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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뒷것 김민기

  •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   입력 : 2024-05-02 19:49:2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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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장희는 1973년 발표한 3집 앨범 ‘그건 너’로 가요계 정상에 섰다. 박정희 정권이 대중예술 탄압을 본격화한 불씨도 ‘그건 너’였다. 사람들이 “너 때문이야”라는 가사 앞에 박 대통령과 권력자 이름을 넣어 개사해 불렀기 때문(‘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노래들’·도서출판 흠영)이다. 신중현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 노래가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검열의 일상화는 창작의 위축과 함께 저항 정신을 말살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대중문화계는 암흑기였다.

1971년 발매된 김민기 1집은 1975년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유신철폐 시위대가 ‘아침이슬’을 애국가처럼 불렀던 탓이다.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노래가 한 순간 빨갱이 선동가로 낙인찍히던 시절이다. 누군가 김민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연행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자행됐다. 개인과 가수의 삶이 동시에 무너졌다. 피혁공장에 취업한 그가 “의문사 당할” 각오로 만든 노래가 ‘공장의 불빛’이다. 조국 근대화의 구호에 가려진 참혹한 노동 현실이 복사 카세트테이프에 담겨 전국으로 퍼졌다.

1991년 김민기는 서울 대학로에 극단 ‘학전’을 열었다. 고 김광석이 1000회 공연했던 그곳이다. 1994년 5월 김민기는 시사풍자 뮤지컬의 원조로 평가받는 ‘지하철 1호선’을 초연한다. 그때 별명이 ‘뒷것’이었다. “앞에 나서지 않지만 뒤에서 모든 걸 만드는 전형적인 보스”(가수 박학기)였다. ‘지하철 1호선’이 4500회 넘게 공연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투명한 회계. 김민기는 수입 내역을 모두 공개했다. 배우들과 계약서도 썼다. 이익이 나면 러닝개런티도 지급했다. ‘6개월 일해 10만 원 벌던’ 배우들이 대접 받는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연출부는 정규직으로 채용해 4대 보험에 가입시켰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파격이다. 33년간 학전을 거친 배우가 700명이 넘는다. 무명배우라면 누구나 학전 무대에 오르고 싶어한다. 김민기가 사람을 귀하게 여겼던 덕분 아닐까.

김민기에 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인 SBS의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 중 1·2부작이 최근 전파를 탔다. 3부는 오는 5일 방송된다. 많은 동료들은 “땅 위에 조용필, 땅 밑에는 김민기” “신인을 키워 사회로 내보낸” 어른이라 평가했다. 김민기는 다른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함께 살아가는 늙은이”라고 낮췄다. 학전은 올해 3월 문 닫았다. 김민기의 위암 투병에 폐관을 결정했다.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사회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다시 1호선은 달릴 수 있을까. 어서 털고 일어서길 빈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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