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취임 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의 해법으로 ‘엔드(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이 구상은 ‘교류(Exchange) 관계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축으로 한반도 평화를 앞당기겠다는 의지다. 이 대통령은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의 ‘엔드’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절된 남북 대화와 교류를 복원하고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는 가운데 공동 성장의 길을 모색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다가가자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비핵화가 엄중한 과제이나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인식 속에 도출한 실용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3단계 비핵화 구상은 우리의 무장해제를 꿈꾸던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이라며 거부했다. 설령 북한이 핵 중단에 응할 경우 대가로 무엇을 제공할지, 어떻게 검증할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가진 게 핵밖에 없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우제식 상상력’을 발휘하며 일방적인 유화책을 쓴다”며 “선의에 기댄 평화는 꿈과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자칫하면 북핵 고도화에 시간만 줄 수 있는 만큼 엔드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정교한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엔드 이니셔티브의 세 요소인 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가 서로 추동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모든 요소를 조율해가며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엔드 이니셔티브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교류 물꼬를 트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남쪽과의 대화에 부정적이어서 단기적으로 남북 만남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북미 정상간의 만남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달라는 이 대통령에게 “올해 안에 만나고 싶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의 ‘좋은 추억’을 언급하며 대화 용의를 피력했다. 다음 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페이스 메이커’를 자청한 이 대통령의 북미 접촉 기여 여부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의 엔드 이니셔티브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국제사회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이 대통령이 다자 무대인 유엔총회를 활용한 실용외교를 본격화한 만큼 정부는 APEC 정상회의가 국제교역·안보에서 긴장 수위를 낮추고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