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 잃고 우울한 날 보내다
- 우연한 계기로 현역과 대결
- 주변 지인·아들의 만류에도
- 불가능 할 것 같은 꿈에 도전

- 1976년 나온 영화 '록키' 후속
- 30년 후 제작된 시리즈 6탄
- 주인공 실베스타 스탤론
- 각본·감독·주연 1인3역에
- 아카데미 작품상도 거머쥐어

빈센트 반 고흐의 '12송이 해바라기', 끌로드 모네의 '일본식 다리', 그리고 엘 그레코의 '피에타' 등이 있어서 더 유명한 곳, 필라델피아 미술관. 이 세계적 명소가 한때 이색적인 작품을 전시해 화제가 됐습니다. 미술관 앞 광장을 장식한 어느 복서의 동상인데요, 설치해도 좋은가에 대한 예술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누가 모델인 걸까요?

그림=헌즈 작가

'이탈리아산(産) 종마(Italian Stallion)'라고도 불린 그는 계단 서너 개씩은 가뿐하게 뛰어올랐던 복서입니다. 그의 이름은 록키. 1976년에 나온 영화 '록키(Rocky)'의 타이틀 캐릭터(실베스타 스탤론)입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6탄 영화 '록키 발보아(Rocky Balboa)'가 나왔고, 이제 록키는 한 계단씩 뛰어오르는 것도 벅차 보입니다.

'록키' 시리즈엔 일관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 명구는 '록키 발보아' 포스터의 광고문구이기도 합니다. 헤비급 챔피언 출신 록키는 화려했던 복서의 삶을 접고 제2막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어떤 연유로 그는 다시 링에 오르려 하는 걸까요. 그의 내면엔 아직 끝나지 않은 무엇이 꿈틀대고 있는 걸까요.

록키는 지금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 에이드리안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후 살갑게 말동무가 되어줄 동반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 있는 아들은 직장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내세워 아버지에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실은 아버지의 명성이 드리우는 '큰 그림자(a huge shadow)' 안에 자기 삶이 갇히는 걸 싫어한 까닭입니다. 그러다보니 록키는 자기 레스토랑 '에이드리안'의 고객들에게 무용담과 추억을 들려주며 낙으로 삼습니다.

달랠 길 없는 슬픔과 쓸쓸함은 그의 내면에 웅크린 채 시나브로 그를 힘들게 합니다. 그럴 때면 록키의 복싱 코치였던 폴리가 충고합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자네가 곧 그곳이 되고 말아(If you stay one place long enough you become that place)." 록키가 '슬픔'이라는 이름의 장소에 갇혀 허우적대다 보면 결국 그 자신이 '슬픔'이 되고 만다는 은유이지요. 그즈음 록키에게 뜻밖의 사건이 둘 일어납니다.

사건 1은, 세계적인 TV 스포츠 채널 ESPN이 기획한 '과거 대 현재(Then Versus Now)' 가상 대결입니다. 슈퍼컴퓨터가 왕년의 헤비급 챔피언 록키와 현역 챔피언 딕슨을 가상 경기에 내세워본 건데요, 놀랍게도 경기 결과는 록키의 승리입니다. 그걸 지켜본 딕슨은 콧방귀 뀌지만 흥행을 기대하는 도박사들은 논타이틀전 시범경기를 설계합니다.

사건 2는 새 여자 매리의 등장입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여자 사람 친구'입니다. 바텐더인 그녀도 록키처럼 홀로 아들을 키웁니다. 동병상련의 연민 때문이랄까, 서로 가까워지고부터는 록키의 식당 일도 돕습니다. 록키로서는 뭐든 정겹게 의논할 존재가 생긴 것이지요. 둘의 관계는 차츰 가족처럼 발전해 나갑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꿈, 실현될까요? 드디어 시범경기가 열리기로 확정된 건데요, 록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 앞에서 세상은 비웃습니다. 웃음거리가 되기 싫다며 그의 아들마저도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자 록키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보다 남들의 쑥덕거림에 더 귀를 기울이고, 살면서 힘들 때마다 비난할 대상을 찾으려 드는' 아들에게 고성(高聲) 펀치를 날립니다. 하지만 쏘아붙이는 그의 목소리엔 깊은 애정이 묻어납니다.

"누구나 인생살이 링에서 평생 난타전을 벌이며 살아가. 얼마나 세게 치느냐, 그것만이 중요한 건 아냐. 맞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전진하는 것도 중요해(It's not about how hard you hit, it's about how hard you can get hit and keep moving forward)."

그렇게 사는 게 이기는 삶이라는 것을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요, 록키는 트레이닝캠프를 꾸립니다. 그러나 KO승이 30회나 되는 현역 챔피언을 상대한다는 게 솔직히 두렵기에 록키는 그런 심정을 매리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녀의 격려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줍니다. "Prove that the last thing to age in somebody is their heart." 그 뜻은,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더디게 노화되거나 가장 나중에 멈추는 것은 심장이라는 걸 보여줘요'입니다. 과연 록키가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게 될까요. '살아있네!' 라는 환호의 함성을 듣게 될까요.

언론은 록키의 '성(性, Balboa)'과 '공룡(Dinosaurus)'을 합성해 그를 '발보아사우루스'라고 부릅니다. '퇴물'로 언어유희 한 건데요, 그가 어떻게 싸우는지는 감동적인 볼거리일 것이기에 전부 가려둡니다. 경기에 임하기 전, 그는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 계단을 뛰어오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투지가 이글거립니다. 광장에서 솟구쳐 허공에 강펀치를 날리는 '뒷모습'은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는 그의 성스러운 의식일 것입니다. 또한 '록키' 시리즈의 마감을 예고하는 기념비적 갈무리 장면일 것입니다.

'록키'의 각본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3일 반 만에 썼다고 전해집니다. '대부'의 제임스 칸, '러브스토리'의 라이언 오닐, '스팅'의 로버트 레드포드 등 제작사는 주인공 배역을 위해 당대 슈퍼스타들을 저울질했다지요. 각본 판권을 양손에 틀어쥔 실베스타 스탤론은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정신으로' 버텼고요. 결국 그가 주연을 따낸 '록키'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었고,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록키 발보아'는 그가 각본·감독·주연 등 1인 3역을 뽐낸 작품입니다.

외화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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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