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블스, 해골옷·기괴한 쇼걸에
- 거부감 있던 흑인 소울까지
- 권위주의 맞서 10년 이상 활동

- 라스트챤스는 하드록 주도
- 캐롤집에 16분짜리 연주 담기도
- 대마초 사건 연루돼 활동중단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록밴드는 물론 키보이스와 히식스였지만 그들만 있었다면 1970년대 초반을 '한국 록의 르네상스'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2회 경연대회 때 주목을 끈 두 팀이 있었다. 한 팀은 기상천외한 무대 포퍼먼스를 보여주어 구성상을 받았던 '데블스'였고 다른 한 팀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초장발로 강력한 록음악을 연주하여 우수상을 받았던' 라스트 챤스'였다.

	데블스. 김형찬 제공

이름도 섬뜩한 데블스(악마들)는 이름답게 상하의 의상 전체에 해골이 그려진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오면서 무엇인가 끌고 나왔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여자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었다.(물론 쇼걸이 시체로 분장한 것이었지만)

이것만 해도 놀랄 일이었는데 그들이 연주한 음악은 더 독특했다. 그것은 James Brown의 'Goodbye My Love'로서 흑인 음악인 소울 음악이었던 것이었다.

당시 흑인음악은 미8군 무대에서는 흑인 병사들을 위해 연주했지만 일반무대에서는 흑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좀처럼 연주하지 않던 음악이었다. 상상해 보라. 권위에 도전하는 록키드답게 한국 사회에 존재했던 금기를 두 가지나 과감하게 깨뜨리며 시체와 해골이 춤추며 연주하는 모습을.

데블스의 결성 과정은 리드기타 김명길이 1967년 인천의 기지촌에서 '앰비션스(Ambitions)'라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한 것으로 시작된다. 1968년 파주로 무대를 옮겨서 데블스(Devils)라는 이름의 4인조로 활동하다가 왜관의 기지촌클럽인 '실버달러'라는 곳으로 흘러들어갔다. 거기에 있던 '킹클럽'에서 '에인절스(Angels)'의 멤버들인 연석원 등과 합류해서 결성되었다. 데블스는 경연대회 수상 이후 1971년 독집 음반을 발표하고 활발한 활동을 했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MBC 라디오 '젊음을 가득히'라는 프로그램의 전속밴드활동을 했고 음악업소 '닐바나' '실버타운' '마이하우스' 등에서 '소울대왕'으로 불리면서 손님을 끌었다.

데블스가 지명도 면에서는 키보이스와 히식스에 못 미쳤지만 창작 히트곡을 가진 몇 안 되는 록밴드라는 점에서 다른 록밴드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1974년 발매한 두 번째의 음반에 수록된 '그리운 건 너'와 '몰라요 몰라'가 1975년 크게 히트하면서 데블스의 활동은 절정기를 맞았다. 데블스는 1975년 연예계를 강타했던 대마초 사건에도 연루되지 않고 살아남아 1980년까지 활동을 이어가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록밴드로 기록됐다.

	1970년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록밴드 라스트챤스.

이 대목에서 언급해야할 또 한사람이 있다. 2회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 때 지도상을 받은 인물이 라스트챤스의 매니저였던 박영걸이었다. 그는 매니저로서 1970, 1980년대 한국 가요계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요한 인물이었다. 데블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신중현과 엽전들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그는 1976년께 노만기획이라는 기획사를 설립해 한국의 주류음악에 흑인음악인 훵크사운드를 도입했다. 이은하, 윤승희, 정애리, 정난이, 숙자매, 벗님들 등의 음악인을 거느리고 이은하를 대표가수로 한국의 '훵크 음악'을 주도했다. 데블스도 노만기획에 대표 록밴드로 소속이 되어 이은하의 '밤차', '아리송해', 정난이의 '제7광구'와 같은 곡을 편곡하고 연주를 담당했다.

라스트챤스는 1968년께 4인조로 결성되어 동두천, 부산 하야리아부대, 왜관 등의 기지촌을 떠돌며 연주생활을 했다. 왜관의 '카네기홀'에 출연할 때 탁월한 보컬 김태화가 가입해서 '파이브 건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이때 박영걸이 이들을 픽업해서 파주 장파리로 데리고 가서 '라스트 챤스'라는 업소에 출연을 시켰다. 이 업소명을 그룹명으로 바꾸고 멤버도 보강해서 7인조의 라스트챤스로 새롭게 출발한 것이 1969년이었다. 매니저를 맡은 박영걸은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다. 새벽 4시 일어나 산에 올라가서 발성연습을 시켰고 이성 교제는 절대 금물이었으며 무단으로 밖에 나가면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다. 라스트챤스는 당시에 세계적인 유행이었던 하드록을 선택해서 딥퍼플, 후, 그랜드 훵크 레일로드, 올맨브라더스 등 가장 강한 음악을 내세웠다.

	1976년 충무로싸롱의 록밴드 출연 광고.

강한 음악에 어울리게 머리도 길게 길렀다. 왜관에서 활동할 때부터 머리를 길렀는데 긴 머리가 배꼽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라스트챤스는 2회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 Jimi Hendrix의 'Hey Joe'를 연주하여 우수상을 차지하면서 1970년 유일한 독집 음반을 발매했다. 그 음반은 캐롤 음반이었는데 뒷면 전체에 수록된 16분짜리 대곡 '징글벨'은 라스트챤스의 하드록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음원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라스트챤스가 TBC '쇼쇼쇼' 프로그램에 나간 모습을 위에서 보고 단발령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퇴폐풍조를 엄단하겠다며 거리에 붙인 장발족 담화문에는 맨 아래에 눈에 검은 줄을 그은 라스트챤스의 사진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범죄자들처럼. 라스트챤스는 1975년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활동을 중단했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