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8군은 분명 꿈의 무대였지만
- 록에 대한 열망 채워주진 못해
- 무서운 실력의 애드포·키보이스
- 한국 최초 록밴드 입지 구축했고

- 히파이브가 멤버 정비한 히식스
- 음악업소 전속 밴드로 활동하며
- 전례없는 인기로 록의 시대 알려

1969년 열렸던 제1회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는 '키보이스'가 최우수상을 받았지만 2회 때는 '히식스'가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양 팀은 해마다 1, 2위를 다투었다. 키보이스와 히식스는 준비된 밴드였고 그 수준도 다른 록밴드보다는 앞서 있었다.

최고의 록밴드 답게 화려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한 히식스. 김형찬 제공

1950년대 후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미8군 무대는 한국의 악사들이 최신 미국 대중음악을 연마해야 들어갈 수 있는 꿈의 무대였다. 하지만 여기는 악단이 중심이었고 모든 것을 장악한 악단의 지휘자는 관록 있는 선배 음악인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비틀즈의 열풍은 젊은 음악인들에게 록이라는 새로운 음악에 빠져들게 했다.

비틀즈와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던 젊은 음악인들도 역시 미8군 무대에 나가서 경력을 쌓아야 했지만 그들의 음악을 선배 음악인들이 쉽게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자신들과 뜻이 맞는 주변 친구들과 새로운 음악형태인 록밴드를 결성하고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해 나갔다.

록밴드로 활동하던 1960년대 후반 역동적인 모습의 키보이스.

이미 출중한 기타실력으로 선배들 사이에서도 실력자로 인정받았던 신중현은 미8군 무대를 나와 1963년 '애드포'를 결성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키보이스도 에이원쇼에서 연구생으로 있던 윤항기가 중심이 되어 옥성빈, 차중락, 차도균 그리고 인천의 무서운 기타리스트 김홍탁을 영입해 팀을 완성했다. 키보이스는 1964년 8월 첫 음반을 발매하며 '한국 최초의 비틀즈'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음악에 대한 호응은 당연히 미군들이 있는 미8군 무대가 좋았고 일반 무대는 아직 록음악을 이해하지 못해 썰렁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음악적 야심이 남달랐던 김홍탁은 멤버들을 설득해서 일반 무대로 진출했다. '세시봉'과 '디쉐네' 같은 음악감상실의 간이무대에서 연주한 뒤 점차 라디오와 TV에 출연하면서 한국 최초의 록밴드의 입지를 구축해 나갔다.

1967년 겨울 미8군 음악납품 에이전시인 화양에서 오디션을 보던 5명의 록키드들이 서로 마음이 통해 각자 팀을 이탈해서 '히파이브'를 결성한다. 이후 1968년 이태원 '세븐클럽'에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을 때 베이스주자 한광수의 군입대로 공백이 생기게 된다. 히파이브의 리더 조용남도 미군 무대를 탈피해 일반무대로 진출할 꿈을 꾸고 있었던 터라 이미 자기들보다 나이도 너댓살이 많고 키보이스로 경험도 앞선 김홍탁에게 팀 합류를 제안한다.

좀 더 본격적이고 무거운 록음악을 하고 싶었던 김홍탁도 키보이스의 번안가요 위주의 가벼운 음악에 불만을 느껴 탈퇴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터라 이 제안이 반가웠다. 게다가 후배인 조용남이 자신이 아끼던 깁슨 기타를 선물하고 김홍탁을 리드기타로 모시기 위해 자신의 포지션을 리드기타에서 베이스로 바꾸면서까지 부탁을 해오니 모양새도 더 없이 좋았다.

이렇게 서로 마음이 맞게 되자 김홍탁은 성공하는 록밴드의 전제조건으로 합숙훈련을 제시하고 새로운 음악 방향을 정립해 나갔다. 지미 헨드릭스와 같은 사이키델릭 음악, 산타나와 같은 라틴록, 소울 음악 등 새롭고도 강한 음악들을 선택했고 가요를 버리고 철저히 원곡의 완성도를 지향했다.

히파이브가 이렇게 강력한 음악을 준비해서 일반무대로 나올 때 명동에는 '오비스캐빈'과 같은 전문 음악업소, '라스베거스', '실버타운'과 같은 대형 음악살롱 등 록밴드들이 활동할 만한 무대가 성업하기 시작했다. 히파이브는 오비스캐빈의 전속 가수가 되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무렵인 1968년 말에 리드보컬이었던 한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오비스캐빈에서 고별공연을 하게 되었다.

히파이브를 해체하려고 했지만 오비스캐빈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테니 계속 밴드를 해보라는 말에 고무되어 다시 멤버를 6명으로 정비하고 1968년 말부터 히식스로 팀명을 바꾸게 된다. 이미 많은 경험을 갖고 있었고 팀워크도 최고였으며 음악 또한 탁월하니 더 이상 미8군 무대를 나갈 필요가 없었다. 1년에 5, 6회의 공연을 위해 현충일 하루만 쉴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당시 록음악의 메카였던 오비스캐빈에서는 히식스를 위해 음반 취입을 지원하고 그들에게 전권을 일임했다. 그 결과 1971년 발표한 '히식스와 함께 고고를'이라는 두 장의 음반은 전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키보이스도 음반을 여러 장 냈지만 창작곡은 거의 없었고 곡목은 번안이 대부분이었으며 기성 작곡가의 곡까지 수록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히식스의 음반은 외국 록밴드처럼 제목도 '기타를 위한 4/4 박자'와 같이 연주곡이었으며 그 길이 또한 음반 한 면에 한 곡인 것도 있을 정도로 긴 곡이었다.

이 같이 1963년 애드포와 키보이스가 열어젖혔던 한국 록음악은 히식스에 와서 제자리를 잡고 열매를 맺게 된다. 그 결과가 1969년부터 1971년 사이에 있었던 플레이보이컵뱅탈 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 드러났던 것이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