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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과학기술 R&D 투자가 나아가야 할 길

남승훈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 명예회장

  • 남승훈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 명예회장
  •  |   입력 : 2024-05-27 19:50:4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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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과학기술계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볼멘소리로 가득하다. R&D 협약이 지연되거나 신규 연구 과제가 불발되는 것은 물론 학회 회비가 부담돼 탈퇴하거나 회비를 줄여 달라는 기업도 있었다. 기득권 세력과 비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개선하겠다고 빼든 칼에 정작 피를 흘린 것은 연구 현장의 연구자들이었다.

R&D 예산 삭감으로 초래될 이공계 기피 현상 심화, 후속세대 양성 차질, 우수 연구인력 이탈 및 고용 불안, 과학기술 생태계 악화, 과학기술 성장 저해 등 국가 경쟁력 약화 요인들을 근거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정부는 2025년에는 R&D 예산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는 ‘R&D 예산을 대폭 인상하라’는 정부의 지시를 받고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22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내년도 R&D 예산은 시스템 개혁과 함께 2023년 29조3000억 원 대비 확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2023년 R&D 예산 규모는 31조1000억 원이라던 기존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기재부가 2023년 R&D 예산 규모를 31조1000억 원이 아닌 29조3000억 원으로 집계하면, 정부가 대폭 삭감한 R&D 원상회복을 위한 증액 기준도 4조6000억 원에서 2조8000억 원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R&D 예산 복원을 둘러싸고 지켜보는 눈이 많은 민감한 시기에 R&D 예산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재부 입맛대로 R&D 예산 기준 잣대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모호한 기준으로 R&D 예산 삭감과 복원이 이뤄지면서 비효율·낭비성 요인을 재정비하겠다던 예산 삭감의 근거가 희석됐다. 더불어 과학기술에서 투자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제도 손질이 아닌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서 연속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며 그 핵심은 투자다. 기술 개발에 투여되는 투자의 변동성이 커지면 개발의 연속성이 무너져 기술의 후퇴 또는 기존 기반 기술의 소실이 초래된다. 세계적 기업들이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져도 오히려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R&D 예산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추격형 R&D 기반으로 성장하면서 세계 과학기술 선도국과 격차를 좁혀왔지만 추격형 R&D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불안전한 R&D 투자와 관리 시스템에 있다.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된 지금, 우리나라가 과학 강대국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는 전략적 예산 편성을 통해 R&D 분야에 투자 연속성을 지켜주어야 한다. 즉, 총 R&D 예산 중 80%는 기초를 포함한 중장기 연구개발에 배정해 과학기술계 고유 운용 권한과 연구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한편, 나머지 20%는 정부 기조에 따라 국가전략기술연구에 유연하게 운용하는 것이다. 정권에 따라 과학기술 정책의 기조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80%의 사업은 계획대로 수행되고, 20%의 사업들만 영향을 받게 하는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모두 지켜낼 수 있는 전략적 예산 배분은 연구시스템의 자율성 강화, 장기적 영향력은 높으나 성과가 불확실한 고위험 연구 육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열린 한국연구재단 창립 특별포럼에서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역시 미국 달파를 예로 들어 R&D 예산의 5%를 도전적 R&D 수행에 할애를 제안했다. 현장 연구자들은 혁신적 기술 개발을 위해 불확실성이 크더라도 그에 대한 투자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6월 말까지 기재부에 제출하도록 돼 있는 국가연구개발 예산 논의 과정에서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비타당성제도도 연구 현장에서 요구한 지 20년이 다 돼서야 수용됐다. 정부는 연구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R&D 투자의 중요성을 하루빨리 인지해 한국이 과학기술에서만큼은 국제사회에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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