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어떻게 걷다가 죽을 수 있느냐"는 한 유족의 말처럼,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기이하고 참혹한 일이라, 너무 황망한 일이라 그럴까, 한동안 눈물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 명 한 명, 떠나간 사람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을 생각했다. 행복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족의 안녕을 위해,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 그분들이 그곳에 간 것 역시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들은 다름 아니라 우리였다. 살아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우리 모두 말이다.

이태원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우리 사회의 결과다. 안전하지 않은 골목을 두고 조금만 생각했다면 분명 안전 조치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렸을 때 분명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든 예측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보는 사회였다면, 분명 사고가 날 것 같다고 알린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충분히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우리는 참 오랫동안 그래 왔다. 내 아이만 경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일이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을 알면서도 교육 제도를 난도질만 했고, 기후위기가 이렇게나 심각해졌는데도 지금 당장은 내가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편하게 사는 것이 우선이라 여겨 왔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힘은 너무나 부족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 생각하지 않았고, 즉각적인 쾌락과 부에만 집착했다. 그렇게 서로는 이겨야 하는 경쟁 상대이자 적이 되었고, 분열과 혐오와 차별 속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선택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애써 모른척하면서,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 성공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이태원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분들은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사회의 희생자이자 피해자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 그저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뿐이다. 안전과 생명보다 돈이나 절차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지난날의 무수히 많은 선택들이 초래한 결과였다.

그런데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험한 순간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위험하다고 죽을힘을 다해 소리치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필사적으로 누군가의 등을 지키기 위해 버텼던 사람들이 있었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간 사람들이,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지 못해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지옥에서 생명을 구한 유일한 힘은 생명을 향해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었다. 무엇이 진짜 우리를 살게 하는가? 우리는 왜 이 참혹한 상황이 되어서야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는 말인가. 너무나 슬프고 비통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급급하고 연연해하며 소중한 것들을 잊고 또 잃었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더 이상의 참사는 없어야 한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그 어떤 순간에서도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고, 공감과 연대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힘을 믿어야만 한다. 우리는 반드시 더 선하고 정의로운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꿈이라 부르고, 희망이라 부른다. 인간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바로 그 힘, 상상력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상상했고, 좀 더 나은 세계를 꿈꿨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슬기롭고 지혜롭게 생각한 존재. 그것이 인간이라면, 결국 슬기롭고 지혜롭게 생각하고 상상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

황망한 마음을 그저 덮어두지 않겠다. 우리를 살리는 힘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고 그 가치를 지켜내는 사회를 만들자고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리고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를 살아내고 싶다. 참담한 마음을 딛고 희망을 재건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 일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자, 의무임을 잊지 않겠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이윤영 인디고잉 편집장