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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꿈은 일수놀이

김재원 동화작가

  • 김재원 동화작가
  •  |   입력 : 2023-01-03 18:59:5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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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구멍가게를 했다. 서민 아파트 입구 자투리 공간에 얼기설기 만든 가게였다. 아버지는 군수까지 한 분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해서 엄마가 생계를 꾸려 나갔다. 중학생 때 엄마 대신 국제시장에 가게 물건을 사러 가곤 했는데 사춘기라 몹시 부끄러웠다. 오다가다 친구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얼굴이 빨개졌다. 친구들은 용돈을 넉넉하게 받았지만 나는 호주머니가 늘 빈털터리였다.

술 안 사준다고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밤길에서 주간지를 팔던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들었다. 어쩐 일인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절약하고 저축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만약에 부잣집에서 자랐더라면 오늘의 내가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딱지만 한 구멍가게에서 큰 수입이 나올 리 없었다. 돈이 필요하면 엄마는 별수 없이 일수를 찍었다. 요즘 말로 하면 고금리 사채인데 이자가 엄청 높았다. 엄마는 일수쟁이한테 돈을 빌려 가게를 채우고 생활비로 썼다. 그러고 나면 날마다 일수를 찍느라 허덕거렸다. 일수쟁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서 일수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날 수입이 없어 일수를 못 찍으면 다음 날 와서 두 배로 받아 갔다. 일수 카드가 빨간 도장으로 채워질 때까지 일수쟁이는 그악스럽게 찾아왔다.

엄마는 모아둔 게 없으니 목돈이 필요하면 일수를 내어야 했고 먹고사느라 또 빚을 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빚은 새끼를 쳐서 불가사리처럼 늘어났다. 엄마는 죽는 날까지 빚 갚느라 노심초사하다가 돌아가셨다. 엄마 손에 돈다발을 한번 쥐여주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는데, 그걸 현실로 이루지 못한 채 엄마를 보냈다. 엄마가 일수쟁이한테 시달리는 것을 본 뒤부터 나는 죽어도 일수는 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결혼한 뒤에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도 돈을 모아 집을 샀다. 은행 대출은 받고 싶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달력이나 다이어리에 꿈을 적어 놓고 이루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다 되지는 않는다. 남보다 더한 노력을 해도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꿈 역시 일수놀이와 같지 않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일수를 찍어야만 카드를 다 채울 수 있듯이, 꿈도 그럴 것이다. 악착같이 실천하지 않으면 허망한 꿈이 되어 버린다.

꿈은 우리가 받고 싶은 목돈이다. 그걸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일수 카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하루라도 딴짓을 하면 나에게서 멀어진다. 이자에 붙는 새끼 이자까지 갚지 않는 한 실현되지 않는다. 꿈을 이루어주는 것은 해님도 아니고 달님도 아니다. 나 자신의 굳은 각오와 하루하루 치열하게 노력하는 수밖에는 답이 없다. 내 주위에는 꿈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훼방꾼이 수두룩하다. 달콤한 음식, 짜릿한 게임, 관심을 끄는 드라마, 일수쟁이처럼 날마다 따라붙는 게으름과 나태함…, 이런 것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꿈을 이루기가 어렵다.

건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에는 튼튼한 몸을 목돈으로 받았지만 술과 담배에 찌들거나 불규칙적인 생활로 차츰 원금을 까먹는다. 자기 관리와 절제라는 일수를 찍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는 고약한 일수쟁이가 원금에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까지 받아 가는 바람에 큰 병으로 고생하게 된다.

신은 내가 노력한 만큼 쿠폰 장부에 달아놓는다. 외상을 달아놓거나 떼어먹고 달아나면 장부에서 이름을 지워 버린다. 쿠폰 카드를 꼬박꼬박 채워 나가야 언젠가는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결실이 없더라도 의연하게 밀고 나가자. 소소한 쿠폰은 시시하지 않은가! 꾸준히 모아서 한꺼번에 큰 선물을 받아야 성에 차리라.

날마다 해가 뜨는 것은 하루하루 가치 있게 살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내가 채워야 할 일수 카드가 오늘도 눈앞에 놓여 있다. 아침 해가 빨간 도장이다. 꾹 눌러서 찍자! 건강과 행운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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