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AI(인공지능) 시대다. 하루가 멀게 신기능을 탑재한 AI가 쏟아진다. 논문 검색·추론이 가능한 챗GPT, 그림 그리는 미드저니, 신약 개발을 위한 단백질 구조 예측 알파폴드 등 이전에는 못하거나 시간이 걸리는 일도 AI로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다. 눈부신 기술의 진보에는 도전 정신이 필수다. 유구한 해부학의 신화도 과감한 시도로 깨진 것처럼 말이다.
인체 해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금기였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것은 뿌리 깊은 관습이었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유교의 가르침은 인체에 칼을 대는 것을 금지해 의학 발전을 더디게 했다. 인체 내부를 정확히 몰랐기에 동양에서는 오장육부에 과도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고 서양에서는 동물 해부를 통해 인체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올바른 토대 위에서 세워지지 않은 지식의 체계는 오류를 낳는다. 인체 구조를 정확하게 알아야 생명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생리) 질병에 걸렸을 때 변형되는(병리) 장기의 형태를 눈으로 확인해야 병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기를 깨뜨리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5~16세기 르네상스는 예술과 과학이 함께 발전하던 시기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 예술가들의 활약으로 걸작이 탄생했고,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분위기에서 선구자가 배출되었다. 벨기에 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고대 로마 제국 의사 갈레노스의 해부 이론을 의심했다. 서기 2세기 활동한 갈레노스는 의학계의 전설이자 절대강자였다. 그의 의학이론은 16세기까지 무려 1400년 동안 서양에서 불변의 진리로 군림했다.
그러나 문예부흥을 기치로 한 르네상스는 인체 해부를 허용하는 교황의 칙령으로 이어졌다. 이전까지는 교회가 사망한 신자의 시신을 신성한 것으로 간주해 훼손하는 것을 금했지만, 사형수의 시신에 한해 일부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파도바 대학에서 베살리우스는 직접 인체를 해부할 수 있었다.
갈레노스는 우측 심장에 있는 혈액이 심장벽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구멍을 통해 좌측 심장으로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구멍이 없었다.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가 200개 이상의 오류를 범했음을 폭로했다. 인체가 아닌 동물 해부로 만족해야 했던 고대에 세워진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인체를 면밀히 연구한 베살리우스는 1543년 ‘De humani corporis fabrica’(인체 구조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간단히 파브리카로 불리는 이 책은 과학과 예술이 결합한 명작이다. 그는 인체를 정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화가와 협력했다. 풍부한 색채와 극적인 움직임을 특징으로 하는 베네치아 유명화가 티치아노 문하생과 협업해 제작한 해부 삽화는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이다. 세간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적인 의학계와 교회는 기존 전통과 권위를 부정하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갈레노스를 신봉하던 파리 의대와 성직자의 시기와 공격에 지친 베살리우스는 파도바 대학을 떠나고 말았다.
파브리카로 명성을 얻은 그는 더 나은 직장을 찾아 신성로마제국 황제(카를 5세)의 궁정 주치의가 되었다. 카를 5세에 이어 그의 아들 펠리페 2세의 왕실 주치의로 일할 때 문제가 생겼다. 일설에 따르면 베살리우스가 한 귀족의 시신을 해부할 때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다는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살인죄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았고 결국 성지순례를 명령받아 예루살렘 여행 중 배가 난파해 아쉽게도 죽고 말았다.
베살리우스는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대담한 실험과 관찰로 해부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과감한 도전이 새 시대를 만든다. AI 혁명 시대에 기존 틀을 의심하는 비판적인 사고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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