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엘리트
- 국내 1호 팝칼럼니스트 활약
- 드렁큰 타이거 아버지로도 유명

- 출판·기획분야 등 막강 영향력
- 업소 출연진 섭외까지 도맡아
- 술집 망하면 서병후 찾아란 말도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본지 지난 달 2일 자 19면)를 기획해 한국록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연예계 막후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 한국 최초의 팝컬럼니스트로 일컬어지는 서병후가 주인공이다. 한국록 르네상스 시기를 담았던 음악 영화 '고고 70'에서 흰 양복에 안경을 쓰고 경연대회 심사위원을 맡거나 음악업소 자문회의에 참가하던 인물이 바로 서병후이다.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힙합음악인 드렁큰 타이거(서정권)의 아버지라고 소개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한국 록의 르네상스를 이끈 서병후. 말년에는 불교에 심취해서 저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김형찬 제공

음악전문가로서 그의 남다른 궤적은 학창시절부터 음악은 물론이고 영어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에서 시작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 고등학교 때 영자신문을 읽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1960년 서울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하고 2학년 때 서울상대 영자신문 편집장을 역임했다. 미국의 젊은 지성인들이 보는 잡지(까발리에. 플레이보이, 코스모폴리탄, 에스콰이어, 빌보드, 히트퍼레이드, 송히트) 20여 종을 서울 명동의 달러골목에서 구입해 보면서 미국문화를 파악해 나갔던 문화의 선구자였다. 1960년대 초반 팝음악이라는 새로운 대중음악이 막 밀려들어오던 시기에 그는 누구보다 앞서 팝음악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갖췄다. 이런 안목과 실력을 바탕으로 1963년부터 주간지 'English Weekly'의 칼럼 '디스크쟈키'에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를 연재해 팝음악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했다. 이 주간지는 8만 부 이상 팔리면서 멋쟁이들의 필독서이자 DJ들의 교과서로 인정받았다. 이런 경력으로 시사영어사에 스카우트되어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서병후가 창간한 한국 최초의 팝 잡지 '팝스코리아나'표지.

서병후는 1968년 7월 '팝스코리아나'라는 한국 최초의 팝음악 전문지를 창간한다. 이 잡지는 팝음악뿐만 아니라 외국의 새로운 문화,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최첨단 잡지였다. 이 잡지는 1년 정도밖에 발행하지 못했지만 그는 1988년 음악전문지 '음악세계'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음악 정보의 중요성을 중시했던 서병후는 1968년 '주간경향'이 창간되자 특채로 입사해 한국 최초의 팝칼럼니스트로서 전문적인 음악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서병후는 1960년대 중반 새로운 청년문화 세대들이 통기타음악과 록음악을 들고 나올 때 록음악 쪽에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관심을 쏟았다. 신중현에게 사이키델릭 음악을 소개하고 방향을 잡아주거나 실력 있는 록밴드를 업소에 출연시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자신의 관심 분야를 더욱 발전시키기위해 다양한 음악기획을 시도했다. 1967년 서울 동대문실내스케이트장에서 '팝스코리아나' 주최로 열었던 '그룹사운드 페스티발'이 그 시작이었다. 이런 시도가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 1969년부터 3년간 진행되었던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였다. 이것이 막을 내리자 1972년에 주간경향의 후원으로 '주간경향컵쟁탈 뉴스타팝그랑프리 콘테스트'를 열어 그 취지를 이어갔다.

서병후의 음악적 전문성과 경제학 전공자다운 실물경제에 대한 안목이 결합해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한 분야는 업소 컨설팅이었다.

업소명을 지어주고, 영업 형태를 자문해주고, 출연진들을 섭외해주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결과 '술집 하다가 망하면 서병후를 찾아가면 성공한다'는 말이 업계에 나돌 정도였다.

그가 관여했던 대표적인 업소가 1971년 명동에 개업한 '닐바나'라는 음악살롱이었다. 음악의 열반(Nirvana)을 뜻하는 업소명은 말 그대로 음악의 천국이었다. 현재의 나이트클럽에서 볼 수 있는 조명장치가 완비됐고 전위적, 퇴폐적, 현대미술적인 내부의 장식은 예술작품 수준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록밴드가 출연해 '코스모스' 살롱과 함께 한국 록음악의 메카를 자처했다. 하루 입장료 수입만 600만 원(1인당 1000원, 당시 청자담배 100원)으로 돈을 쓸어 담았지만 서병후는 돈벌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버는 돈은 주변 음악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거의 호텔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음악 발전에 몸을 바쳤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1975년 연말에 터진 연예계 대마초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자신이 키웠던 음악인들이 모두 잡혀 들어가고 음악업소마저 탄압을 받자 자연히 서병후가 그런 일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인물로 떠올랐다. 기관원들이 서병후의 주위를 맴돌며 꼬투리를 잡으려 했지만 서병후는 불법을 저지른 뚜렷한 물증이 없어 잡혀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침 김운용이 대한태권도연맹을 창설하는데 같이 일하자는 청와대의 제의를 받고 합류하면서 화는 피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서병후는 한국에 팝음악이 상륙하던 1960년대 중반부터 음악과 영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실물경제에 대한 안목으로 음악출판, 음악평론, 음악기획, 음악컨설팅을 두루 망라해 1970년대 전반까지 한국 록음악이 전성기를 이루도록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4년에 73세로 유명을 달리한 그는 한국의 록음악의 장을 열었던 음악계의 진정한 르네상스맨이었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