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극장가에서 '택시운전사'와 함께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영화로 '군함도'를 꼽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군함도가 관심을 받은 건 MBC 예능 '무한도전' 영향이 컸다. 방송에서 멤버들이 방문한 이후로 하시마섬(端島), 군함을 닮았다 하여 '군함도'라 불리는 지명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졌다. 이후 여러 방송에서 앞다투어 소개했고, 시청자들은 그 때마다 군함도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릴 정도로 공분했다. 조선인들이 지하 1000m 탄광에서 강제 징용을 살았던 섬. 그 섬에서 돌아온 이들이 하나같이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며 입을 모으도록 만든 곳. 미군이 군함인 줄 알고 폭격했다는 섬. '지옥섬'.

영화 '군함도'는 민감하면서도 가슴 아픈 한일 문제를 다뤄 일찌감치 화제몰이에 성공했다. 물론 민족성을 자극하지 않아도 흥행 요소는 충분하다. 우선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영화에 총출동한다. 또 영화 '베테랑'으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르며 대중성을 인정받은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정도 사실만으로 예비 관객들은 '군함도'가 어느 정도 완성도를 담보했으리라 믿고 예매할 것이다. 예매하지 않은 영화 팬들은 예고편을 통해 완성도를 가늠해보기를 추천한다. 그들을 위해 몇 장면 뜯어 살폈다.

C#1. 성해광업
조선인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황국신민이다"고 외치는 일본군. 그를 기준으로 좌측에 일장기가 걸려있다. 우측엔? 한 눈에도 일본 국기 모양을 본 따 만든 기가 제대로 벽에 붙지 않고 울었다. 다시 보니 일장기 우측 하단도 제대로 안 붙었다. 당시 나태한 일본군 수준까지 철저히 고증(考證)한 류 감독이다. 독립군은 저런 거 안 봐준다. 문양 아래에다가는 뭐라고 써두었는데 한자 1급 수준이다.

'星海鑛業'.

중학교 다닐 때 한자 10점 받아봤다. 그 시험이 10점 만점은 아니었을걸? 어렵다. 힌트를 얻어 보려 주변을 살펴봐도 다 한자다. 웬 중공군들이가?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들 사이로 '내선일체' 하나는 확실히 눈에 들어온다. 민족말살정책을 전개하던 일제가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며 내걸었던 구호다. 정치적 구호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도 뻔뻔한 거짓말들이다.
'星海鑛業'은 예고편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극 초반 배우 황정민이 몸을 실은 기차 화물칸 문에도, 미군 폭격에 쓰러지는 건물 입간판에도 한자는 선명하다. 정답은 '성해광업'. 하시마섬에서 탄광 사업을 전개한 업체를 류 감독이 가상해 만든 곳이다. 실제로 '성해광업'이라는 기업은 없다. '星海鑛業'을 써둔 간판들이 예고편에서만 몇 번은 부서지고 불에 타길래 '내선일체' 같은 구호겠거니 했는데 조금 힘이 빠졌다. 실제 하시마섬에서 조선인들에게 징용살이를 강제한 기업은 '성해광업'이 아닌 미쓰비시. 대표적 전범 기업이다. 한자로 '三菱'라 쓴다. 1890년 하시마섬을 인수한 미쓰비시는 1974년 하시마 탄광 폐광 후 다카시마 현에 섬을 기증했다. 그러자 일본은 근대화 상징이라며 하시마섬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대표적 전범국이다. '典範'이 아니라 '戰犯'. 이웃이라기엔 영화 '이웃사람' 속 배우 김성균 같은 나라.

C#2. 쌍학도

한 쌍을 이루는 두 마리의 학을 그린 그림. 학은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다. 바위를 긴 두 다리로 딛고 있는 학은 대개 두 마리를 함께 그리는 것이 민화의 상례. 그래서 부부해로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화가에 따라 학의 위치와 자세가 조금씩 다르고, 함께 무엇을 더 그려 넣기도 해 그림마다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이 있다. 조선 민화지만 일본 작가가 그린 쌍학도 병풍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단지 민화 중 하나인 '쌍학도' 의미를 확장해주는 건 예고편 속 배우 이정현이다. 민망하게도 바지를 내린 일본인에게 머리채를 붙잡혔다. 어깨가 드러난 옷, 감옥 쇠창살같이 내려온 계단 난간으로 그녀가 처할 상황을 미루어 짐작한다. 류 감독은 그녀 옆에 '쌍학도'를 보란 듯이 걸어두었다. 은유법 대신 대조법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인상을 구긴 '사람 둘'은 소나무 위 금슬 좋아 보이는 '학 둘'과 상반되는 이미지다. 다시 말해 두 이미지는 상충하고 있다. 지나친 의미부여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에 예고편 속 '쌍학도'는 너무 보란 듯 걸려있다. 하시마섬에는 유곽, 즉 여성들을 일정한 구획 안에 모아 영업한 공인매음업소가 있었다. 그녀는 아마 그곳에서 위기에 처한 듯하다. 유곽에 쌍학도, 참 역설적이다.

C#3. '군함도'를 탈출한 붐 오퍼레이터

아마 '군함도' 예고편을 편집한 홍보 담당자는 붐 오퍼레이터를 의도적으로 예고편 속에 포함함으로써 '군함도'가 얼마나 힘든 곳이었는지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소란스러운 조선인들을 제압하려 물을 뿌려대는 일본군 정면에는 차라리 물을 맞고 싶은 듯 더워 보이는 '조선인'이 서 있다.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둘이다. 일본군이 들고 있는 물 나오는 호스 맞먹게 긴 무언가를 들고 있는데 아뿔싸, 붐 맨이다. 자세는 살아있는 교본이다. 현장 사운드를 동시 녹음하기 위해 쓰는 마이크를 '붐 마이크'라 부르고, 이를 들고 있는 사람을 쉽게 '붐 맨' 또는 '붐 오퍼레이터'라 부른다.
'붐 맨'은 촬영장이 생소한 이들에게 박카스 광고로 익숙하다. 졸다가 카메라에 붐 마이크를 출연시키는 바람에 감독에게 혼나고 박카스를 선물 받는 이가 바로 '붐 오퍼레이터'다. 그러고 보니 붐대를 참 길게도 뺐다. 들어본 사람은 얼마나 무거웠을지 직감한다. 처음엔 들 만하다. 시간이 지나면? 붐 오퍼레이터들은 촬영 중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한다. 말은 못 하겠고, 그저 감독이 빨리 '컷!' 해주기만 바란다. 마음속으로 류 감독을 다섯 대 정도 때리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 옆에는 보자마자 더운 조명을 든 스태프가 서 있다. 이들 아래에도 한 명 더 있는데 정확한 역할을 파악하기 어렵다. 자세히 봐도 가슴 윗부분이 보이지 않아 사람 같지도 않아서 무섭기까지 하다.

놀라운 건 이 '붐 오퍼레이터'가 코멘터리 예고편 속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는 것이다. 건물에 불이 붙고 전봇대가 쓰러지는 촬영 현장 속, 붐 오퍼레이터는 어디 있을까. 일부러 표시를 해두지 않았다. 숨은 그림찾기다. '그는 절대 카메라에 잡혀서는 안 된다'가 힌트다. 답을 찾은 분은 앞으로 엔딩 크레딧에 스태프 명단이 다 올라가기 전까지 극장 문을 나서지 않기로 약속하자. 보이지 않는 카메라 밖에서 한 땀 한 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사진 = 영화 '군함도' 예고편 캡처)

우리의 붐 맨은 건너편 세트 건물 옥상에 올라가 난간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탄광에서처럼 붐대를 아래로 길게 빼고 있다. 경의를 표한다. 물리적 여건이 허락되면 진정 만나보고 싶다. 이러니 영화산업 노동자들에게 표준근로계약서가 필요하고, 4대 보험이 필요하다.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지금쯤엔 '군함도'를 탈출한 지 꽤 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강제징용이 아니었다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가 걸터앉았던 파란색 세트는 합성 용도로 추측한다. 컴퓨터 그래픽과 실제 촬영장면을 합성할 때는 단색 스크린을 주로 사용하는데, 대체로 파란색 스크린을 많이 사용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블루스크린 합성'이라 부른다. 너무 네모 반듯해 그림판으로 그려 넣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대물이 개봉하면 대체로 팬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며 패가 나뉜다. 영화 속 고증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하나, 국가주의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다른 하나다. '포화 속으로', '국제시장', '변호인' 등 영화가 개봉할 때 목격한 반응들이다. 요즘은 좀 덜하다지만 편을 나눠 싸우기는 여전하다. 노파심을 담은 당부 한 마디로 글을 마무리한다. 역사에 좌우는 없지만, 우리나라 좌우엔 여전히 중국과 일본이 있다.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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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영화 예고편은 단순히 영화를 보고 싶도록 만든 영상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상용화 등 기술 발달이 기점이라는 분석이지만 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생긴 다양한 수요자 욕구를 채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도 보인다. 형태는 제각각이다. 코멘터리 예고편, 메인 예고편, 티저 예고편, 런칭 예고편, 캐릭터 예고편, 1차 메이킹 예고편, 2차 메인 예고편, 30초 예고편……. 크게 다를 것 없는 내용 속에서도 조금씩은 차이를 두고 있다. 그래서 예고편만 쭉 봐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꽤 많다. 국제신문 디지털뉴스팀에서는 공식 SNS, 홈페이지를 통해 매주 목요일 주 1회 개봉예정작 예고편을 꼼꼼히 살핀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신동욱 기자 i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