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시절 피란민들 모여
- 싸고 맛있는 서민음식으로 보급
- 곤궁했던 시절 주린 배 채워줘

- 낙동강 바람과 긴 일조량 덕에
- 혀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운 면발
- 여타 국수와 비교가 안될 정도

- 1970년대까지 공장 20곳 성업
- 면 뽑아 말리는 풍경 일대 장관
- 수요 줄자 이제 1곳만 명맥 유지

- 입맛 없고 먹을거리가 없을 때
- 손쉽게 한 그릇 뚝딱 할 수 있어
- 찜통 더위도 훌훌 날려보낼 듯

현대사회를 살면서 요즘처럼 간단하면서도 가볍게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시절이 또 있었을까? 밥과 면, 국과 반찬, 한식부터 양식까지 다양한 형태의 음식이 즉석요리제품으로 출시되어, 3분이면 근사한 정찬을 차릴 수 있는 시대이다.

구포국수 면발로 삶아낸 물국수가 먹음직하고 시원해 보인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즉석면 종류도 각양각색, 다종다양하다. 라면부터 국수, 냉면, 짜장면에 칼국수 그리고 다양한 파스타까지. 출출할 때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요즘이다.

인스턴트식품은 아니지만 새참으로 그저 그만인 국수 또한 면만 삶기만 하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여름철 인기 메뉴다. 냉장고에 남아도는 국물 종류나 소스만 있으면 무한변신의 다양한 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도 높다.

■유서 깊고 사연 많은 국수 문화사

국수 면발을 말리는 모습.

원래 국수는 돌잔치나 혼인, 회갑 등 특별한 날에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국수의 긴 면발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거니와, 곤궁했던 시절 그 길디긴 국수 면발은, 그 시절을 살던 이들에게는 허기를 달래는 생명줄과 같은 존재였다. 예부터 국수는 반가에서도 특별한 날 먹었다. 국수 재료인 밀가루가 고려 시대까지 중국에서 수입할 정도로 희소성 높은 곡물이기도 했고, 조리 공정 또한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하였기에 그렇다.

밀가루를 빻아 체에 몇 차례 거르고, 이 가루를 반죽하여 국수틀에다 넣고, 장정 몇 명이 달라붙어 온몸으로 국수틀을 눌러 면을 뽑고…. 게다가 각종 육수를 내야 하고, 갖은 고명 하나하나 장만해야 하니, 여간 고되고 신경이 쓰이는 음식이 아닌 것이다. 그 때문에 국수는 ‘정성으로 먹는 음식’이라 했다.

그런 국수가 식탁에 자주 올라오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외국 원조구호물자와 함께 대량의 밀가루가 반입되면서부터다. 국수와 칼국수, 수제비 등 밀가루를 재료로 한 음식이 이 시기에 서민 음식으로 널리 보급된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전쟁 와중에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던 몇 안 되는 음식이었다.

열무국수.

특히 부산에서는 구포를 비롯하여 서구 아미동, 토성동 일대에 국수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 성업했다. 이들은 국수를 자체 생산하기도 했지만, 서민들이 배급받은 밀가루로 국수를 뽑아주고 삯을 받는 형식으로 ‘삯국수’를 제공하여 서민의 생계를 돕기도 했다. 삯은 돈으로 지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일정량의 밀가루로 대체 지급했다.

지금에야 일상 음식을 넘어 별식으로 간단하게 먹는 음식, 국수. 특히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별식으로 아주 좋은 음식이기도 하거나와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고, 별다른 반찬도 필요 없다. 그래서인지 국수 종류만 해도 입맛 따라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다양하다. 시원한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 국수나 열무국수, 고소한 콩국수와 새콤한 김치말이 국수, 새콤달콤한 비빔국수와 회국수도 좋겠다. 차가운 국물만 있으면 시원하게 한 그릇 들이켤 수 있는 음식이 국수다.

이열치열 보양 국수도 괜찮다. 해물탕에 말아먹는 해물국수, 생선을 푹 곤 국물에 말아 먹는 어탕국수, 돼지사골국물의 돼지국수, 선짓국에 말아 먹는 선지국수, 삼계탕의 삼계국수, 복어국의 복국수… 이런 국수 한 그릇이면 여름 한 철도 거뜬하게 날 수가 있을 것이다.

■구포국수, 부산 대표 국수

김치냉국수.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국수. 그 국수들 중에서도 부산을 대표하는 국수가 바로 구포국수다. 그 유명세가 어느 정도인지 잉어표, 붕어표, 자라표, 물방울표, 인삼표 등 브랜드는 다르지만 모두 상표로 써 붙인 이름은 ‘구포국수’이다. 이 중 대부분은 구포에서 생산하지도 않는데, 상표는 ‘구포국수’다.

원래 구포는 낙동강 유역의 대표적인 물류 거점이었다. 감동진 나루 주변으로 모든 ‘백화’와 ‘만물’이 ‘이합’되고 ‘집산’되던 곳이었다. 그래서 인근 구포 지역은 경향 각지에서 몰려든 물자로 그야말로 파시를 이루곤 했다. 이 물자를 부리던 사람들이 먹던 음식 중 하나가 ‘구포국수’였다. 힘든 노역 후 푸짐하게 말아먹던 구포국수는 얼마나 맛있고 기꺼운 음식이었을까?

비빔국수.

또한 구포국수는 한국전쟁 시절 피란민들이 싸고 맛이 좋아 즐겨 먹었는데, 이들이 구포국수의 맛을 입소문으로 퍼뜨린 것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당시 구포국수는 짭조름한 해풍과 긴 일조량, 부드러운 낙동강 바람으로 말렸기에 면발이 쫄깃하면서도 짭짤해 국수 중 단연 일품이었다.

한때 구포시장 일대는 골목마다 국수를 뽑아 널어 말리는 풍경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1960~1970년대에는 구포 지역에 20여 곳의 구포국수 공장이 한 집 건너 한 집 있을 정도로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과 혀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운 면발이 다른 국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국수장수들도 구포국수에 대한 긍지가 대단했다. 그러나 이제 수요가 급속히 줄고, ‘구포국수’의 상표분쟁 등으로 현재는 모두 폐업하거나 인근 도시로 떠났다. 구포에서 구포국수를 뽑는 곳은 이제 단 한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구포연합식품’의 인삼표 구포국수가 그것으로, 아버지 뒤를 이어 3대째 국수를 만들고 있는 곽조길 씨가 대표로 있다.

콩국수.

이에 구포국수 관련 제조사와 조리판매 업체들이 ‘부산구포국수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구포국수’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을 마쳤다. 구포국수 고유의 제면 및 삶는 방법, 육수 뽑는 법 등과 조리법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계승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구포국수 본연의 쫄깃하고 짭조름한 맛을 제대로 살려내는 구포 지역 제면 및 조리업체만 구포국수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다.

■여름 입맛, 국수로 살려 보자

이처럼 수많은 사연과 시련을 거쳐 오늘에 이른 구포국수. ‘한국현대사의 산증인’으로 한때 낙동강 젖줄처럼 수많은 사람을 거둬 먹인 음식. 따뜻한 마음과 착한 손으로 빚어내고,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허기지고 곯은 배를 채워주었던 심성 깊은 먹거리가 바로 ‘구포국수’였던 것이다.

한창 찜통처럼 더운 날이 이어진다. 입맛 없고 마땅하게 먹을거리가 없을 때, 손쉽게 한 그릇 뚝딱 할 수 있는 음식, 구포국수. 시원하면서도 얼큰한 국수 한 그릇으로 여름 입맛을 되돌려보는 것도 좋겠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