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에 걸린 요양원 노부인에게
- 러브스토리를 읽어주는 듀크

- 집에 돌아오라는 자녀들에
- 듀크는 미소로 화답합니다
- "내집은 여기란다,
- 너희 엄마가 내 보금자리야"

그림=헌즈 작가

보고 싶다, 고백하고

손가락 튕겨 잎 하나 뜯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고개 저으며

손가락 튕겨 잎 하나 뜯는다

낙화하듯 잎은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데

성난 파도만치 솟은 그리움



해변에 뚝뚝 떨어진 그리움은

새까맣게 방울져 타 끝내 몽돌이 된다



보고 싶다, 고백하고

두 눈 감싸 동공 한 조각 뜯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고개 저으며

두 눈 감싸 동공 한 조각 뜯는다

동공은 쪼그라지고, 쪼그라지고, 쪼그라지는데

성난 바람만치 부푼 그리움



사랑을 잃고서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동공에

새까만 몽돌 두 알 주워 차곡 앞운다.



저의 졸시 '몽돌'입니다. 오래 전 제 머릿속 공책에 쓰고 지우길 반복했던 추억의 산문들을 나뭇잎 한 장 크기의 시로 복기해본 것입니다.

유럽을 여행하는 미국 청년과 프랑스 여대생의 로맨스를 운문 같은 산문으로 촬영한 매혹적인 영화가 있지요. '비포 썬라이즈 Before Sunrise'입니다. 특히 이 명대사로도 유명합니다. "추억이란 멋진 것이지. 과거의 아픈 기억들로 인해 지금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면."

시 '몽돌'을 짓고선 영화 '노트북 The Notebook'을 소개하고 싶어졌답니다. 앞의 명대사는 이번 영화를 위해서도 가슴 아리도록 어울릴 것이기에…. 영화 '노트북' 속 공책의 첫 장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이걸 나에게 읽어줘요.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돌아갈게요(Read this to me, and I'll come back to you).' 이 글과 함께 공책 속 러브스토리를 육필로 기록한 이는 노년 여성이고, 현재 요양원에 있습니다. 그녀에게 '당신'은 과연 누구인 걸까요.

노부인의 요양원 벗 듀크를 소개합니다. 그는 노부인의 청을 받고 그녀의 공책 속 옛 사연을 매일 조금씩 읽어줍니다. 영화 '노트북'은 그녀와 '당신'의 러브스토리를 영상으로 복기한 작품입니다.



때는 1940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작은 마을. 시를 사랑하는 청년 노아(라이언 고슬링)와 그림을 사랑하는 하이틴 앨리(레이첼 맥아담스)가 사랑에 빠집니다. 외모와 성격 등 어딜 보나 매혹적인 연인이지만 신분차가 그들 관계를 위태롭게 합니다. 노아는 목재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앨리는 부호 금융가의 딸이기에….

개학하면 떠나야 하는 앨리는 폐가로 방치된 대저택에서 노아와 불같은 사랑을 나눕니다. 노아는 언젠가 호숫가의 그 대저택을 사, 아름다운 낙조가 잘 보이는 방에 앨리를 위한 화실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들의 뜨거운 첫 밤은 앨리의 아버지가 경찰을 풀어버리는 바람에 달콤한 아침 햇살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이번엔 다시 현재 시점의 요양원. 듀크가 노아에 관한 내용을 한 문장씩 읽어줄 때마다 노부인은 호수 위로 잔잔하게 퍼지는 물결무늬의 미소를 짓곤 합니다. 그런 미소를 곁눈질로나마 바라보던 듀크가 다시 읽어주기에 집중합니다.

부모의 강압에 떠밀려 뉴욕으로 떠난 앨리는 부유한 장교와 새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노아는 2차 대전의 전장에서조차 매일 꼬박꼬박 앨리에게 편지를 씁니다. 답장은 오지 않습니다. 문제는 앨리가 한 통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사실.

이 대목에서 영화 '병속에 담긴 편지'에 이어 이번 영화의 원작 소설도 지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어록 하나를 소개합니다. "사랑이 변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변하는 건 사람입니다. 환경입니다(I don't know that love changes. People change. Circumstances change)." 그의 말대로라면, 노아와 앨리의 멀어진 사랑이 7년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이어지길 기대해 봐도 좋은 걸까요.

니콜라스의 어록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모든 소중한 것의 맨 위에 놓고서 생각하는 것, 그것이 로맨스다(Romance is thinking about your significant other when you are supposed to be thinking about something else)." 과연 노아의 로맨스도 변함없이 그와 같을까요.

제대한 후 노아는 약속대로 대저택을 사들입니다. 새 단장을 마친 대저택 앞 그의 모습이 신문에도 실립니다. 웨딩드레스를 맞추던 앨리는 그 사진을 보곤 혼절합니다. 이 결정적 장면 다음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그들의 사랑을 식힐 수 없는, 폭우 속 격정의 키스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번엔 그들의 밤이 달콤한 아침 햇살을 맞이합니다. 아뿔싸, 앨리의 어머니가 찾아오고, 앨리는 다시 떠납니다. 곧 돌아오겠다는 여운을 남긴 채…. 이들 연인의 러브스토리는 거기까지가 기록의 끝입니다.

'노트북'의 광고 문구는 'Behind every great love is a great story(위대한 사랑에는 위대한 스토리가 있다).' 그 위대한 스토리는 어쩌면 지금부터입니다. 듀크와 노부인이 요양원 뜰에서 햇살을 즐길 때 듀크의 자녀와 가족이 문병하러 옵니다. 그들이 간청하는군요. "아빠, 제발 집에 돌아와요." 듀크는 미소로 화답합니다. "내 집은 여기란다. 너희들 엄마가 내 보금자리이고(Your mother is my home)." 그 순간, '치매를 앓고 있는' 노부인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스포일러여서 가려둡니다.

노아가 앨리에게 띄운 편지들 중 하나를 소개하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영혼을 눈뜨게 하고, 심장에 불씨를 심고,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랑, 그것이 위대한 사랑이야. 그대가 내게 준 그런 사랑….'


※오래오래 여운이 깊고 아련할,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를 소설로도 만나고 싶다면 '미 비포 유 Me Before You'(조조 모예스 저)를 추천합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