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의 권리와 삶의 질 향상을 다시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기념일이다. 우리는 해마다 이동권 교육권 일자리 등 장애인의 다양한 권익을 이야기하며 사회적 관심을 모은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히 조명되지 않고 있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바로 장애인의 성(性)과 피임에 대한 권리다.

성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누구나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자신의 몸과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장애인이 올바른 성 정보나 피임 선택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과 건강권의 문제이며,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포용 사회는 완성될 수 없다.

장애인은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며, 성병 감염이나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할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의 특성과 이해 수준을 고려한 맞춤형 성·피임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부산지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및 음성자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언어 자료 등을 통해 실질적인 교육 접근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특히 지적·발달장애인은 감정 표현이나 성적 상황 대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동의’의 개념, 성적 경계 인식, 성폭력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교육은 성폭력 예방과도 직결되며, 실제로 교육을 받은 장애인의 자기방어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됐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방향이다. 과거에는 보호자나 기관 중심의 일방적 정보 전달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눈높이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장애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교육 자료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병행돼야 한다. 이는 정보 접근의 평등을 넘어, 교육의 형평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진정한 포용은 단지 휠체어 경사로를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와 교육의 접근성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장애인의 날’은 상징이 아닌 실질적 변화를 요구하는 날이어야 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부산지회는 다양한 형태의 성·피임 교육을 확대하고, 관련 정책 개선과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힘쓸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단일 기관만의 몫이 아니다. 정부 의료계 교육기관 가정 지역사회 모두가 협력해야 할 사회 전체의 책무이다. 장애인의 성 건강 교육은 단순한 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실천이자, 모두가 존중받는 진정한 포용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