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BC·MBC 개국, 라디오 위협
- 전문 진행자도 없던 음악 프로

- 국내 1호 DJ 최동욱 데뷔 이후
- 심야시간 활용·청취자 개념 변화
- 음악신청 받고 화제 공유하는 등
- 팝송 마니아에 청년문화로 부상

-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밤'등
- 심야 음악프로 경쟁적으로 편성
- 입담 좋은 통기타 가수 진행맡아

1950년대부터 라디오는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매체였다. 그러나 1964년 12월 최초 민방인 TBC TV가 개국하고 1969년 8월 MBC TV마저 개국하면서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통한 시청률 경쟁이 시작됐다. TBC는 개국일부터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쇼쇼쇼'라는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면서 경쟁률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했고 1970년 3월부터 '아씨'라는 일일드라마를 편성하여 온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MBC도 개국일부터 'OB 그랜드쇼', '웃으면 복이 와요', '유쾌한 청백전' 등을 제작해 TBC에 맞대응하면서 본격적인 민방 오락 프로그램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TV 수상기의 숫자도 1966년 4만3000대에서 1970년 37만9000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1966년 DBS에서 '탑튠쇼'를 진행하던 31세 최동욱. 국내 최초 라디오 스타 DJ로 이름을 날렸다.

내용도 변하기 시작했다. 통기타와 그룹사운드라는 젊은이의 문화가 TV를 통해 서서히 떠올랐다. 따라서 TV는 라디오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등장했고, 라디오는 새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라디오 제작자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팝송이라는 음악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던 사실에 주목하고,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프로그램 제작에 몰두했다. 즉, 드라마와 화려한 오락 프로그램은 TV에 양보하고 생활 정보와 음악 위주의 편성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바로 이 음악 분야에서 DJ라는 방송 스타가 심야에 진행하는 음악 신청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DJ(Disc Jockey)라는 문화가 들어온 것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문화가 들어오면서 AFKN 같은 미군 방송의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자정부터 장장 다섯 시간이나 지속되는 심야 DJ 프로그램 'East of Midnight'를 통해 DJ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듣고 자란 음악 마니아들이 1950년대 후반부터 명동과 충무로의 '디쉐네', '뉴월드'와 같은 음악감상실에서 DJ라는 이름으로 명함을 내민다. 이때 처음 등장한 사람이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등이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아직 음악 프로그램의 비중이 미약해 팝송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은 1주일에 한 번, 그것도 30분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때만 해도 전문 진행자의 개념이 없어 기획, 선곡, 방송 멘트 작성을 담당하는 PD와 그것을 그대로 읽는 아나운서, 엔지니어로 구분되어 있었다. 자연히 대중과 직접 접촉하는 아나운서의 비중이 커졌고, 요즘의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실제 권력자였다. 아나운서가 지닌 권력이 새롭게 떠오르는 DJ라는 전문가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은 최동욱에 의해서였다. 1964년 10월, 그가 PD를 맡았던 '탑튠쇼'의 아나운서가 곡명도 제대로 읽지 못하자 당황한 담당 부장이 "그러면 네가 한번 해봐라" 하는 바람에 최동욱이 직접 진행자로 나서면서 한국 최초의 DJ로 데뷔하게 된다.

최동욱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전설적 DJ' 이종환의 30대 모습. 김형찬 제공

진행자만 바뀌지 않았다. 발상이 바뀌었다. DBS에서는 당시에 죽은 시간대로 여겨졌던 오후 3시 시간대에 '3시의 다이얼'이라는 젊은이 대상 음악 신청 프로그램을 과감히 개설하여 빌보드와 캐쉬박스 차트를 통해 미국의 최신 유행 음악을 소개했다. 청취자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전국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과 같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상대했다. 프로그램의 내용과 청취자에 대한 태도는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어 '3시의 다이얼'은 문화공보부가 집계하는 전국 라디오 청취율 순위에서 3년 연속 1위를 기록하면서 최동욱의 시대를 구가했다.

1970년대 들어 라디오의 위기감은 대중음악 프로그램이 대폭 증가하면서 각 방송국에 반영됐다. 1970년 6월 23일 TBC에서 박광희가 진행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0시~새벽 1시30분)를 시작으로, 1970년 9월 21 CBS 임문일의 '꿈과 음악 사이에'(밤 11시35분~0시25분), 1970년 10월 5일 DBS 최동욱의 '0시의 다이얼'(밤 11시25분~0시45분), 1970년 11월 MBC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0시~새벽 1시30분)까지 연이어 개설돼 1970년 하반기에는 모든 라디오 방송에 심야 DJ 프로그램이 생겼다.

이런 심야 DJ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로 떠올랐다. TV가 완전히 끝난 심야 시간대에 책상에 홀로 앉아서 전파의 세계 속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해서 듣거나 출연한 젊은 스타들과 자신들의 발랄한 화법으로 화제를 공유한다는 것은 현재의 인터넷과 다름없는 젊은이들만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진행자들은 전문 DJ에서 입담 좋은 통기타 가수들로 옮겨갔다. '0시의 다이얼'은 윤형주(1971년 4월)에서 이장희(1973년 1월)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양희은(1972년 10월)에서 서유석(1973년 4월)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조영남(1973년 9월)으로 이어졌다.

이때 최동욱에 맞먹는 전문 DJ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 MBC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던 이종환이다. 그는 최동욱이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은 미국의 차트에만 의존한다며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엘비스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든지, 여성 청취자가 좋아할 만한 달콤한 스탠더드팝 종류를 선곡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청취자들을 확보해나갔다.

막강한 기세로 떠오르는 TV와 대적하기 위한 라디오의 변신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라디오가 표적으로 택한 팝송은 젊은이들의 음악으로 떠올랐다. 그때부터 라디오는 젊은 청취자들을 대폭 확보하여 대중음악계를 변모시키는 강력한 인프라로 작용하게 된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