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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08 19:05:5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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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그만 일터인 김해갤러리는 동쪽에 있고 나는 서쪽에 산다.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일터로 간다. 집에서 갤러리까지의 거리는 십 리 안팎으로 4km 정도 되는 것 같다. 걸어서는 30분, 차로는 교통신호를 생각하면 10분 내외가 걸린다. 나는 일터로 가는 짧은 시간이 행복하다. 그 이유는 길가에 늘어선 은행나무 가로수 때문이다. 가고 오는 잠깐이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가을은 노랗게 물이 든 은행잎을 내가 가는 길목마다 뿌려주어 늙어감이 아니라 익어감에 대한 축복을 내리는 듯하다. 은행 알맹이가 떨어진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알맹이를 밟으면 냄새가 나 징검다리 건너듯 발길을 옮기지만 이조차 싫지는 않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 하나의 경계이며 길을 안내해주는 안내자로 마음을 안심시켜준다. 비슷한 크기의 나무가 쭉 이어져 있는 길을 가다 보면 늘 나무와 함께 걷고 함께 달리는 것 같아 지루하지 않다. 은행나무는 도시의 추한 건물도 감추어주고 보고 들은 좋지 못한 풍문에도 침묵한다. 자동차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거리에 서서 마땅히 내가 마셔야 하는 좋지 못한 공기를 대신 마셔 주어 나의 건강도 지켜주는 희생의 나무다.

어제는 단풍 숲이 아름다운 거북공원을 지나 경원고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주황색 조끼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쪽 차선을 막고 은행을 털고 있었다. 은행 열매의 독특한 냄새를 미리 제거하기 위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은행나무가 드물어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시골 마을마다 암나무 한두 그루에 수나무 한두 그루가 전부였다.

우리 마을에도 열매를 다는 암나무는 한 그루밖에 없었다. 우리 집 대문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었다. 윗대 할아버지가 심은 것이다. 지금처럼 은행이 달려 수줍은 얼굴빛으로 익으면 어머니와 내가 추수를 했다. 우리 식구들은 은행을 만지면 어김없이 옻이 오르는데 어머니와 나는 옻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을 추수하는 날이면 나무 밑에 거적을 깔고 대나무 간짓대로 내리쳤다. 높은 곳에 달린 은행은 내가 나무에 올라가서 따고 비교적 낮은 곳의 은행은 어머니가 땄다. 떨어진 은행을 비료 포대에 주워 담아 리어카에 싣고 동구 밖 개울가로 가져가 발로 밟아 뭉개고 손으로 알맹이를 깨끗이 씻었다. 은행 특유의 냄새와 쌀쌀한 추위로 손이 시려와 힘들었지만, 어머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까셨다. 껍질을 벗겨내고 깨끗이 씻은 은행은 다시 리어카에 싣고 와 멍석 위에 널어 말렸는데 족히 한 두말은 되었다.

가을 햇살에 은행을 말리면서 드물게 세모난 은행이 보이면 주워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세모난 은행은 네 잎 클로버처럼 행운을 불러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죽솥 아궁이에 은행을 구워 먹다가 열매가 뻥뻥 소리를 내며 터지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일도 있었다. 은행에 크레파스로 색칠하여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서 놀았던 기억도 난다.

어머니는 뽀얗게 말린 은행을 자루에 담아 읍내 한약방에 팔았다. 그때에는 은행이 귀한 한약재로 쓰였기에 꽤 비싸게 팔렸던 것으로 안다. 은행을 팔고 온 날은 어머니가 은행을 딴 수고비라며 나에게만 용돈을 주셨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은행을 따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은행나무는 오래 산다고 한다. 언젠가 문학기행에서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를 본 적이 있다. 수령이 1000살이 넘었다고 했다. 성스러워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자연과 불경 소리와 더불어 묵묵히 살아온 것을 생각하니 외경스러웠다. 나의 어머니도 은행나무처럼 살고 계신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일터인 조그만 갤러리는 동쪽에 있고 나는 서쪽에 산다. 오늘도 은행나무 가로수에 노을이 얹힌 길을 따라 나는 행복한 귀가를 한다. 해는 기우는데 붉고 노란빛이 어우러져 거리가 환하다. 해거름에 쌀랑한 공기 속으로 은행나무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집으로 간다. 잘 가꾸어 후세에 남겨줄 유산 같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좋다.

양민주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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