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기준은 흔들림이 없어야 하며 도덕성 기준이 약화되어서도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후보 다수가 탈세 위장전입 등 의혹을 받았고 일부는 본인이 사실을 인정하는데도 임명하려 하자, 장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내놓은 작심 발언이다. 그도 그럴 법 했다. 장 최고위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무총리 후보에 지명됐으나 낙마한 경험이 있다. 아들 병역과 이중국적, 본인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문제가 됐다. 겨우 국회 표결까지는 갔으나 민주당에서조차 이탈표가 나와 인준안은 부결됐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제도의 근간이 허물어져간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 도입 초기였던 김대중 정부에서는 본인이 자진 사퇴하거나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사람이 2명에 그쳤다. 국회가 자격 미달로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임명 강행한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 3명을 시작으로 이명박(16명) 박근혜(11명) 문재인(25명) 정부로 넘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윤석열 정부는 3년 동안 31명이나 된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지명된 김민석 후보자의 인준 절차가 국회 동의만 남겨두고 있다. 지난 24, 25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지만 청문보고서 채택은 불발됐다. 증인·참고인·자료 없는 인사청문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국민의힘이 보이콧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늦어도 다음달 3일 본회의를 열어 인준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김 후보자는 금전 거래, 학위 취득 등 숱한 의혹이 쏟아졌지만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구두로 부인하는데 그쳤다. 인사청문회임에도 ‘청문(聽聞)’은 없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곧 시작된다. 장관 청문회가 총리보다 더 엄중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인사청문회가 파행으로 치달을 때마다 제도 개선 요구가 나왔다. 여든 야든 공수만 바뀔 뿐 주장은 똑같다. 후보자의 도덕성은 능력과 별개로 비공개 검증하자는 소리다. 국민이 못 보고 못 듣는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도를 본 뜬 미국에서는 불륜 가정폭력 같은 사생활까지 TV로 생중계 한다. “청문회가 신상털이에 가까워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지명권을 가진 대통령들의 하소연이다. 이 대통령이 야당 비대위원장에게 한 말처럼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국민이 보고 있는 건 먼지가 아니라 오염 덩어리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