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부산에서 일어난 ‘장난감 물총 은행강도 사건’은 기사에 달린 ‘촌철살인’ 댓글이 더 화제가 됐다. 댓글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분짜리 은행 강도가 어디 있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한 것이다. 호수에 비친 달빛 그림자를 잡는 꼴 아닌가. 구속은 취소돼야 한다. 1000원 한 장 도둑 맞지 않았다. 장난감 총은 합법적으로 구매했고 다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경고의 행동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을 담으라는 지시를 당연히 따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금융권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랬다”고도 했다.
내란 수괴 혐의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측이 12·3 계엄사태에 대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시간짜리 계엄이 어디 있나” “비상계엄은 처음부터 반나절이었고, 국민에게 경각심을 호소하기 위한 것” “국민은 이번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이해한다”고 한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윤 대통령 측의 이 같은 논리라면 다른 유사한 사건도 범죄가 될 수 없다는 비아냥이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 대통령 측의 주장은 연일 이슈가 된다. 윤 대통령 지지층은 그의 무고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위해, 그 반대층은 윤 대통령 측 주장의 맹점을 찾으려 귀를 기울인다. 내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윤 대통령은 탄핵 기각 후 복귀를 원할텐데, 그의 주장 가운데에는 일국의 대통령이 발언했다고 믿기 어려운 지점이 다수 있다. 여기서 짚고자 하는 것은 중국의 부정선거 개입설을 윤 대통령측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문제다.
윤 대통령측은 “중국이 우리나라 선거에 얼마든지 관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친중’인 걸 고려하면 비상계엄이 불가피했다” “중국이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할 수 있다” 등 주장을 했지만 윤석열 정부 인사인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조차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이 타국의 선거에 개입한다는 의혹은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말 그대로 의혹이다. 대통령이 증거도 없이 이런 낭설로 상대국을 향한 의심을 공론화시킨 셈이다. 이미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12일 윤 대통령이 ‘중국 간첩’ 의혹을 거론한 것에 공식 항의한 바 있다.
외교에서 실리를 얻으려면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한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밀착을 강화하는 가치외교가 중시되면서 이미 한중관계는 크게 소원해졌다. 윤 대통령측이 공개석상에서 중국을 겨냥한 음모론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데, 과연 이 발언이 국익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 결과인지 의심스럽다.
정치권은 사실상 조기대선에 들어갔다. 현재 여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주 52시간 예외’ 등에 대해 우클릭을 선언했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금세 말을 바꾼 그의 언행은 유권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기존 입장을 바꿔 우클릭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또 이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다.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것인가.
이른바 ‘개딸’로 표현되는 강경 지지층이야 일치단결해 이 대표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겠지만, ‘이재명을 한번 믿어볼까’를 고민 중인 중도층에게는 선택을 주저하게 하는 지점이다. 야당의 한 인사는 이를 ‘실용주의’가 아닌 ‘상황주의’라고 꼬집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정치 노선이 달라지는 지도자를 누가 믿고 지지표를 던지겠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결국 이 대표의 중도확장행 발목을 붙잡는 것도 ‘말 바꾸기’를 한 이 대표 자신이다. 이런 갈팡질팡 하는 행보는 여당인 국민의힘에 이 대표를 비판할 빌미만 제공한다. 이 대표가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자 국민의힘이 “거짓말”이라고 즉각 반박하는 등 이제는 중도를 겨냥한 구상 차원의 발언만 해도 그 진정성이 논란이 된다.
말에는 사람의 품격이 드러난다. 특히 정치인은 말 뿐만 아니라 행동, 옷차림 등 일거수 일투족이 메시지로 해석된다. 대통령 연설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것도 국정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 비전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국민은 공직자, 정치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도덕성과 정직성, 청렴성 등을 따지는데, 그 판단 기준이 되는 것도 그 사람의 말이다.
대선정국이 펼쳐지면 국민은 갖가지 공약과 정책 비전을 마주하게 된다. 옥석을 가려내는 것은 유권자들의 과제다. 하지만 정치인부터 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수보다는 깊이 있는 고심 끝에 탄생한 진정성 어린 공약과 비전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다. 민심을 사는 데 있어서 진정성 만큼 강한 무기는 없다.
김태경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