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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난장]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와 애도

‘힘들지만 잊으라’ 조언, 유족 상처 더 키울수도

고인 에피소드 대화 등 ‘사라진 흔적’ 찾아줘야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24 18:56:46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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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있던 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충격과 슬픔으로 괴롭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무기력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내 기억 속의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가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작년 이태원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세계음식거리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다른 갤러리로 이동하기 위해 스마트폰 길찾기를 보면서 진입한 골목은 내리막길이었다. 천천히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탔다. 158명이 사망한 공간은, 내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그저 평범한 공간이었다.

참사 피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안다. ‘왜 그런 데 갔느냐’는 식인데 우리 모두는 안전을 보장받으며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오히려 그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했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그런 일을 당해도 될 만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태원 참사 이후 진료실을 찾는 기존 환자들 가운데 증상이 악화된 사례가 많다. 주로 트라우마 환자나 불안으로 상담하는 분들인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분들일수록 마음이 무겁고 불편한 듯했다. 이태원 참사에서 흔히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정신적인 외상을 말하는 트라우마인데, 그것은 스트레스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스트레스는 아무리 심해도 해소하면 되지만 트라우마는 정신에 강력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발생한 흉터에 가깝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지워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 갑자기 파괴될 때 발생한다. 수학여행을 떠난 배가 침몰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거대한 백화점이 무너질 리 없다는 믿음,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할 리 없다는 믿음. 그런 믿음이 우리가 믿는 현실인데, 트라우마는 결국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 갑자기 부서지는 경험이다. 트라우마의 문제는, 나쁜 경험을 했다는 게 아니라 현재에도 그 나쁜 경험이 반복된다는 점에 있다.

남겨진 유족은 지금도 고통스러운 애도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우리는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애도라고 부른다. 소중한 사람을 상실한 슬픔을 떠나보내고 회복하는 정신의 과정인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척 고통스럽다.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가는 애도를 노동에 비유하기도 했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잊히는 게 아니라 힘든 노동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내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해야 한다.”

주변 분들이 유족에게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힘들겠지만 잊으라는 조언이다. 유족을 배려한 말이겠지만 내가 상담한 분들은 공통적으로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고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잊으라는 건가? 통념과 달리 정신분석이 알려주는 교훈은, 상처를 떠나보내려면 잊으려 애쓰지 말고 반대로 기억하라는 것이다. 고인과의 에피소드를 금기시하지 말고 유족이 원하면 얘기를 나누는 게 도움이 된다. 애도는 잃어버린 상실의 자리에 말과 글로 탑을 쌓는 일, 애도일기를 쓰거나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고 추억이 깃든 장소를 더듬고 슬픔이 밀려오면 마음껏 우는 것이다.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진료실에 온 분들께 “많이 우셨습니까?”라고 자주 묻는다. 쓰러질 정도로 울었다고 하면 오히려 안심이 되고, 눈물이 흐르지 않고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고 답하면 긴장한다. 슬픔을 억누르면 훗날 더 깊은 우울로 병들 수 있기 때문이다. 펑펑 우는 통곡도 중요한 애도의 과정이다. 긴 시간 과도한 표현으로 울더라도, 어떤 분에겐 그게 슬픔을 처리하는 힘든 노동이고 필요한 애도 작업일 수 있다. 다만 애도가 가능하려면 사라짐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희생자 유족에게 애도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바로 사라짐의 흔적을 찾아주는 일이다. 어느 유족이 “사망 원인도, 장소도, 시간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아들을 떠나보낼 수가 있겠나”고 말했다. 사라진 흔적이 있어야 희생자를 기억하고 비로소 애도할 수 있다. 우리가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나의 애도와 너의 애도가 만나 우리의 애도가 되는, 사회적인 치유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그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3년에 걸쳐 ‘애도일기’를 썼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고통스러운 애도작업을 3년에 걸쳐 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유족과 각기 다른 사연으로 세상의 힘든 애도의 과정을 통과하는 분들께 ‘애도일기’의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나의 슬픔은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나의 슬픔이 놓여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사랑했다’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나는 오랫동안 혼자 운다.”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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