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비운

장경각

고즈넉한 내 뜨락에


한 줄의 경전 같은 자목련이 피고 있다


만행을

떠났던 봄빛이

밀밭 건너 오고 있다


▶오영민=1972년 경남 창원 출생. 201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작노트=계절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슬쩍 자리를 바꾸고 있다. 아니 비워주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비워주기 싫은 듯 분명 봄인데 자주 눈꽃이 폈다. 그럼에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 뜨락에는 분명 자목련이 벙글어 있었다. 삶에서 시련은 그렇게 잘 자리잡은 한 줄의 경전처럼 봄빛을 한아름 안고 밀밭을 지나 건너온다. 나의 만행도 그렇게 한 줄의 경전처럼 자목련을 물어 올리고 있으니, 얼마나 환하게 뜨락을 비추일텐가? 비워야만 낮추어야만 환하게 뜨락을 비추이며 피워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전같은 자목련으로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