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허구다.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고 단군 신화를 역사화하는 작업 역시 민족 우월성을 드높이려는 작업일뿐이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에 집착할 경우, 다문화 사회에 접어드는 지금 공존을 어렵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족 우월성을 내세웠던 독일 민족은 이방인 유태인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은 단일 민족이라 생각했던 우리 역사를 이민족 이주의 역사라고 말한다. 대륙에서 중국인이나 북방유목민이 유입됐고, 열린 바닷길을 따라 일본이나 무슬림 등 해양세력이 한반도에 들어와 살았다. 임진왜란 때 전쟁포로나 투항한 일본인이 조선에 정착했고, 귀화 일본인이 급증했지만 사실 이주 일본인은 이미 조선 초기에도 상당수 있었다. 조선 태종 때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만 100명이 넘었다는 태종실록의 기록(태종 16년 8월 23일자)이나 '왜구의 괴수 5명이 수백 인을 거느리고 와 모두 갑옷을 벗고 배에서 내려와서 줄지어 절을 하고 명령을 기다렸다'(태조 5년 12월 29일자) 등이 그 사례다.

울산시 성안동에 있는 개운포(開雲浦)는 경주의 배후도시로 신라 최대의 무역항이었다. 중국인, 일본인은 물론 아랍인 등 각국의 문물이 이곳을 통해 들어왔다.

'왜(倭)'로 대변되는 해양세력은 일찍부터 한반도 남부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이 책 제3장 '한반도 남부에 왜가 있었다'에서는 왜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것을 문헌 기록으로 구체화한다. 저자는 "이미 1~2세기 왜는 한반도 남부에 자리잡고 있었고 이 왜인 세력은 4세기 말에 이르러 백제와 신라의 태자 등 왕실의 직계 자손을 인질로 잡고 있을 만큼 주변 나라를 압도했고 그 인구도 신라와 백제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뿐 아니라 무슬림들도 우리 역사의 당당한 구성원이었다. 조선 초기 조정의 공식 행사에 매번 '회회인(回回人)'으로 표현된 무슬림 대표가 참석했다. 이를 통해 조선에 정착한 무슬림의 숫자와 그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와 아랍간의 교류는 신라 때부터 존재해 왔으며, 이때부터 아랍인도 한반도에 정착해 살았다. 경주 괘릉의 무인석이나 처용 존재 등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중세 아랍 측의 문헌에는 무슬림이 신라에 정착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경북 경주시 외동면에 있는이 무인석(武人石)은 신라시대에 이미 아랍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너머북스 제공

한민족과 가장 친근한 여진인을 비롯, 중국인·거란·몽골 등 북방 유목민족들도 한반도로 들어왔다. "임금이 면복 차림으로 왕세자와 문무의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망궐례를 의식대로 행하고, 강사포 차림으로 근정전에 나아가서 조하를 받았다. 왜인, 야인, 귀화한 회회인, 승인 그리고 기로들이 모두 조하에 참례했다"(세종실록 9년 1월 1일자). 이를 통해 이 책은 한국 사회는 예전부터 다문화 사회였고 최근보다 훨씬 그 정도가 더 심했다는 것을 주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북방 유목민족 거란과 몽골의 후예인 백정이 조선 초기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서 4분의 1정도에 이른다"고 기록돼 있다. 북방인뿐 아니라 명·청 교체기에는 중국인들이 한반도에 대거 유입됐고 삼한 시대 진한과 변한의 건국 주도 세력도 진나라의 폭정을 피해온 진나라 유민들이었다.

책은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만들어진 역사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신화가 아닌 '역사의 눈'으로 볼 때, 이처럼 놀라운 사실들이 있는 그대로 보인다. 왕조시대 이방인들이 한반도로 이주했을 때 조정은 가혹하게 차별했다. 지금은 어떨까. 이주 여성의 47%가 '이혼을 원한다'고 하고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 여섯 명 중 한 명만 '나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역사적 사실을 동원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이질적인 것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보여야 그 사회는 비로소 건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