희 사진가에게 “당신이 찍은 범어사 사진에서는 기계냄새가 나지 않는다. 암자 취재를 같이하자”고 제안한 사연이 나온다. 여기서 언급된 범어사 사진을 찍은 인연도 이채롭다.

김홍희 작가는 1990년대 초반의 어느 날 여행잡지 편집장에게서 “금정산 범어사 사진을 찍어 달라”는 조금은 다급한 의뢰와 “유명한 동화작가 한 분이 범어사 취재 차 가실 테니 잘 모셔달라”는 당부를 함께 받았다. 그 동화작가가 정채봉 선생이었다.

김홍희 작가의 사진을 본 정채봉 선생은 “어이 김홍희 씨, 나랑 친구 먹읍시다이”라고 호쾌하게 만족을 나타냈다.

정채봉 선생은 그를 “사진 찍기를 아주 싫어하는” 법정 스님에게 소개한다. 이 인연으로 김홍희 작가는 법정 스님의 책 ‘인도 기행’에 들어갈 사진을 찍고 ‘무소유’의 저자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일본 유학에서 갓 돌아와 일종의 혼란기에 있던 1990년대 초·중반의 그를 다잡아 준 것이 암자와 불교였다. 그때 맺은 깊은 인연의 사찰을 20여 년 만에 그는 다시 찾아 다시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상무주 가는 길’은 글도 글이지만, 확실히 사진의 책이다. 흑백사진에 담긴 독특한 깊이감의 암자들은 경이롭게 출렁댄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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